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왔으면 제주법을 따라야지

by teaterrace


제주사업소로 발령이 난 남편이 맡은 일은 그전의 사업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분명히 '제주식'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종종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 나도, 실행하는 남편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들이 많았다. 그래도 남편은 보통의 직장인들처럼 그것에 따를 뿐이었다. 사실 그래야 했다.


제주는 보통의 도시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 존재하는 것 같다. 현재 남아있는 제주의 방언도 16세기 표준어의 형태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니 육지에 비해 고유의 전통과 풍습이 쉽게 변하기 어려운 '섬마을'이란 지형적 특색을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마을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사를 모시는 방에 여자는 기웃거리지도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나이 든 세대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젊은 요즘 엄마들도 아이가 밤에 자다 깨서 울거나 깊은 잠을 못 자면 유명한 무당을 찾아가서 넋을 들이는 일이 매우 일상적이다. 후에 이야기하겠지만, 아이가 바다에 빠졌다가 구조된 적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하면 제주사람들은 어김없이 '넋들임을 해야 한다'라고 일러주었다. 넋들임이란 사고를 당하거나 깜짝 놀랐을 때 넋이 나간다고 생각하고 빠져나간 넋을 찾아 다시 들여 넣어주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현재 우리에게는 지나치게 유교적인 관습이나 토속적인 민간신앙쯤으로 여겨질 법한 일들이 제주에는 아직 공공연하게 남아있다. 그렇기에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 특히 육지사람들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우선, 이장님부터 부녀회장님, 청년회장님, 노인회장님에 이르기까지 각종 마을회장들의 지위가 굉장히 절대적인 곳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맡은 직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분들이 주관하는 행사도 많았고, 그에 따른 그분들의 파워와 입김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남편회사는 발전소 가동으로 인한 지역주민의 피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방법을 바꾸어야 하고 금전적으로라도 보상을 해주어야 할 사회적 의무가 있다. 안 그래도 티비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보일러라는 광고를 하는 통에 우리 아이는 '우리 아빠 회사는 미세먼지를 만든다'며 아빠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어린아이들조차 화력발전소가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생업에 종사하는 그분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테면 발전소 때문에 수온이 올라가서 조업량이 줄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발전소가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는다면 이 땅에서 명맥을 유지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사업소마다 지역사회 지원활동을 담당하는 업무자가 있고, 남편도 그중 하나인 것이다.


남편은 각종 마을회장들이 크고 작은 행사를 주관할 때마다 여러 방면으로 도와야 했다. 이를테면, 부녀회에서 김장 담그기 행사를 하면 거기에 일부 자금지원을 해주기도 하고, 해녀탈의장에 난방시설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것을 사주기도 해야 했다. 때로는 이미 정해놓은 음식점으로 가서 식사를 대접하며 그분들의 일방적인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었다. 그야말로 갑질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제주사업소에 오래 머문 직원들과 제주 토박이들에겐 이런 요구가 그다지 이상하게 여겨지 않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왜 그들의 과도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걸까. 아마 제주 땅에서 그분들의 뜻에 어긋나면 어떤 일도 쉽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 땅은 생각보다 좁다. 한 다리만 건너도 모두 지인이다. 부동산 계약을 하면서도 절실히 느꼈다. 육지에서 사는 집주인은 이런저런 우리 쪽 요구를 거절하다가 법무사의 전화 한 통화로 "아~ 우도?"라며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 듣자 하니 법무사 친구와 집주인 친구가 서로 같은 사람인 모양인데, 좁은 사회이기도 하지만 개인 간 미치는 영향력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물며 각종 마을회장의 영향력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회사 정문에서부터 본부장 나오라고 삿대질을 하며 회사를 드나들 수 있는 정도의 권력이랄까. 제주에 존재한다는 텃새 속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노력은 비단 개인뿐 아니라 회사, 단체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 연세가 높은 분들의 모임일수록 영향력은 더 올라간다. 이렇게 남편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그분들의 이미지는 TV에 나오는 재벌 노인들의 도도함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막상 만나 뵈면 우리가 익히 만나온 할머니 할아버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나에겐 마냥 오냐오냐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이지만, 우리 엄마에게는 까탈스럽고 어려운 시부모로 느껴지는 것처럼, 나의 위치에 따라 그들을 느끼는 감정도 상대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어쨌든 이곳은 그 법칙이 분명히 존재하는 곳이다. 때로는 억울하고 불합리해도 어쩔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주에 가면 제주법을 따르라



그렇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상식의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설령 상식 밖의 요구라 해도 이를 통해 개인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회 공동이익 또는 권리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발전기 가동 준공식 때 필요한 음식을 손수 대접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이렇게 지원해줘서 고맙다고 손수 잡은 해산물들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거한 한상을 차려서 발전소 사람들을 대접하기도 하기도 했다. 남편이 두고두고 잊지 못할 대접이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할 정도로 후한 인심을 가진 분들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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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잡은 해산물로 차린 해녀들의 한상


해줘야 할 것은 해주고 요구할 것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제주 마을회장들의 모습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평소 경험하거나 예측 가능한 윗분(?)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을 이야기하자면, 장례문화이다.


한 번은 주말에 남편이 상갓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회사에서 가까운 사람이 상을 당했나 보다 했더니 얼굴 정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워낙 규모가 큰 회사이다 보니 그동안 모든 사람의 애경사를 챙기지는 않았는데, 이곳 제주사업소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했다. 대부분 직원들의 애경사에 함께 참여해 축하해주고 애도해준다는 것이다. 상부상조하는 것이야 좋은 일이지만, 그 범위가 회사 직원 대부분으로 넓어지다 보면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도움을 우리도 돌려받겠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계산으로 '모두와 상부상조'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곳은 제주라 다르단다. 아예 팀 단위로 움직인다니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다녀온 남편은 또 익숙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보통 육지에서 만날 수 있는 장례음식은 주로 육개장과 소고기 뭇국인데 이곳 제주에서는 미역국을 내온다는 것이다. 관광 오면 꼭 먹게 되는 성게알미역국말이다. 미역국은 어쩌면 죽음보다는 탄생과 연관이 깊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아이를 출산하고 질릴 정도로 먹는 것이 미역국 아니던가. 그런 미역국을 제주에서는 장례식장에서 대접한단다. 탄생과 죽음은 동일 선상에 있는 것이라지만, 보통은 상반적인 개념으로 이해되다 보니 나 역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아무래도 섬이다 보니 고기보다는 해산물이 구하기 쉬우니 그런 음식 위주로 발달한 것이 아닌가 다. 어느 지역이건 장례식만마다 개성이 있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장례식 미역국은 이색적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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