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부케 만들기

제주에서 4월을 보낸다면 꼭 만들어보세요.

by teaterrace




유채가 한창인 3월을 보내고 아직 찬기가 남아있는 4월이 왔다. 작년 기억에 의존해보면 하늘엔 벚꽃, 땅에는 유채가 만발한 지상낙원을 본 것이 요맘때였던 듯 하다. 그리고 청보리로 가득찬 푸른 가파도도 이쯤이었고, 매화가 그윽하게 입을 여는 것도 이쯤이었다. 뿐만 아니다. 조금 있으면 한라산 철쭉이 만발하고 성게알이 맛난 계절이 온다. 그야말로 무르익은 제주의 봄이 오고있는 것이다.



카페 게시글의 대부분이 이렇듯 다양한 꽃 사진들로 가득이었다. 전농로의 벚꽃길, 걸매공원의 매화, 녹산로의 하늘벚꽃 땅유채 등등. 그런데 그 가운데 뒤지지 않고 올라오는 자랑 사진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고사리 부케였다.


'고사리부케'란 이름 그대로 고사리를 꽃처럼 다발로 묶은 것을 말하는데, 공식 명칭은 아니고 그저 별명에 지나지 않는다. 카페에서는 고사리라는 제목만 붙어도 '어디에서 땄나요?', '와~ 정말 부럽네요' 등의 댓글이 수십 개씩 달렸다. 고사리가 이렇게도 인기가 있는 식물인 줄은 제주에 와서야 처음 알았다. 4월이 고사리 철이라는 사실도 물론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고사리를 즐겨 먹는 사람이 아니다.


'고사리'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제사상 위의 나물로써이다. 검은 갈색에 질기고 미끌거리는 느낌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해서, 고사리 자체의 맛이라기 보다는 참기름과 마늘맛으로 몇 젓가락 뜨는 정도이다. 유일하게 맛있다라고 느꼈던 것은 시어머니가 끓여주신 조기 매운탕 속의 고사리였다. 고사리가 원래는 검은 갈색이 아니라 초록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이 때였다. 또한, 고된 농사일에 검게 그을리고 쪼그라든 모습을 연상시키는 고사리를, 조그마한 아이의 손을 빗대어 고사리 손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를 알게 된 것도 초록색의 이 연한 고사리를 보고나서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있어 이토록 하찮은 고사리에 제주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주 고사리는 임금에게 진상할 정도로 맛이 좋고 귀한 식재료였다.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말린 고사리 1근이 4만원에서 비싼 것은 6만원까지 거래되고 있었다. 시장에 가면 물에 빠진 삶은 고사리를 몇 천원에 파는 모습은 보았지만 이렇게 몸값이 비싼 식물인 줄은 몰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고사리철에는 고사리를 따는 할머니들의 새벽이 매우 바쁘다. 소위 말하는 '고사리꾼'들은 동틀 무렵부터 정오이전까지 덥지 않을 시간에 바짝 딴다. 차림도 남다르다. 고사리가 자라는 곳은 가시나무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뜯겨도 무방한 옷을 입어야 한다. 하기에 시장에서 고사리 바지를 팔기도 하는데 뜯김에도 문제없는 소재에다 고사리를 넣을 수 있는 커다란 주머니까지 달려있다. 이 계절에 넉넉한 통바지를 입고, 등에는 커다란 배낭을 멘 차림의 할머니들을 본다면 십중팔구 고사리 할머니이다.


오죽 귀한 몸이다보니 자연스레 고사리 스팟도 아주 비밀스러워진다. 우스갯소리로 '고사리가 있는 장소는 며느리에게도 안 알려 준다'는 말까지 있을까. 게다가 고사리가 자라는 환경이 워낙 그늘지고 습한 곳이다 보니 쉽게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재미난 것이 고사리 따기이다.


