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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나무 Apr 23. 2018

광고회사가 힘든 이유 #2

열정 검증이라는 이름의 노동력 착취

전 직장인이 아닙니다. 직업인이에요 

‘전 직장인이 아닙니다. 직업인이에요.’라는 오그라드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녀석이 있었다. 월화수목금금금, 야근은 밥 먹듯, 철야는 정기적으로. 광고주가 주는 스트레스에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감, 광고란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직업인을 부르짖던 그 녀석은 열정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왔고 그에 비해 열정이 부족했던 나를 은연중에 질책하곤 했다. 난 그런 그의 시선이 매우 불편했고 불합리한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녀석이 나보다 나았던건 오직 열정 한가지 였기 때문이다.

 

광고인으로서의 사명감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처음에는 자부심이란 게 있었다. 남들이 멋지다고 한 마디씩 해주는 직업을 가진 것에 대해 허세감도 있었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때의 재미도 내가 던진 결과물이 세상에 나가 조금이라도 파문을 만들어 내는 결과에 대한 성취감이 있었다. 그것이 내가 고된 생활을 버티며 이 업을 계속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건 스스로 느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수많았던 신입, 인턴들 중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직업 중 하나로 광고를 선택한 후배들도 있었다. 그중 많은 친구들이 업계를 떠나는 모습을 봤다. 난 그 이유 중 하나가 선배들이 가진 열정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강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때는 말이야

나 때는 말이야 라는 말을 접두사로 쓰시는 소위 꼰대 어르신들, ‘난 일주일 밤도 새워봤어.’ ‘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일주일치 속옷을 챙겨서 왔지.’, ‘내가 왕년엔 한 번에 20개 광고주를 한 번에 쳐냈어.’ 등등 무용담 아닌 무용담을 늘어놓는 꼰대들은 그를 통해 은근히 후배들의 나태함을 지적한다. 자신은 주말이건 휴가 건 다 반납하고 일에 올인하였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후배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시도가 ‘열정이 없다.’라는 말로 포장되어 왔다. 


‘넌 광고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있니?’, ‘넌 광고하면서 행복하니?’ 비단 나이 많은 어르신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갓 30대 중반을 넘긴 이들도 신입이나 후배 사원의 열정을 검증하고 강요한다. 이 검증의 기저에는 단순히 좋은지 않좋은지의 문제를 떠나 열정이 없으면 실력도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생활을 많이 포기해야 하기에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면, 좋아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일이 힘든 건 성인이 된 우리는 결국엔 꾸역꾸역 버티어 낸다. 오히려 버티지 못하는 건 열정이 없다고 낙인찍고 비난하는 선배들의 시선과 선입견이다.  


안타깝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열정과 업무능력에는 별 상관관계가 없다. 일이란 건 그냥 잘하는 사람은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못하는 거다. 못하는 사람이 열정만으로 달려들면 재앙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업무능력은 최악인데 열정이 가득한 상사와 함께 일한 다는 건,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회사에서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완성된 결과물의 퀄리티여야지 잘 만들어 내고자 하는 정열적 의지나 투여된 시간은 아니어야 한다.


광고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의 행복 지수가 높아질 수 있으니 스스로에게는 긍정적인 일이다. 또 그런 후배를 대견하게 바라보는 선배의 시선도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강요하거나 없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더욱이 열정이란 이름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더러운 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더군다나 세상의 트렌드가 일보다는 자신의 생활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데 트렌드의 선봉에 서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바보스러울 만큼 보수적이다. 자신의 고생을 대대로 이어주는 수단인 열정 검증을 멈추지 않는다면 앞으로 광고업을 희망하는 인재는 점점 더 줄어갈 것이고 업계는 사양산업의 길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안 그렇습니까 선배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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