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猫)한 단상

뜨거운 여름, 서늘한 외로움

by 행하

한낮의 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저녁 잠시 스쳐가는 여린 바람 자락이 고마운 여름밤이다.


내 친구 고양이 마로는 저녁 바람 한 자락에 외로움도 심심함도 날려 보낸다.


마로는 마루와 회사 마당에서 형제 고양이로 태어났다. 출신지를 따지자면 완전 스트릿은 아니다. 왜냐면 회사마당은 휀스와 수목들로 외부와 경계가 분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아이들 챙긴 지 10년 차 된 케어테이커(요즘은 캣맘이라는 말보다 이 단어를 더 많이 씁니다.)이다.


회사아이들은 대부분 얼굴을 알고 중성화도 시켜 익숙하지만 간혹 어미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아가냥들이 나타나곤 한다.


마루와 마로도 그런 고양이 중 하나였다.

어미가 안전하게 밥 먹고 살라고 녀석들을

이곳에 독립시켰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아깽이들은 원래 천진난만, 똥꼬 발랄을 장착한지라 하는 짓이 귀엽고 사랑스럽기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아 참, 이 녀석들은 황금 치즈빛 털에 줄무늬도 예쁜 치즈태비이다.


주는 사료 맛있게 먹고 밥엄마 보면 꼬리를 치켜올리며 바르르 떨며 반가움을 표시하던 녀석들은 어느새 5개월 차 냥이들로 쑥쑥 잘도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가 회사 일로 한 달 보름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당분간 출근을 못하게 되었을 때, 사실 제일 맘에 걸렸던 것은 회사고양이들, 특히 마로, 마루 형제였다.


왜냐하면 형제가 아빠냥이처럼 따르던 자몽이가 복막염 치료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장기간 약을 먹여야 해서 집에서 돌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몽이가 치료 차 4개월 무렵의 형제들과 헤어지고 나자 녀석들이 밤낮으로 에옹거리며 자몽이만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이런 걸 생이별의 아픔이라고 하는 건가?

너무 안쓰러워 매번 마음이 아팠는데 이번에는 내가 출장으로 장시간 이 아이들과 떨어져야 한다니 마음이 놓이지 않을 밖에...


동료에게 아이들 케어를 부탁하며, 그래도 주말엔 내가 와서 아이들 돌보겠노라 약속을 했다.


무거운 마음을 안은 채 출장을 이어가던 3주 차 되던 금요일 오후, 회사에 와서 마로와 마루를 찾는데 마로만 반갑다며 쫓아 나오는 거다.

"마로야, 마루는? 마루 어딨어? 응?"


왠지 이유 없이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늘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녀석들인데

한참을 찾아다녀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두워서 그렇겠지라며 내일 아침에 찾아보면 만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상하리만큼 불안함은 계속되었다.


다음날 일찍 회사로 출근해서 회사 경비를 맡아주시는 직원분께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저기 반장님, 마로와 마루, 노랑이들 둘 아시죠?

한 녀석만 보여서요~ 혹시 형제 못 보셨을까요?"

"그 녀석이 그 녀석 같아서, 잘들 지내던데? 뭔 일이야 있겠어요?"라며 걱정 말라 신다.


'그렇지? 잘 있는 거겠지?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거지?'라며 감사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찰나 함께 있던 젊은 직원의 말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아, 노랑 줄무늬 고양이요? 그 애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지난주 후문에서 차에 치여 다리가 부러진 노란 아이가 있었어요. 구청에 신고했더니 데려가던데요?"


설마 마루는 아니겠지?

늘 후문 쪽 화단서 사람 구경하기 좋아하던 우리 씩씩이는 아니지~ 아닐 거야...


나는 얼른 핸드폰을 열어 동물보호시스템 앱을 통해 지역 보호소 내 고양이 입소 현황을 검색했고 거기서 우리 마루가 케이지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사진 위에 종료라는 야속한 단어가 박혀 있는 걸 발견하고야 말았다.


"얼마나 놀라고 아팠을까, 우리 마루~ 태어나서 이 마당에서만 살았던 아이, 어쩌다가 이렇게..."


많이 울고 또 울었다.

내가 돌보던 아이가 나 없는 새 이렇게 죽다니...

회사마당 벤치에 앉아 계속 울고 있는 나를 남아있는 마로는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렇게 마로는 정말 혼자가 되었다.


마루의 죽음은 내게는 돌보던 고양이를 잃은 슬픔이었지만 남겨진 마로에게는 곁에서 함께 싸워주고 맛난 것을 나눠먹던 유일한 가족을 잃고 치열한 생존경쟁이 기다리는 고달픈 현실이었다.

마루가 떠난 이후 마로는 고양이들과의 영역 다툼에 얼굴과 몸에 상처가 끊이지 않았고, 지켜보는 내내 안쓰러움에 마음이 아팠다.


그러다 마로가 결국은 힘에 부쳤는지 마루와 있던 영역을 버리고 회사의 반대편 마당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쫓겨난 것이다.


마로가 영역을 옮긴 후부터 나의 이동 반경도 넓어졌지만 그래도 마로가 끝까지 이곳에 남아준 것이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


마로는 시크보이이다.

간식을 준비하는 내게 먼저 다가와 얼굴로 부비부비를 하지만 손이 다가 가면 바로 물러난다.


나는 마로와의 거리를 항상 존중하고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세상은 마로에게 그리 너그럽지 않으므로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녀석의 의지를 칭찬하고 싶다.


그러나 불타는 듯한 한낮의 땡볕에 지치고 지쳐 휀스 기둥에 쓰러지듯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그 고단한 모습이 안 됐어서 한 번쯤 꼭 안아주고만 싶다.


마로야,

사는 게 고달프지?

조금만 견디면 가을이 올 거야.

그럼 조금 나을 거야. 힘내!


※ 길 아이들의 삶은 늘 고달프지만 특히 여름,겨울은 더 힘겹습니다. 부디 길 위의 모든 생명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기를 바래봅니다.


마당 잔디에 앉아 있는 마로

여름 더위에 지쳐버린 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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