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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Sep 27. 2021

#불행하다는 착각

3. 나를 만들어 가는 길, 다시 한 걸음을 내딛다

한때, 나는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름, 몸을 혹사시키고 목숨을 걸고 버텨냈던 군대. 하지만 내게 남은 건 크게 없었다. 또래보다 일찍 월급을 받으며 독립했기에 통장에 나타난 숫자만을 봤던 것 같다. 아직 대학생 신분이었던 친구들과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4년간의 군 생활을 하면 보통 통장에 찍혀 있다는 숫자를 볼 수 없었다.


친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아빠로 인해 벌어진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라크 파병을 끝내고 돌아온 그때. 그동안 쌓여있던 돈을 건넸다. 그리고 얼마 뒤, 아빠의 부탁으로 가족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군인공제회를 찾아가 넣고 있던 적금을 깨서 다시 한번 아빠를 도왔다. 그렇게 통장의 숫자는 처음과는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라는 매서운 바람이 불어왔다. 덕분에 그 당시 유행했던 펀드에 넣어두었던 돈들은 바람에 날아갔다. 15% 수익이 아니라 15%만 남겨두고 사라지는 마법을 보여주었다. 난 그 마법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어느 날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연장을 하려면 뭘 해야 한다며 나를 불렀다. 은행 안쪽에 자리 잡은 어느 정도 직급이 있던 분은 나에게 ‘어린 나이에 많이 모아 놓았던 돈이 이렇게 되어서 안타깝지만 억 단위로 넣었는데 천만 원밖에 못 건진 사람들도 있다.’는 위로인지 위로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말을 해주었다. 난 더 이상 은행을 믿을 수 없어서 해약을 하고 허탈하게 돌아왔다. 그 후로 펀드, 주식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의 착각은 정점을 향해 핸들을 틀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엑셀을 더욱 힘차게 밟기 시작했다. 누구는 어디 여행을 다녀왔고, 누구는 부모님이 어디에 집을 해주었고, 누구는 무엇을 했다는 하나하나를 비교했었다. 뉴스를 보면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비교는 내 마음에 열등감을 싹 틔웠다. 그 싹은 한동안 무럭무럭 자라났다. 


한 학기가 남은 시점에 취업을 하려 서울로 올라왔다.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딛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볼 기회가 생겼다.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사람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하나 둘 알게 되면서 내 마음속에서 자라던 열등감은 부끄러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불행하고 불쌍하다는 나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비해 명함을 내밀 정도가 되지 못했다. ‘고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난 고작 이 정도로 나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나보다 더 힘든 경험을 하고 극복한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삼은 것이 아니다. 그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열심히 무엇이라도 하려 했다. 생각이 변하니 내 마음도 이전보다 더 편해졌다. 그렇게 나는 변해갔다. 


통장의 숫자와 행복이 비례하지는 않는다. 물론 숫자가 높으면 조금 더 편하고 여러 기회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절대는 아닌 것 같다. 종종 뉴스에서 유명한 사람들의 안 좋은 소식을 접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있는 곳보다 높다는 표현을 사용할 만한 곳에 있는 사람들, 저 아래쪽에 있다는 표현을 사용할 만한 곳에 있는 사람들을 굳이 보면서 비교할 필요가 있을까. 그걸 통해서 얻는 건 없다. 내가 바라봐야 할 것은 ‘나’이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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