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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Oct 29. 2018

이사하다 이혼할 뻔.

이사와 이주 사이에서




남편이랑 싸웠다. 나의 결혼생활 자체를 통틀어 비난하고, 남편의 못난 점만 들어서 남편 자격을 운운하며 그 존재와 역할까지 부정해 버릴 정도로 아주 크게 말이다.


발단은 이사이다.


3개월을 제주에서 사는 해피한 꿈만 꾸었지 그에 수반되는 각종 과정은 떠올리지 못했다. '  살기'는 갖춰진 집에서 갖춰진 용품들로 살아가지만, 3달 살기 또는 일 년 살기 등 장기로 체류를 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이사가 불가피.


짐을 꾸린다 해도 한 달 살기가 한 달만 버티기 위한 짐을 차에 실어 보내는 것에 그쳤다면, 이번 나의 제주 살기는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달랐다. 특히나 남편의 입장에서는 회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쉴 집이기에 냉장고와 세탁기를 비롯한 각종 가전과 사계절 의류, 책, 옷장 등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 '이사'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3개월이라 해도 한 달 살기 집처럼 갖춰진 용품을 이용하며 살 수 없기 때문에 살림과 생활을 위한 대대적인 이사가 필요했다.


문제는 이사의 규모에 대한 각각의 시각 차이이다.


혼자서 이사를 하라고?


이사업체를 고르고 이사날짜를 정하는 것까지는 마쳐진 상태에서 맞닥뜨린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나는 당연히 이삿날 남편이 함께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남편은 포장이사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이사업체에서 해주므로 굳이 자신이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매사 혼자서 하려고 하지 않는다'부터 '어머니가 곱게 키워서 뭐든 못하겠다는 말부터 한다'라는 패드립까지 해대는 남편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근처에 사시는 친정부모님마저 '방학'한 내가 혼자서 하면 될 일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물론 친정엄마야 내 속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엄마마저 내 역성을 들며 이야기하다가는 우리 부부의 말다툼이 대전쟁으로 비화되리라는 것을 짐작하셨기에 앓느니 죽는 심정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친정아빠는 정말 자로 잰 듯 남편의 입장과 똑같았다.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 하면 되지. 그거 뭐 어려운 일이라고. 우리가 옆에서 거들면 되고."


부모님의 이런 반응에 더 부아가 치밀었다. 엄마 아빠의 고생은 근본적으로는 딸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이지, 사위가 남편 노릇을 편하게 하게 해주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입장은 이런 것이었다.


이사는 우리 가족의 일이다. 기본적으로 남편과 내가 계획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집 전체를 이사한다면 오히려 편하다. 전적으로 업체에 맡기고 나는 부차적인 것들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분 이사는 다르다. 현재 집에서 필수적인 것들을 제하고 제주집에서 필요한 것들을 추려내서 보내야 한다. 이를테면, 주방기구 중에서 냄비 3개를 남겨두고 남은 냄비 1개를 보내기 위해서는 먼저 '분리와 추출'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들을 별도의 상자에 정리해두는 것이 우리의 몫이 된다는 말이다. 이사 당일 업체 직원에서 '이거 이거는 두시고 이거 이거는 챙겨주세요'라고 모든 항목에 일일이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 조금 더 일하면 된다는 말은 내 시간과 노력을 희생하는 쪽에서 해야 할 말이지, 함께 해야 할 일은 안 하는 사람 입장에서 당연한 듯 요구하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가족은 이해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직장과는 달리 적당히 양보하고 조율을 하기가 편리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직장에서처럼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더 하게 되는 구조는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만약 가족이라는 이유로 여력이 되는 자가 더 일하고 그런 횟수가 누적되다 보면, 아무리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더라도 일방은 불만이 쌓이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가정생활에서도 '회사에서 눈치껏 솔선수범하듯' 임해야 한다.


직장에서는 뒷담화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타의적으로 솔선수범해지게 마련이지만, 가족 간에는 그러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기에 마음의 긴장이 풀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직장동료와 상사들보다 더 아끼고 배려해야 할 대상은 '가족'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급기야 '제주에 안 가면 그만'이라는 마음마저 솟구쳤다.


남편은 이런 마음을 모르는지, 모른 척하는 건지 언제 올 거냐는 재촉만 해댔다. 지금 같은 마음으로는 아무리 꿈의 제주라 한다 해도 불행할 것 같았다.


