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회사를 떠나다, 방향을 틀어_도전

그 끝자락에서

by Frank

#용기를 내다



이틀 전, 출근하자마자 서류 파일을 뒤져 사직서를 찾았다. 드디어 내가 사직서를 쓰게 되는 날이 왔다. 꽤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고 있던 이 서류는 쉽게 밖으로 나오지 못했었다. 말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는 긴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사직서를 프린트하고 살짝 떨리는 손으로 자필 서명을 한 후 결재판에 넣어두었다. 심호흡을 쉬었다. 혹시 모르니 사진도 한 장 찍어두었다. 이로써 모든 준비는 끝났다. 부장님이 바쁘지 않을 만한 타이밍으로 오후 4시쯤 제출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곳에서 보낸 6년의 시간을 돌아봤다. 처음 면접을 보러 왔을 때, 입사하자마자 팀장이 나간 후 혼자서 참 많은 일들을 했다. 황무지 같은 회사에서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공부도 참 많이 했었다. 아직까지도 이 회사에서 가장 많은 교육을 다녀온 건 나다. 그만큼 많이 했었다. 체계를 잡아가는 과정이라 경영진들과 많은 대화를 하며 만들어 나갔었다. 그때 날 향하던 시기와 질투들, 참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함께 도우며 헤쳐나갔던 사람들은 아직도 가깝게 지나고 있었다. 공유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난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떠나려 한다. 집 문을 열고 사무실 문을 다시 열기까지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마음만 먹으면 거의 매일 칼퇴가 가능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살아가는데 전부는 아니더라. 스스로 쉽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걷어차고 나가는 것이다.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아마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있는 회사는 죽은 조직이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는 좀비들이 많다고 했다. 새로운 도전도 없고 변화하지 않는, 아니 이제는 못하는 조직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좀비가 되어가는 내가 싫었다.


오후 4시가 되기 전까지, 가까웠던 사람들에게는 알렸다. 대부분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지만 누군가는 말렸고, 누군가는 응원을 해주었다. 난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니 울지 말라고, 우리는 이 울타리를 벗어나도 만날 테니 더 좋은 모습으로 보자고 했다. 그리고 오후 4시쯤 부장님께 잠시 시간을 내달라며 회의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사직서를 부장님 앞에 내밀고 내 생각을 먼저 쭉 얘기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고 그 고민 끝에 지금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고 했다. 여러 가지를 말했다. 이어 부장님도 부서 이동부터 여러 가지를 나에게 말했지만 본인도 느꼈을 것이다. 나를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장님의 제안을 난 거부했다. 물론 대화는 형식적이지만 좋은 분위기에서 했다. 인생 선배로서의 얘기도 많이 해주셨고 그날 오랜만에 둘이 한 잔을 하며 회사에서 하지 못했던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어제는 상무님과도 면담을 했다. 상무님도 오래 함께 했던 직원이 나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했다. 주말에 더 생각을 해보라고는 했지만 상무님도 내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얘기들을 몇 가지 해줘서 살짝 놀랬고 감사했다. 이제는 회장님 면담만 남은 것 같다. 아닐 수도 있지만.


사직서를 내고 나니 덤덤해졌다. 긴장은 한순간이었다. 이제는 앞으로 할 것들을 준비하자. 우선은 2월 한 달간 제주도 살기를 준비할 것이다. 난 방금 끝을 보았지만 내 앞에는 새로운 시작이 다가오고 있다.




#각자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기준은 달라진다



20년 지기 친구들과의 모임, 우리는 일 년에 두 번은 만나려고 한다. 만나서 술만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얼마 전부터는 뭔가를 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번 모임은 스키장. 작년부터 가자고 했던 것을 이번에는 실천에 옮겼다.


토요일 오전 11시쯤, 우리는 스키장 근처 식당에 모였다. 오랜만에 만나지만 며칠 전에 만났던 것처럼 편안한 사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으니 서로의 근황에 대해 묻는 시간을 가진다. 유부남인 친구 한 명은 최근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이 하시던 일을 함께 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러면서 요즘 새로운 집을 준비하는 얘기가 주를 이뤘다. 그리고 다른 유부남 친구 한 명은 소방관으로 일하며 아이와 와이프 얘기가 주를 이뤘다. 다음은 내 차례, 최근에 사직서를 냈고 잠시 쉬면서 제주도에서 시간을 보낼 거라고 했다. 미혼인 친구도 지난여름에 퇴사를 하고 제주도 한달 살기를 하고 다녀왔던 경험이 있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유부남들의 반응은 달랐다. 우리 나이가 이제는 어느 정도를 넘어가고 있기에 그러면 안 된다는 반응이다. 그리고 나중에 합류한 미혼인 또 다른 친구도 역시 내 계획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재 내 상황의 1부터 10까지 모든 걸 설명하고 대화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느낀 점이 있다.


유부남인 친구들은 본인들이 생각하는 기준의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다. 현재의 나이,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빨리 소방공무원 준비를 하라고 했다. 소방관인 친구는 내가 소방관 특채에 응시가 가능한 걸 알기에 볼 때마다 그 얘기를 한다. 하지만 미혼인 친구들은 달랐다. 아직 우리는 더 도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해볼 수 있을 때 더 많이 해보고 더 많이 즐겨야 한다는 위주이다. 물론 나도 여기에 한 표 추가이다. 이렇게 각자의 입장에 따라 바라보는 것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인 친구들은 본인보다는 가족을, 미혼인 친구들은 본인의 경험과 삶을 더 바라본다.


이렇게 각자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진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저 다른 것뿐이다.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얼마 전, 나는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사직서를 꺼냈다. 살짝 떨렸던 그날의 기억, 이내 나는 덤덤해졌다. 그리고 홀가분한 기분까지도 들었었다. 이전의 회사는 사정이 좋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떠나게 되었었기에 사직서라는 서류에 직접 자필로 서명을 한 건 처음이었다. 그때의 기분은 아마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차례대로 윗분들과의 면담을 진행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 회사에서 가장 어른이신 회장님과의 면담도 마무리했다. 모두들 본인들의 인생 얘기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말들을 해주셨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그런 얘기들이었다. 그리고 회장님께서는 그동안 미안했다는 말과 수고했다며 악수를 하고 마무리했다. 순간 뭉클해졌었다. 이제 정말 마무리를 다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떠나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보았지만 떠나는 나를 스스로 보니 누구보다 좋은 분위기에서 마무리하고 있어서 이곳 생활을 나쁘게 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윗분들과 나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 회사가 잘 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방법이 달랐던 것 같다. 그게 조금 아쉬웠었다. 일개 직원으로써 업무 지시를 따르는 건 맞지만 여러 직원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더 나아지기를 바랐던 것뿐이다. 더 나은 성과를 위해서는 직원들의 마음을 잡아 그들이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었다.


상무님과의 2차 면담을 통해 내 퇴사 일자는 12월 31일로 정해졌다. 1월 중순까지는 생각했었지만 인센티브와 급여까지 모두 챙겨주신다고 하셨다. 아마 나름 생각해 주는 방향이라고 여기실 것 같다. 갑자기 훅 줄어든 날짜에 살짝 당황을 하기는 했지만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에게 나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하나씩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쌓아두었던 메모들과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렸다. 오늘은 종무식 겸 송별회 회식도 있다.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3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과 함께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던 곳에서의 시간도 마무리하게 된다.


궁금하다.

그때의 난, 기분이 어떨까?

이전 05화2. 회사를 떠나다, 방향을 틀어_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