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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Feb 21. 2020

#바다가 되었다

1. 시한부 선고, 그 끝자락에서

2018년 08월 12일. 일요일



고향에서 먼 통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해주러 왔다. 아빠와 함께 했던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 아빠가 떠나게 된 이유. 남아있는 우리는 아프지 말고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조심하자는 대화들을 나누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배웅 속에서 아빠는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아빠의 이야기는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한 줌의 재가 된 아빠를 품에 안고 버스에 올랐다. 따뜻했다. 아빠의 마지막 온기가 남아있는 듯했다.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와 마지막까지 아빠를 함께 배웅했던 친척들, 아빠의 친구분들에게 인사를 했다. 모두에게 조심히 올라가라는 인사를 했다. 떠나기 전, 작은 아빠는 마지막으로 아빠를 꼭 안았다. 지금까지 형을 이렇게 안아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은 아빠도 형의 마지막 온기를 담았다. 이제는 고향에서 가까이 살지 않기에 언제 볼지 모른다. 그래도 가족이니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우리는 아빠를 어디에서 보낼지 다시 얘기했다. 엄마와 동생과는 대화를 이미 나눴었지만 동생은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아빠를 아빠가 평생 살아온 고향에서 보내야 할지. 엄마와 동생이 살고 있는 이 곳, 통영에서 보내야 할지 한번 더 대화를 나눴지만 처음에 함께 얘기했던 통영으로 정했다. 살면서 고향을 떠나본 적이 거의 없던 아빠. 가족과 가깝지 못했던 아빠지만 이제는 엄마와 동생의 곁을 지켜주고 보고 싶을 때 쉽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돌이켜보면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30년 이상을 함께 지냈지만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주지 못했던 무뚝뚝한 우리 가족. 표현이 참 서툴렀던 우리 가족. 엄마는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하면서 살았지만 통영에서 아빠와 함께 했던 그 짧은 시간이 행복하다고 했다. 출근하기 전에 꼭 안아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던 그 시간들이. 아빠에게 다가온 죽음이라는 끝자락에서 우리는 다시 가족이 되었다. 


그날 밤, 우리는 집 근처에 있는 바다에서 아빠를 떠나보내주었다. 

그렇게 아빠는 바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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