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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Oct 22. 2018

제주에서 우리 집 찾기




남편은 발령과 동시에 제주로 날아갔다. 남편회사는 발령이 난 다음 주 월요일부터 발령지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인사라는 것이 모두의 바람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므로 발령과 근무 개시일과의 시간적 거리가 짧을수록 불만의 소리가 작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갑작스럽게 옮겨가면서 최소한의 옷가지와 살림들만 챙겨서 갔고 임시거처는 회사에서 마련해 준 공동숙소였다. 첫날은 어색한 인사와 함께 식사를 함께 했다고 하더니 며칠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얼른 방을 구해서 나가야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하지만 그때는 제주에서 집을 구하기가 어려운 시기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제주에는 '신구간'이라는 것이 있어서 주로 이때 이사를 하는 풍습이 있다. 대한 후 5일째부터 입춘 3일 전까지 일주일 가량인데, 육지사람들이 '손 없는 날'이라고 하는 기간이 제주사람들에게는 '신구간'인 것이다. 신구간에는 이사비용도 비싸고 신구간을 대비한 물량도 기다렸다는 듯 많이 쏟아진다.


우리는 이 기간을 놓쳤다. 정확히는 이 기간을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알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어쨌든 부랴부랴 남은 물량 중에 조건에 맞는 집을 알아봐야 했다. 남편과 동시에 발령 난 많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처지였기에, 남편은 집을 구하는 일에 굉장히 조급해했다. 더 좋은 집을 더 좋은 가격에 구해야 하는데, 물량은 한정적이라, 룸메이트 중에 누구 하나라도 집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날에는 더욱 초조해했다. 본래 느긋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양반인데 이때만큼은 얼른 집을 구해야 한다며 밤마다 전화를 붙들고 나를 설득했다.


조급한 마음은 혼자라도 집을 구할 기세였다. 하지만 한 두푼 하는 물건이 아닌 이상 남편의 선택만 믿고 따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얼른 아이와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남편의 말대로 물건은 거의 없었다. 특히 제주에 드물게 있다는 전세를 구하려다 보니 더욱 그러했다.  


전부터 제주에는 전세가 없다고 들어왔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제주에도 전세는 있다. 특히, 근래에는 외지인들의 투자가 일면서 '살 집'의 개념보다는 '빌려줄 집'으로 사둔 집들이 많아서 전셋집도 종종 나오곤 한다. 물론 기본적로는 '연세'의 개념이 더 일반적이기는 하다. '연세(年貰)'라는 것은 일년 치의 월세를 일시불로 지불하는 방식이다.


들르는 부동산마다 "전세는 없어요", 라든지 "그 가격대의 전세는 없어요"라는 대답이 주로 나왔다. 때때로 있는 물건은 너무 오래되어 망설여지는 집이거나, 바다에 너무 근접해 있거나 하는 등의 걸림돌이 하나씩 있었다. 남편이 연가를 내고 하루를 꼬박 돌아다녔지만 소득은 없었다.


저녁 무렵. 남편은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주변의 부동산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러자 몇 개의 '비밀 물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주도 육지와 마찬가지로 부동산끼리 네트워크가 있어서 주로 물건을 공유하지만, 자기 부동산에만 가지고 있는 비밀 물건들이 있기 마련이기에 이를 노리고 전화를 걸어본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원하는 지역과 원하는 가격대의 물건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급한 마음에 당장 집을 보러 갈 것을 어필했으나 내일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제주는 6시 이후에 근무하는 곳이 드물다. 업무조건은 정말 선진국 수준인 것 같다. 재료가 소진되면 문을 닫는 음식점도 부지기수이고, 한창 밥시간인 8시 무렵 되어 문을 닫는 곳도 굉장히 많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이지 않은 시간에 문을 열고 닫는 곳도 적지 않다. 부동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6시가 넘어가면서 전화를 받는 부동산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밤이 지나는 사이에 몇 개의 비밀 물건들을 다른 사람이 계약할까 걱정이 되어 신신당부를 했다. 내일 아침에 연락이 닿는 대로 보러 가겠노라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6시 이후에 일하는 부동산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매우 절박했다.


집을 구하기 위해 갔던 기간에는 나도 묵을 방을 구하느라 신경을 써야했다. 남편이야 공동숙소에서 머문다지만 나와 아이가 머물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함덕 쪽 마당 있는 집을 구했는데 외풍이 세서 덜덜 떨며 밤을 지새웠다. 며칠 후엔 남편 회사 근처의 비즈니스 호텔을 구했는데 마당 있는 집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지만 난방이 잘 되고 온수가 잘 나오니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아무튼 이튿날 집을 보러 갔다. 약속한 물건이 하나 더 있었지만, 위치와 가격을 고려했을 때 더할 수 없이 괜찮았기에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 하지만, 계약서를 쓰는 일도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우선은 날씨 여건이었다. 제주는 워낙 따뜻한 동네라 눈이 많이 오지 않는데, 기상이변이 일어난 건지 이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눈이 내렸다. 눈이 오면 그 신기한 풍경을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주곤 하던 제주사람들도 '이제 정말 눈이 지겹다'라고 할 정도였다. 오르막길에서는 자동차들이 언덕을 오르지 못해 헛바퀴를 굴리며 위험한 풍경을 자아내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회사에서 구해주는 전세이기 때문에 전세권 설정을 위한 많은 서류와 절차가 필요했다. 회사에 소속된 법무사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야 했고, 공인중개사에게 여러가지 요구를 해야 했다. 더 곤란했던 것은 임대인이 육지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류를 주고받는 것에 있어 번거로움은 말할 것도 없고 급기야 인감도장을 찍기 위해 갑자기 비행기표를 구해서 임대인을 만나러 가기도 해야했다. 그리고 그 서류를 다시 법무사 사무실로 등기를 보내는 등 첩보작전과 같은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계약을 마칠 수 있었다.


이런 고생의 시간이 있었기에, 비록 낡기는 했지만 아담한 아파트 1층에서 아이가 맘껏 뛰놀 수 있는 자유를 얻었고, 햇빛 찬란한 날씨에 빨래를 널어두고 외출할 수 있는 여유를 얻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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