이삿날이 임박해지자 시가 사람들의 연락이 왔다. 나는 내 애끓는 마음을 그들에게 풀어냈다. 어차피 친정부모님에게 하소연한들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성향을 아는 시가 사람들은 "에휴, 단순히 지금 한순간에 쌓인 문제가 아닌 것 것 같다"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나 아주버님 같은 경우는 대학시절 남편과 자취를 하며 살아온 경험이 있어서 내 심정을 백분 더 이해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시간이 지나도 어색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형님도 시동생에게 느꼈을 답답함을 나를 통해서 재확인하는 듯 나의 입장을 이해해주었다. 정작 답답한 것은 남편이었지만, 그래도 나의 생각을 공감해주는 이들이 있으니 마음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지금 같은 마음으로는 제주에 가고 싶지 않아.


내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의 핵심 문구이다. 나의 성격을 잘 아는 남편은 단순히 사과를 받기 위한 협박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당장 주말에 집으로 오겠다며, 이번 사건에서 단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던 남편은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전세가 귀한 제주에서 발령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집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질까 봐 너무 조급해진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예민해져 있었다는 것이 남편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패드립에 관해서는 장모와 사위 간에 딸과 아내 흉보는 재미 정도의 발언이었다고도 해명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나의 심정을 아낌없이 어필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해소는 된 듯했다.


그리하여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제주로의 이사 혹은 이주>


배우자가 해외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 동반휴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해외(海外)이긴 하지만, 국외가 아니므로 여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국내이면서도 자칫 항공기가 안 뜨면 육지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고, 심리적인 거리가 상당하기 때문에 이곳 제주로의 이사는 '이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곳 제주 사람들 중에는 그런 용어를 쓰는 것부터가 제주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타 지역으로의 이사에 비해 여러모로 복잡한 것이 제주로의 이사, 또는 제주로부터의 이사이다.


우선은 운송수단이 달라진다. 육지에서 포장을 해서 항구로 이동한 후, 배에 선적하고 또다시 이사 트럭에 옮겨 실은 후 이사할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또한 육지에서의 이사업체와 제주에서의 이사업체가 다른 경우가 많아 각각 어떤 업체를 만냐느냐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달라지기도 한다. 육지에서 만족스러운 이사팀을 만났다고 해서 제주에서 정리하는 이사팀도 그러하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짐을 싸는 업체는 별로였어도 제주 쪽 업체가 괜찮은 경우도 있기에 그야말로 복불복이다.


나는 맘 카페에서 정보를 얻었다. 만족도야 개인의 차이가 발생하기는 하겠지만, 맘 카페의 소개를 받으면 업체들이 후기를 의식해서 최소한 엉터리 서비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제휴업체의 경우 할인 서비스도 있기 때문에 몇 개 업체 견적을 받은 후 바로 선택을 했다.


집 전체가 이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보니 오히려 어려움이 따랐다. 중복되는 물건,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불필요한 물건을 나누는 방식이다. 거기에 꼭 필요한 물건이지만 제주에서는 값이 비싸거나 배송비가 붙거나 대량으로 구매를 해야 하는 물건을 챙겼다. 특히 가구는 배송비가 필히 발생하며, 제주 내에서도 배송비가 드는 경우가 많아 중고가구라고 하더라도 배송 때문에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구 구입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현재 집의 가구를 많이 보내기로 했다.

   

남편의 짐은 제주가 생활의 본거지가 될 것이기에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몇 가지만 빼고 모두 챙겼고, 나와 아이는 그 반대였다. 겨울 옷가지 몇 벌에 봄여름옷을 챙겼고, 여행지 숙박할 때를 떠올려 최소화된 필수품을 챙겼다. 거기에 아이 장난감과 물놀이, 모래놀이 용품 등을 챙기니 꽤 많은 양의 짐이 나왔다.


이사 기간도 기본은 이틀이 소요된다. 육지에서 짐을 보내면 다음 날 아침 배에 선적해서 제주에서 짐을 받는다. 다행히 나는 육지에 있고, 남편은 제주에 있는 상황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가족 전체가 동시에 이사를 하는 상황이라면 제주 이사는 여러모로 시간 조율이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대로 대부분 육지이사팀과 제주이사팀이 다르기 때문에 포장이사이되 포장이사가 아니게 된다. 아무래도 물건의 본래 위치에 대한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포장이사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사는 사람이 정리해야 하는 부분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남편은 발령 날짜에 맞춰 출근해야 하므로 자동차에 최소한의 짐을 실어 먼저 보내고, 나와 아이는 남은 짐을 챙겨서 이사업체를 통해 보낸 후, 자잘한 것들은 또다시 자동차에 실어 보냄으로써 3차에 걸친 이사를 마쳤다. 다행히 남편회사에서 전근 비용이 지원이 되어 부담이 없기는 했지만, 제주로의 이사는 타 지역에 비해 수고와 비용이 적잖이 든다는 사실을 전에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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