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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Jul 22. 2021

#넓은 세상을 마주하고 싶었다

3. 나를 만들어 가는 길, 다시 한 걸음을 내딛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넌 것은 군 생활을 할 때였다. 다음 이라크 파병에 우리 부대가 뽑힐 것 같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제일 힘들다는 천리행군 훈련을 하면서 곧 부대로 복귀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아니었지만 훈련이 끝나고 얼마 뒤, 우리 부대는 정말로 파병에 뽑히게 되었다. 꿈만 같았다. 살면서 쉽게 가볼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겠다고만 하면 갈 수 있는 상황.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난 설득했다. 그리고 먼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8시간 동안 하늘을 가로질러 쿠웨이트에 도착한 다음날 새벽, 다시 2시간 정도 군 비행기를 타고 이라크로 도착했다. 도착 전, 비행기는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곡예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타본 어떤 놀이기구보다 강력했다. 마치 누군가 아래에서 내장을 잡아당기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런 곡예를 몇 번 더한 후 무사히 착륙했다. 처음 마주한 세상은 너무도 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풍경들. TV에서 봤던 사막은 아니지만 흙먼지가 흩날리는 그런 곳. 먼지와 뜨거운 태양에 얼굴을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가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라크 아르빌. 임무로 인해 부대 밖을 나갈 일이 많았다. 처음에는 테러범들과 마주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 해져갔다. 외부 활동을 하면서 경험했던 것 중 아직도 몇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길을 지나다 정육점을 본 적이 있다. 제대로 포장도 안 되어 있는 길은 흙먼지를 날리는데 그 옆에서 고기를 그냥 매달아 놓고 판매하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시설이 아직 발달하지 못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여수 택시를 본 적이 있다. 차 위에 한글로 여수 택시가 뚜렷하게 쓰여 있었다. 오래된 중고차들을 해외로 판매한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걸 이라크에서 본 것이다. 파병 생활 초반이라 그저 신기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 우리나라도 전쟁의 아픔을 겪었던 나라이다. 그 당시 미군의 뒤를 쫓아다니며 초콜릿과 먹을 걸 달라고 하던 때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난 이라크 아이들을 통해 똑같이 경험했다. 그런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가깝게 지내며 무엇이라도 하나 챙겨줬었다. 


어느새 신기했던 생활들은 익숙함으로 변했고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평생을 부대에 있지 않겠다고 결심한 후, 더 넓은 세상으로 가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우리나라의 모습보다 어려웠던 곳을 경험하고 나니 반대로 더 잘 산다는 나라들은 얼마나 다를지 궁금했다. 


일본 도쿄. 지금 돌아보면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때는 서울에서 살 때가 아니었기에 복잡한 도시의 모습을 잘 몰랐다. 사람들로 빼곡한 지하철, 길거리에 수많은 사람들, 높게 솟아있는 빌딩들,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래도 내 기억에 남아있는 건 사람들이었다. 홀로 경주 여행을 갔다가 외국인들이 모여있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이틀을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 그때 외국인들에 들었던 말 중에 한국 사람들은 영어 울렁증이 있는지 도움을 청하려 말을 걸면 피한다고 했다. 왠지 알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일본에서는 나 역시 외국인이었다. 기억 속에 너무 넓었던 신주쿠역. 갈 길을 헤매다가 어떤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었더니 전철표는 구매를 했는지 챙겨주고 내가 가려던 곳까지 직접 데려다주었다. 이런 일이 한 번은 아니었다. 매일 야경 명소를 찾아갔었는데 역에서 도쿄도청도 그리 가깝지 않았다. 그때도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자에게 길을 물었더니 직접 안내를 해주며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도쿄의 느낌은 친절함이었다. 도쿄 여행 책 한 권을 들고 돌아다녔던 나의 첫 해외여행은 나를 더욱 새로운 곳에 대하여 갈망하게 만들었다. 


호주 시드니. 군 생활을 마무리한 후, 학교 복학보다는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해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호주에서 2년을 보냈다. 우리나라와는 너무도 다른 환경. 특히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다르게 느껴졌다.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에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라면 호주는 여유로워 보였다. 시계가 조금 느리게 돌아가도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은행에 돈을 넣어도 바로 찾을 수가 없고, 지정된 인터넷의 용량을 다 쓰면 거의 끊기는 수준의 속도가 한국 사람이라면 도저히 참을 수 없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괜찮은 것 같았다. 한국 사람으로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다.


호주의 자연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색이 다르다고 할까. 한국은 산이 많아서 녹색이라면 호주는 맑고 투명한 바다를 흔히 볼 수 있어서 에메랄드빛.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마무리하기 전에 2주간 여행을 하며 유명하다는 도시의 여러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중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모래 섬. 그 섬에는 포장되어 있는 도로가 없었다. 큰 바퀴를 가진 차를 이용해 백사장을 달렸다. 어느 절벽이 있던 포인트, 그곳을 걸어서 올라가며 투명한 바닷속을 구경했다. TV에서만 봤던 가오리, 거북이 그리고 돌고래는 흔하게 마주쳤다. 다 오른 절벽에서 누군가 외쳤다. 그곳에는 거대한 고래가 있었다.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고래의 모습은 웅장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을 아무 말이 없이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그렇게 오랫동안을.


사람의 생김새가 다르듯 각각 나라의 모습도 다르다. 그 나라마다의 특색이 있다. 그리고 경제력과 기술력의 차이에 따라 어디는 조금 더 편리한 생활을 하고 어디는 조금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디든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와 함께 웃고 울기도 하며 살아가는 그런 모습. 태어난 곳의 환경은 내가 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내가 정할 수 있지 않을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웃으며 살지. 또는 울면서 살지. 넓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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