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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an 21. 2019

주말부부에게 워라밸이란?



워라밸은 Work - Life Balance의 준말로,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이란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사람들이 기가 막히게 말을 잘 만든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다음에서야 워라밸의 진짜 뜻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비교적 워라밸에 충실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담임을 할 때, 특히 고3 담임을 하거나 학생과 업무를 맡게 될 때를 제외하고는 어지간해서는 업무 시간 내에 스스로 업무를 조정해서 할 수가 있는 편이다.


특히,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하고 나서는 워커홀릭이라는 말은 다른 세상 이야기일 정도로 칼 퇴근을 해야 했다. 제주와 육지를 오가는 주말부부라, 평일에는 남편이 없고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친정부모님께서 아이를 돌봐주시다 보니, 할 수 있는 한 일찍 퇴근해야 한다.


다행스럽게 나의 칼 퇴근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나의 업무를 더하게 되거나 업무의 진행이 지연되지는 않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길에 만난 아이들이 "선생님, 칼 퇴근하시네요?"라는 인사에 "응, 퇴근 시간에 퇴근하는 거지."라고 말하면서도 어쩐지 열혈 교사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괜한 자격지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물론 나뿐 아니라 교사들의 칼퇴근에는 나 같은 가정 상황 이외에 여러 교육요건이 교사의 사기와 열정을 떨어뜨린 것이긴 하지만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주말부부라는 특수상황은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의 이해가 바탕이 되지만, 방학 때는 더욱 그러하다.


교사들은 방학 때 돌아가며 교무실 근무를 해야 하는데, 연수나 해외여행 등의 일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일정을 고려하여 근무를 편성한다. 나는 남편이 제주로 발령받은 이후부터는 정기적으로 방학에 제주에 가서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학기 중에는 주말부부 생활이 불가피하지만, 방학 중이라도 온전한,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학교 역시 이런 상황인 나에게 우선적으로 배려를 해주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이면 방학의 시작이나 끝 쪽에 배정해주면 좋겠다는 나의 부탁을 선뜻 받아들여 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방학 중 근무를 위해 제주에서 머물다가 다시 육지의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벌어졌을 터였다.


이런 배려가 있었기에 방학 중에도 나의 워라밸 생활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방학 중에 Life, 곧 가정생활에 더 충실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남편의 워라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면, 금요일에는 무조건 본가로 가야 하는 상황을 회사에서도 안다. 그래서 금요일에 무리한 일정을 만들지 않고 혹여라도 불가피하게 되면 남편은 제외시켜 준다.


특히나 요즘에는 회식도 목요일에 하고 금요일에는 진정한 자기 휴식을 할 수 있는 분위기로 바뀌어 금요일 본가행이 부담이 없기도 하다. 어쩌다 주말에 회사 차원 행사가 있거나 기상여건상 필요로 인해 직원들이 특별 근무조를 편성하여 출근하게 될 때도 있는데, 이때에는 회사에서 특별히 제외시켜 주는 듯하다. 편치 않은 마음을 가지고 본가로 오는 것은 남편의 몫이지만 말이다.


그 대신에 평일에는 퇴근시간 이후에도 남아서 일을 하고 오는 일이 잦았다. 심지어 바쁠 때는 사나흘 연속으로 새벽 2~3시까지 일하고 퇴근할 때도 있었다. 이는 워라밸의 포기라기보다는 빈 집으로 돌아오기 싫은 마음과 더불어 금요일 본가행을 수월하게 만들기 위한 사전작업이기도 했다.


이처럼 남편 역시, 제주와 육지를 오고 가는 주말 가족인 상황이 고려되어 많은 배려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주말부부의 삶, 더 나아가 '주말 가족'의 삶에서 주말 말고도 중요한 것이 바로 '워라밸의 유지'인데, 이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워라밸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 제 일을 충분히 해낸 자에게 주어지는 '자기 삶의 확보'가 당연시되는 사회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감사하게도 남편과 나 모두 주말 가족인 우리를 특권을 누리려고 한다고 하지 않고, 안쓰러운 가정상황이라고 여겨주는 '직장 내 이해'가 기반이 되어, 무사히 주말부부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 균형이 여러 차례 깨지거나 워라밸 추구가 심적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면, 우리의 주말부부 생활도 위기를 맞이했을 것이다.


주말 가족의 고된 삶 가운데 감사하며 살게 되는 이유이다.





일과 삶을 균형 있게 운영하는 것은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어떨 때는 일이든 삶이든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특히 많은 엄마들의 삶이 그러한 듯하다. 나 역시 주말 가족인 우리를 바라보는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 때문에 일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하고, 반대로 더 악착같이 일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주말부부로 떨어져 사는 우리를 걱정하는 많은 어르신들은 '그냥 학교 그만두고 남편 따라 제주에 가서 살지, 왜 그 고생을 하면서 사누?'라는 말씀을 하신다. 우리 친정부모님만 해도 일 하면서 혼자서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딸을 위해 본가를 두고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오셔서 우리 아이를 맡아주시고 계시면서도 가끔은 '이서방이 오라고 하면 못 이기는 척 같이 가서 살아'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를 떠나서 '직업이 없는 내 삶'에 대한 그림이 완벽하게 그려지지 않는데서 오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가 없다. 그리고 설령 직업이 없는 삶에 적응한다손 치더라도 온전히 나라는 '개인'이 미래에 어떤 모습일지가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그 좋은 직장'을 선뜻 버리고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와는 상반되게 시부모님은 '절대로 일을 그만두지 말라'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하셨던 상황이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젊은이가 자살로 생을 마무리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였는데, 남들은 얻지 못해 안달인 직업이니 절대로 그만 두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하지만, 뒤이어 '누구네는 둘이 열심히 벌어서 몇 년 만에 집 장만했다더라'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이로써 결국 둘이 열심히 벌어야지 '당신 아들 혼자 고생해서는 힘들어 안 된다'는 말씀이심을 알게 되었다. 외벌이가 힘들고 그것을 책임지는 쪽이 당신 자식이 되면 더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 집안에서는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케어하는 것은 '일하는 것'으로 취급받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는 것에 고민이 들었다.


남편은 분명히 결혼할 때에, 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가져서 부모님이 좋아하셨던 것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했었다. 부모님이 소개해 준 아녀자들 리스트에는 무직자도 있었다며, 나 자체로 마음에 들어하셨던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하지만, 노총각으로 늙어갈 줄 알았던 아들을 막상 출가시켜놓으니 이왕이면 아들 혼자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바뀌신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선택한 직업인데, 왜 내 마음대로 그만두지 못하나요?'


괜한 반발심으로 '그만둬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속하는 것도 그만두는 것도 나와 남편이 결정해야 할 문제이지 결코 부모님의 입김이 개입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부모님에 대한 반발심만으로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다만, 직업은 시부모님 앞에 내가 당당해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생각이 자리하게 되었다.


아직 나는 일과 삶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는 못했다. '다행히' 선택 장애가 있는 사람이어서. 평생을 고민만 하다가 정년퇴임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농담처럼 '먼저 그만두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아직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지도 않았다.




 노란 불빛이 아스라했던 성산대교 아래였던가.


"내 직업이 한 곳에서 머물면서 살 수 없는데 그래도 괜찮을까?"   


처음으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밤이었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결혼이 급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당장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고민하지 말자'는 것이 나의 대답이었다. 그 후에도 '닥치면 어떻게든 해나가겠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드디어 그 일이 닥친 것이다.



각자의 일과 가족이 함께 하는 삶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르는 운명.

다른 어떤 가정보다 일과 삶을 더 균형 있게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주말 부부, 주말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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