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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an 17. 2019

찌개가 끓는 저녁

나, 제주 안 갈래!



방학이 왔다. 직장인들에게는 꿈만 같은 방학이 나에게는 주기적으로 온다. 적당한 비교가 되지는 않겠지만 직장인들에게 연가가 휴식이듯, 나에게는 방학이 휴식이었다.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고 아무튼 이전에는 방학이 '출근하지 않는 것'에 방점을 두는 기간이었다면, 지금은 '가족이 다시 결합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정말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주말부부, 아이까지 더하면 '주말 가족'이다. 그것도 무려 제주와 육지를 오고 가는.


누구보다 방학을 가장 기다려 온 것은 남편이었다. 평일이 아무리 온전히 자신만의 시·공간을 즐길 수 있는 '꿀' 같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지극한 외로움은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다시 제주에 모여 생활을 하는 것에 한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가족이 다시 온전하게 모여 지내는 것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에 아이에 대한 고민이 자리했다. 이제야 기껏 원에 적응해서 다니고 있는데 그 리듬을 깨고 한 달 여간 천둥벌거숭이처럼 집에서 룰루랄라 지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다시 아이가 원에 적응하는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것은 또 친정부모님이라는 것. 그래서 제주로 향하는 마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제주로 떠나는 오후, 친정부모님은 '이서방, 이제 외롭지 않아 좋겠네'라고 하셨고, 남편은 '네, 정말 좋죠. 게다가 퇴근하면 밥상도 차려져 있을 거고. 흐흐흐'라며 농담을 던졌다. 나는 이를 놓치지 않고 '무슨 소리야? 내가 저녁 밥상 차려 놓기를 기대하고 나를 오라고 한 거야? 나, 제주 안 갈래!'라며 어깃장을 놓았다. 남편이 농으로 던진 말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주말마다 처자식에게 뭐 하나라도 더 해 먹이고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보는 것도 남편 쪽다. 하지만, 비록 우스갯소리라 해도 내가 기꺼이 차려주는 밥상과 의무감으로 차린 밥상은 엄연한 차이가 있기에 듣고 넘기지 못하고 항의를 해본 것이다.  


청개구리 심보가 들 때는 이때뿐은 아니었다. 여자가 혼자 애를 돌보는 노고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남자가 외로이 홀로 지내는 것은 '굉장한 고초'인 듯한 발언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친정 부모님조차도 '얼마나 외롭겠냐'를 연발하는데, 거기에 시부모님마저 나에게 전화하셔서는 '주말마다 오가느라 애쓴다'라는 말씀을 굳이 하시는 것은 참으로 듣기 거북하다. 이 말을 듣고도 '어머님, 저도 평일에 아이 돌보느라 힘들어요'라는 말은 입 속에서만 맴돌고, '겸이 보러 매주 힘들어도 오는 거죠'라며 내 탓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는 내 모습에 화가 날 때도 많았다. 굳이 따지자면 남편은 평일에 외롭긴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자유'라는 대가가 주어지고, 주말에 고작해야(?) 왕복 10시간만 몸으로 고생하는데 반해, 나는 매일 퇴근과 동시에 업무보다 더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도맡아 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 말씀은 마치 '매주 오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좀 이야기해줘라'라는 강요로 들려서 불쾌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에 더해 '네가 얼른 방학해서 가야겠다. 가서 보니까 혼자 지내는 꼴이 영 안쓰럽더라'라는 말씀도 '당신 자식만 가엽고 딱하게 여기는 시부모님'이라는 생각에 평소에 남편을 안쓰럽게 여기던 마음마저 사라지게 한다. (최소한 우리 부모님은 올케에게 '남편이 매일 늦게 와서 네가 혼자서 애 보느라 애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말이다.)


이렇듯 꼬인 마음으로 받아들였지만, 그래도 가족이 모여 지내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비록 엉망이 된 제주의 집을 보며 한숨이 나왔지만 말이다. 셋이 한 방에 나란히 누워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주말'이라는 특수상황이 아니고 일상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벅찬 기분이 들었다. 아침에는 채 눈도 못 뜬 채 남편을 배웅했지만 닫히는 현관문 사이로 보이는 남편의 두 눈에 웃음이 그득했다. 마치 '우리 조금 있으면 또 볼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가져온 짐을 정비하고, 남편이 몇 개월 동안 늘어놓고 산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는데도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 기쁜 마음으로 시작한 정리가 어느새 볼멘 투정 거리로 변해 있다. '도대체 왜 이건 여기에 놓은 건데?', '제대로 개켜 놓으면 안 돼?', '어떻게 6개월 전에 놔두고 간 것을 지금까지 그대로 둘 수가 있냐?' 등등 갖은 잔소리에도 남편은 싱끗, 하고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평소의 남편이었다면 어떻게든 듣기 싫은 내색을 하였을 테지만, 내가 제주에 와 준 것, 그래서 함께 있게 된 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위로가 되었던 모양이다. 함께 지내고 있기에 이런 잔소리도 들을 수 있는 것이라 여기며, 잔소리 조차 반가웠던가보다. 하기야 퇴근하면 적막했던 집이 내 잔소리와 더불어 아이 떠드는 소리로 시끌벅적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어쨌든 끝없는 잔소리를 하던 나도 피식, 하고 웃음이 났다.



"맘 속으로 괜히 오라고 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아니, 근데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당신이 생각해도 잔소리가 너무 많았다고 생각이 들었어?"

"응. 크크. 당신이 회사에 가서 동료들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상상을 했어. 집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막상 오니까 얼른 다시 갈 날이 기다려진다고 말할 것 같아서..."


우리는 박장대소를 하고 웃었다.



요즘 제주의 겨울은 영상 기온이다. 육지에 비해 따뜻한데도 구름 낀 날이 많아 음산한 느낌이다. 퇴근 후 밥상을 기대하는 남편을 위해 '기꺼이' 뜨끈한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그래 봤자 있는 재료가 없어 조촐하게 찌개 하나를 끓이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집에 일찍 가면 뭐 해, 아무도 없는데... 일이나 좀 더 하고 가려고'라는 멘트가 고정이었던 남편은 칼 같은 퇴근을 하고 집으로 왔다.


"우와, 저녁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냄새 좋다."


사람 냄새, 찌개 냄새 뒤섞인 집엔 사소한 것으로도 웃고 있는 우리 가족이 있다.


찌개가 끓는 저녁.

다른 이들에게는 보통의 일상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더없이 귀한 저녁 시간이다. 비록 시한부 가족이지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련다. 평범한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주말부부를 하고 나니 절실히 깨닫는다. 소중한 보통날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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