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난자채취
7일간의 과배란 주사를 마치고 난자채취를 하게 되었다. 블로그 후기들을 보면 과배란 주사를 열흘이상 맞는다고 하여 열흘을 예상했었는데 나의 경우는 난자가 힘이 없다는 이유로 예상보다 앞당겨 채취를 하기로 했다. 난자가 힘이 없다니. 사십 대가 되니 삼십 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체력임을 몸소 경험해서 알고 있었지만 난자의 체력도 나의 몸상태와 같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 결과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 뿐 나만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예상했었어야 했다.
백 세 시대라고 하니 마흔 초반이면 아직 인생의 반도 채 살지 않은 셈이고 24시간으로 환산한다면 오전 열한 시 반 정도에 걸쳐져 있다. 아직 점심도 지나지 않은 나이라니! 그러나 임신을 위한 생물학적 나이로는 깜깜한 저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젊고 건강한 여성 또는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는 여성의 경우에는 난자 채취 시 10개~20개 이상의 난자가 채취되기도 한다는데 나는 과연 몇 개가 채취될까 궁금했다.
과배란 주사를 맞으면서 3~4일에 한번 꼴로 초음파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이때 난자의 개수를 체크할 수 있다. 초음파 화면에 비친 나의 자궁 안을 들여다보니 전문가는 아니지만 난자로 추청 되는 동그란 형태들이 몇 개 보이지 않았다. 채취 전 마지막 초음파 검진 시에 2개의 난자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국가지원금이 나오긴 하지만 그 지원금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을 부담하면서, 일주일이나 내 배에 자가주사를 놓았는데 달랑 2개라니. 아니 이런 결과라면 주사를 맞을 필요가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병원을 탓할 수도 주사를 탓할 수도 그렇다고 나이 먹은 나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팔에 꽂힌 주삿바늘과 시작한다는 짧은 의사의 말을 끝으로 나는 의식이 없는 세계로 빠져들었고 눈떠보니 회복실이었다. 간호사가 다가와 나에게 조용히 속삭이듯 말해주었다. 4개가 채취되었어요. 2개라고 했는데 4개라니! 이런 로또가 다 있나. 그런데 문제는 채취된 개수보다 수정되어 최종 동결까지 이르러야 하는 배아의 개수였다. 산 넘고 산이고 물 넘어 물이라. 분명한 것은 이 결과는 임신의 결과가 아닌 준비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4개가 채취되었으니 2개는 동결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한 개도 동결되지 못할 거라는 낙담이 마음속에 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제 1차 채취과정을 겪은 것이니 시험 삼아해 보았다고 생각하자. 안 되면 다음에 또 하면 되지 하는 조작된 긍정의 마음을 먹어야 했다. 동결 결과는 무려 2주 뒤에 발표되었는데 기대를 저버리니 그 2주는 생각보다 평범하게 흘러갔다.
결과를 들으러 간 날, 나는 또 한 번 로또를 맞았다. 1개가 동결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누군가는 겨우 1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실망감에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1'이라는 숫자의 결과는 기쁨 그 자체였다. 더불어 힘이 없는 난자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정자와 잘 만나서 합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신비롭기까지 했다. 물론 2개가 동결되었다면 바로 이식을 진행할 수 있었을 테지만 처음부터 2개의 배아를 이식하자고 했던 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나는 일정기간 휴식을 취한 2차 채취를 하기로 했다.
당분간 자가 주사를 맞지 않게 된 것에도, 먹고 싶지만 참았던 음식을 먹을 수 있음에도, 다행히 한 개의 든든한 보험이 생긴 것에도, 모두 감사했다. 겉으로 드러난 나의 나이, 신체는 나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마음은 달랐다. 50대가 되어도 60대가 되어도 나의 마음의 근육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1개의 빛나는 결과를 얻은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