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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Sep 14. 2021

#술은 기억을 부른다

3. 나를 만들어 가는 길, 다시 한 걸음을 내딛다

얼마 전,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들어가는 회사마다 왜 그리 일 복은 넘쳐흐르는지 이번에는 넘쳐흐르는 것이 아니라 홍수 수준이다. 그래도 지금 당장 내 몸은 조금 아니 많이 고생을 하겠지만 이곳에서 내가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하고,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위로를 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중 반 이상을 회사에 쏟아붓는 요즘.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술이 한 잔 생각났다.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지만 술이 생각나는 그런 밤. 누군가와 함께 술을 한잔하기도 불안한 그런 시기라 그냥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안줏거리를 하나 포장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집 문을 열고 들어와 짐을 정리하고 씻은 후, 사 온 음식과 냉장고에서 며칠을 자리 잡고 있던 소주 한 병을 꺼낸다. 예전에는 생각치 못했던 혼술을 언젠가부터 하기 시작했다. 시작이 어렵지 한 번 시작하니 이것도 별거 아니더라. 그렇게 소주 한 병과 안주를 준비해 TV와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는다. 우선 잔에 소주를 담아 내 목을 넘기고 안주 하나를 맛본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된다. 그래도 혼자 마실 때는 딱 한 병만 마신다. 그 이상은 싫다. 


한때 많이 듣던 노래가 있다. 한번 꽂히면 한동안은 그 노래를 많이 듣는 경향이 있는데 그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술은 모든 기억들을 불러오고 그 기억들은 너를 불러온다는. 그런 가사를 들을 때면 나 역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잠시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한때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물론 그 마음은 과거에만 머물기에 이제는 소용이 없지만. 내 모든 걸 주고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었다. 그러나 앞에 나타난 장애물들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 번 뛰어넘고 두 번 뛰어넘었지만 결국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말았다. 


그녀에게 미안했다. 그때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난 그렇게 나를 원망하고 미워했다. ‘내가 더…’ 이런 가정법의 말들이 수없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었다. 예전 그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혼자서도 잘 살 것 같다고. 실제로 난 그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도 마냥 그렇지는 않더라. 가끔은 마음이 아파 비를 맞고 깊은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했었다. 아마 난 그런 척을 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강한 듯해도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남들이 없는 곳에서 혼자 많이 아파했을 뿐. 술을 마셔도 지난 인연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이미 찍어버린 마침표가 쉼표로 변할거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때의 기억들이 모두 잊히지는 않겠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묻힌 것들은 희미해지고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처럼 저 멀리 사라져 갈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각자 홀로 길을 걷다가 마주치게 된다면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치지 않고 잘 지내는지 가벼운 미소와 함께 안부를 물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우연히 그런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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