카페에서 고사리 따러 같이 갈 사람을 모집하면 금세 선착순으로 끝이 나버린다. 고사리의 특성상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그 양이 많아지다보니 종횡무진, 무념무상으로 고사리를 따다가 길을 잃게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이맘때쯤 산 주변에는 '혼자서 고사리를 채취하지 맙시다'라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있다. 제주 지리를 잘 알고 많이 따본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닦여진 길을 따라 고사리를 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며 채취하는 것이다보니 최소한 2인 1조는 되어야 방향을 잃지 않고 되돌아 나올 수 있다. 그만큼 고사리따는 재미는 어떤 재미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고사리따기는 힐링이다.


고사리를 따는 이유는 그 자체로 돈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고사리를 따는 동안 온갖 상념이 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사리따기는 힐링을 준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천장에 고사리가 둥둥 떠다닌다는 농담이 실제로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따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다. 다른 식물들처럼 사람들이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어서 일정한 공간에 자라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사리를 따려면 우선 고사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풀들 사이에서 고사리가 '고사리가 아닌 것'처럼 숨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찾아냈을 때의 희열이 엄청나다. 숨어 있는 고사리를 눈을 씻고 찾는 재미는 한창 유행하던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 잡기'와도 유사하다.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든 고사리를 찾는 눈길은 마치 끊기 어려운 도박처럼 잠자리에서조차 아른아른 눈에 선하다. 정말 신기한 것은 분명히 내가 따고 지나간 자리인데도 다시 가보면 또 다른 고사리가 얼굴을 쏙 내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실을 거둬들일 때와는 달리 노동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게임과도 같아서 지치지도 않고 재미도 있다.


나를 찾아 보세요


여러번 제주를 다녀가신 엄마도 가장 만족스러워 하셨을 때가 고사리를 따러 오셨을 때다. 허리가 안 좋은 엄마는 고사리를 따는 내내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지만, 그 통증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몰입을 하셨다. 머무는 3일 중 이틀을 고사리 따기에 할애하실 정도로 대단한 열정을 보이셨다. 고사리를 찾는 재미, 수확의 기쁨. 모두 힐링이었다.


어렵사리 찾은 고사리지만, 사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후처리이다.


고사리가 상하지 않도록 말리거나 얼리는 작업을 해야하는데, 그 전에 고사리를 반드시 삶아야 한다. 고사리를 삶을 때 발생하는 수증기가 몸에 해롭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무엇보다 삶을 때 냄새가 비릿하니 참 고약하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고사리를 삶는 시간도 만만치는 않다. 삶고 나면 바람이 잘 드는 곳에서 말리거나 얼려야 하는데, 여기에서 제주와 육지의 방식이 나뉜다.

고사리 삶기


제주에서는 고사리를 말리지 않고도 먹지만, 육지에서는 말리지 않은 고사리는 미끌거린다는 이유로 선호하지 않는다. 내가 시장에서 본 고사리들은 제주 고사리는 아니었겠지만 육지사람들의 관습에 맞게 말렸다가 다시 물에 불려 나온 것들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많은 고사리를 언제 다 말리냐는 나의 고민에 제주사람들은 그냥 얼렸다 해동해서 먹어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고사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의 입에는 말렸다 다시 불린 고사리나, 얼렸다 해동한 고사리나 매한가지이겠만, 중요한 것은 막 따온 상태로 먹은 고사리는 정말이지 그동안 내가 알던 고사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부드럽고 연하고 입안에서 감도는 향기도 달랐다. 게다가 '내가 딴' 고사리라서 더욱 맛이 좋았다.


제주에서는 고사리 손을 손질해서 이른바 '손비빈 고사리'라고 하여 더 비싼 값을 받기도 한다. 또한, 고사리 꽂이 피면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육지에서는 꽃이 핀 대라도 연한 줄기를 따서 먹으면 상관없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딴 고사리는 그 양이 더욱 많았다. 고사리 할머니들이 따지 않은 것도 부모님은 신나게 수확하셨기 때문이다.


제주 고사리를 알게 되면서 관광객으로서 제주를 찾을 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을 알게되는 기쁨이 생겼다. 물론 관심을 갖고나서야 제주에 고사리 따기 축제도 있고, 관광객들도 많이 참가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제주에서 살면서 해본 것 중에 가장 즐거웠던 일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고사리따기라고 말할 것이다.


내년에도 그 곳에는 초록 고사리들이 나를 보러 오라고 손짓하고 있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