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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an 04. 2019

제주에서 산다면 꼭 해야 하는 일

손님을 맞이하는 일


제주에서 살기 전에는 그저 설렘이겠지만, 막상 살기 시작하면 사람에 따라서는 한 달 내로 향수병에 시달립니다. 한달살이부터 해보겠다고 당차게 시작을 했지만 겨우겨우 일주일을 채우고 도망치듯 제주를 떠났다는 사람도 있고, 혼자서 6개월을 여행하며 살아도 아쉬운 것이 제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제주는 사람과의 인연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너무 심심한 사람과의 만남일 수도 있고, 알아도 알아도 끝이 없는 매력을 가진 사람과의 만남일 수도 있어요. 전자의 경우라면 육지의 시절사람을 떠올리며 눈물짓게 되지요. 제발 나를 보러 와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도 간혹 보게 됩니다.


나의 경우는 다행스럽게도 후자여서 특별하게 외로움을 겪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래도 육지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은 반가운 일이랍니다. 남편과  '육지에 있을 때는 못 보던 이들을 먼 곳 제주에서 더 보기 쉽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눠요. 제주사람들끼리는 '평소엔 연락도 없다가 제주에 오면 연락을 하는 얄미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저는 아직까지는 연락 없던 이들과도 연락이 닿아 좋습니다. 직장동료이든 친구이든 가족이든 누군가에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직은 행복합니다.


제주에서 산다면 누구나 하게 되는 일이 육지에서 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일이에요. 하지만 손님맞이가 마냥 반가운 일이 아닐 수도 있어요.


평일 아침 아이를 원에 보내고 요가를 하러 가는 것이 나의 일상인데 아무래도 손님들이 와 있으면 그들을 두고 운동하러 가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럴 때를 틈타서 운동에 빠지는 것을 합리화하기도 했고, 그들과 함께 평소에 안 가던 곳을 다니며 먹고 돌아다니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들이 돌아간 후에 풀어진 몸 컨디션을 다시 잡는 것은 쉽지가 않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끌벅적했던 며칠에 익숙해지다 보니 다시 조용해진 집안과 하루가 더없이 외롭게 느껴진답니다. 괜히 혼자 남겨진 것 같고 다시 처음 제주에 왔던 시절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하지요.


뿐만 아니라 나의 홈그라운드를 방문한 손님이기에 한 끼라도 내가 대접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우기가 어려워요. 특히나 제주의 특식을 맛 보여 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고민은 고민대로 지출은 지출대로 생겨나지요. 그래서 맘카페에서 자주 보는 글 중에 하나가 '손님들에게 어디를 모시고 가야 할까요'라는 주제와 '왜 제주에만 오면 연락을 할까요'라는 내용의 글이랍니다.


누구세요?

-유현재 단편시집 '그냥 그렇게 내버려둬' 중에서

육지살땐 연락없던
제주와서 연락하네

우리언제 친했었나
뜬금없이 친한척에
반갑다고 말했지만

반갑다고 웃을수도
할말없다 끊을수도
제주사는 우리들맘
누구하나 알아주랴

제주맛집 나도몰라
제주펜션 나도몰라
왜들다들 연락하나

이거하나 물어보자
육지가면 밥사주나
육지가면 술사주나
육지가면 재워주나

반가운척 고맙지만
마음한켠 부담일세

우리그냥 살던대로
살던대로 살자꾸나

행여라도 서운말게
너와나는 여기까지.


오죽하면 이런 시가 카페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을까 생각하면 제주에 사는 이들의 고민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지요.


이 시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대접에 대한 의무감 이외에도 손님들에게 제주에 대한 만족감을 줘야 한다는 사명감도 접기가 어렵답니다. 자신이 제주도지사나 홍보도우미도 아닐진대 제주에 애향심과 자부심으로, 혹여라도 '제주 별로네'라는 말을 듣게 될까 봐 '있는 최선, 없는 최선'을 다합니다. 솔직히 내 마음 편하려고 남들 버리지 못하는 것들 포기하고 온 제주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편해지는 마음도 헤아려주어야겠지요.


내 삶의 규칙이 깨지기도 하며, 나의 홈그라운드를 방문한 손님이기에 대접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그들에게 제주에 대한 만족감을 줘야 한다는 사명감. 그래서 제주사람들에겐 손님맞이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닐 수도 있어요. 특히나 손님맞이가 너무 잦은 경우라면요. 에게는 한 번이지만 그들에게는 여러 차례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좋겠어요. 평소에 자주 안부도 물어보며 제주인들이 먼저 챙겨주고 싶은 손님이 되어보는 건 어떨지요.


고맙게도 나의 지인들은 제주에 와서 적응하며 사느라 고생한다며 대접한다는 것을 한사코 마다하고 오히려 사주고 돌아가는 분들이었어요. 주로는 가족들과 친인척들이 옵니다.


오늘도 손님들을 공항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은 괜스레 허전합니다. 집도 조용하고 그들 덕분에 평소엔 가지 않던 제주 곳곳을 누비고 다닌 기억으로 가득 찼습니다. 운전해서 데리고 다니느라 고생했다며 굳이 쥐어준 쌈짓돈을 내려다봅니다. 의무감, 부담감 모두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럴 땐 탁 트인 바다로 가서 '그래, 제주에 잘 왔어'를 다시 한번 확인하러 가면 됩니다.


이제 얼마 안 지나서 또다시 손님들을 맞이하게 되겠지요. 제주인들의 일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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