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플라잉요가를.

플라잉요가가 나에게 준 것들

by teaterrace



세 달 살기의 목표 중 하나가 건강 회복이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체력이 말도 못 하게 안 좋아졌다. 잘난 것 없는 나에게 유일하게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체력과 건강이었다. 일 년에 감기 한 번 앓는 것 외엔 그렇다 할 질병을 앓아본 적도 없고, 어지간해서 어떤 일을 하건 힘들어서 못하는 것은 없을 정도로 체력은 장담하며 살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체력과 기억력이다. 아이만 출산한 것이 아니라 기억력과 체력을 같이 출산해버렸다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그것이 서글픈 순간도 많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쇼핑할 때만큼은 불끈 힘이 솟아나던 미혼시절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쇼핑을 즐기는 나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의무감으로 점철되어 들어선 지 30분 만에 지치고 걷기 싫어진 나만 남았다. 실내에서 느껴지는 답답함 때문이 아니라 다리부터 시작해서 허리까지 쑤시고 욱신거린다. 조리원을 나와 처음으로 마트에 갔던 날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몇 걸음 걸었다고 몸살이 난 것처럼 주저앉고 싶었다.


다행히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서 내 체력은 조금씩 좋아졌지만, 여전히 금방 지치고 금세 늘어져버린다. 미혼시절의 체력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체력 저하가 더 심해지다 보니 그때마다 드는 서글픔은 어쩔 수가 없었다. 휴직 중에는 아이와 복닥거리느라 시간이 없었고 복직 후에는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핑계이며 자기 위안이었지만 말이다. 남편에게 부탁을 하면 기꺼이 들어주었을 것이며, 친정엄마에게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미안한 마음도 들고,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저녁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들어서이며, 귀찮은 마음도 저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여, 아이를 낳고도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했다. 3개월간 기초체력이라도 좋아지면,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하게 되리라는 계산이었다. 아이를 원에 데려다주고 바로 학원에 가도록 스케줄을 잡았다. 집에 들어와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귀찮아지고 또 다른 일 때문에 운동이 뒤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잉 요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체험 신청을 했다. 그리고 그 즉시 3개월권을 끊어서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다. 플라잉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해먹에 매달려 날아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해먹을 이용해서 몸풀기를 시작해서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조금씩 몸을 걸치고 오르고 나는 것이다. 첫날의 기분을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해먹이 나의 허벅지에 감겨 조일 때 살이 비틀어져 찢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또한 손으로 해먹을 잡고 올라오는 순간에는 힘이 부족해 다시 거꾸로 매달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인버전(해먹에 거꾸로 매달리는 자세)에 들어서면 온몸을 쭉 늘어지는 기분이 들면서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해먹에 들어가 휴식하는 순간은 어머니의 자궁에 들어온 것처럼 그렇게 아늑하고 고요하고 평안할 수가 없었다. 격동과 평안이 함께 하는 플라잉요가는 나의 첫 운동치고는 꽤 매력적이었다.


물론 여전히 힘쓰는 방법을 찾지 못해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시고, 허벅지를 옥죄는 해먹이 살을 찢는 느낌은 있지만 눈꼽만큼씩 발전하고 있는 나를 보며 대견해했다. 선생님처럼 예쁜 동작은 절대 할 수 없어도 해먹에 의존해 그저 생사를 걱정하는 단계보다는 조금 더 나아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하게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느낌이 매일매일의 취감을 돋우는 게 크게 도움을 주었다.


길거리에서 늘씬한 아가씨가 휘트니스 레깅스를 멋지게 입고 당당히 활보하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물론 나는 나이도 체형도 키도 그런 모습에 근접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내 몸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변화를 관찰하며 조금 더 내 몸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게 되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식욕이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임신을 하고부터 '엄청 맛있는 것'이 없어졌다. 먹고 싶다가도 몇 술 뜨면 입맛이 사라졌다. 식욕이 없어졌으니 살이 빠지겠거니 했지만, 기초대사량이 떨어져서 오히려 살은 쪘다. 하지만 살찌는 것보다 슬픈 것은 식욕이 없으니 삶의 의욕도 같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운동을 하고 며칠 후부터 모든 것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식욕도 없는데 운동까지 하니 살이 쫙 빠지는 거 아니냐는 나의 농담에 남편은 운동하면서 식욕도 느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정말 그 말대로 됐다. 이런...


그래도 말이다. 의욕도 다시 되살아났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사서 아직 개봉도 안 한 우쿠렐레를 배워 바닷가에 앉아 한곡을 재미있게 연주해보기, 호텔 수영장에서 입겠다고 재작년 산 후 다시는 빛을 보지 못했던 크롭 래시가드를 다시 꺼내 수영을 배워서 바닷물에서 놀아보기, 그리고 육아휴직과 동시에 놓았던 전공 공부와 회화를 다시 시작해 보기, 중국어를 배우고 싶은 제주도민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기 등등.


방학을 맞이한 어린이처럼 난 계획만으로도 설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운동을 시작하고 얻게 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들과의 인연'이었다. 제주사람들의 인심은 참으로 후했다. 정말 텃세가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매일 아침 만나는 동생과 언니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며, 각자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고사리 스팟이라던가, 해녀들 구애받지 않고 해산물 채취가 가능한 곳에 대한 정보들도 알려주었다. 요가 원장님은 가끔씩 회원들에게 밥을 먹고 가라며 손수 차리신 음식으로 대접을 해주기도 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낫단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인 듯했다. 이렇다 보니 이들은 제주를 떠나기 가장 아쉬운 이유가 되어버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주에 왔으면 제주법을 따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