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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an 28. 2019

남편에게 질투가 난다. 나만 그래?

주말부부에게도 여가생활의 자유를 허락하소서.




당신은 올해 버킷리스트가 뭐야?


남편의 질문이다. 순수한 저 질문에 왜 나는 가슴이 답답해지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배부른 소리로 들려서 일 것이다. 최대한 심드렁한 말투로 내 심경을 드러냈다.


"그런 거 없어. 굳이 뽑자면, 다이어트를 좀 해볼까 해. 결혼하고 처음으로 말이지."


얼마 전부터 간헐적 단식을 해보겠다던 내 말을 들어왔던 남편은 여기에 이렇게 답한다.


"다이어트도 좋은데 우선 건강을 생각해서 굶는 쪽 말고 운동을 시작하는 게 좋겠어. 그때 필라테스 시작했어야 했는데..."


정말 이 양반은 내가 안 하고 싶어서 시작도 못하는 줄 아는 걸까. 이번엔 부아가 치민다.


"저기... 내가 퇴근하자마자 겸이 봐야 하는데 어떻게 운동을 해. 아휴 정말..."


남편도 이에 질세라 대답한다.


"건강해져야 겸이 돌볼 힘도 나지."


모르는 바 아니올시다. 하지만 친정부모님께 애 맡겨 놓은 형편에 그게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학교 선생님들 중에 운동하는 사람 없어?"

"있지! 애가 없거나 이미 다 키워놓은 선생님들."


남편은 그제서야 수긍하는 모양새였다.


우리 학교는 교원복지 차원으로 일주일에 각각 이틀씩 두 타임의 요가와 헬스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무료에다가 강사 실력도 꽤 수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라도 일과 후 운동을 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친정부모님이 마음에 걸려서 못할 뿐. 구구절절 추가 설명 없이도 내 마음을 헤아려 주는 이는, 나와 비슷한 처지인 동료 선생님이다. 우리 둘은 운동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쉬움을 성토한다. 그런 나에게 운동을 하라는 말은, 노땡큐. 고맙지만 사치로 들린다.


남편이 아이를 케어하면서 운동하라는 말을 한다면야 얼마든지 고마워하며 다녀오겠지만, 지금 우리는 주말부부. 불가능한 상황이다. 자기 부모님이 아이를 돌봐주셔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서운한 마음마저 든다.


하지만, 만약 주말부부가 아니었다면 남편은 기꺼이 그렇게 해 줄 사람임을 알고 있다. 남편과 함께 지낼 때에도 '얼마 남지 않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핑계로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 것은 나였다. 지금은 내가 원해도, 남편이 해주고 싶어도 불가능한 주말부부 신세가 되어 버려서, 그저 말로만 할 뿐이다. 건강을 위해 운동 좀 하라고. 


그럼 홈트레인이라도 꾸준히 해, 라는 말로 상황이 정리됐다. 어쨌든 평일은 아이를 돌봄으로 인해 운동이든 취미 활동이든 그림의 떡이다. 나에게는.






남편은?


가능하다.


남편의 버킷리스트를 보여주는데, 읽어보니 가관이다.


한라산 등반하기, 오름 3개 오르기, 올레길 3개 완주, 극장에서 영화 12편 이상 보기, 10km 마라톤 참가, 한치 10마리 이상 낚기, 돔·문어 잡아보기, 큐브 맞추기, 체중 70kg 만들기, 두 번 이상 반복해서 읽은 책 3권, 수영 배우기, 풀스 게임 2개 이상 독파 등등.


물론 '버킷리스트'이기에 이것들을 꼭 할 수 있으리란 보장은 다. 하지만, 꿈이라도 꿀 수 있다는 건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 귀찮아서 안 할 수는 있어도 시간적 제약 때문에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나와는 큰 차이가 있다.


질투가 났다.


내가 못하니까 남편이라도 즐기라고 해줘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마음이 하해(河海)와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해서 남편만 꿈꿀 수 있는 게 싫었다. 나는 이 모든 걸 하려면 아이를 제쳐놓거나 친정부모님의 희생이 뒤따라야 가능하다는 마음속 걸림돌이 있는데, 남편은 거리낌 없이 꿈꿀 수 있는 게 미웠다.


사실 남편의 버킷리스트 중에 태반은 주말에 집에 오지 않고 제주에 머물러야 가능한 것들이다. 물론 평일에 연차를 쓴다면야 가능하겠지만, 주말에 본가에 오고 갈 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보통은 낭비하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남편은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는 한, 매주 본가에 온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남편 역시 꿈만 꾸는 계획인 부분이 많다. 물론 퇴근 후 운동이나 영화, 독서, 게임 등은 가능하단 점에서는 분명 나보다 낫긴 하지만 말이다.


남편의 버킷리스트도 주말부부가 아니었다면 조금 더 실현 가능한 것들이 되었을 것들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남편이나 나나 안쓰럽기는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에는 퇴근 후에 수영을 배워 봐. 그래야 여름에 더 즐겁게 스노클링 할 수 있지. 그리고 문화센터에 별거별거 다 있다더라."

"어? 정말 돌담 쌓기도 있네? 승마, 드론, 오름해설사 우와~"


제주에는 제주다운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참으로 많았다. 남편이 제주 사업소를 떠나고 나서, 거기 머물 때 해볼 걸 하는 미련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다.


 



엄마는 꿈이 뭐야?


일전에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잠을 자면서 꾸는 꿈 말고, 또 다른 꿈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더니 이렇게 되물었다.


많은 엄마들이 이 질문에 당황했었듯,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음... 엄마....?"라며 말문이 턱 막혔다. 사실 우리 세대에서는 '꿈'이라고 하면, '장래희망'정도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나는 어려서부터 교사를 꿈꿔왔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꿈'이라고 한다면, 나는 꿈을 이룬 것이고.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장래희망의 꿈을 이룬 나는 더 이상 꿈이 없는 사람인 건가?


장래에 되고 싶은 것을 '꿈'과 동일시하기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삶을 살고 하는가에 대한 빅 픽처 같은 거라고나 할까.


이런 노래가 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별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 건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린 알고 있네 우린 알고 있네
 배운다는건 가르친다는건 희망을 노래하는것



꿈꾸지 않으면 삶을 살아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어렵게 교사가 되었고, 엉겁결에 결혼을 했고, 바쁘게 아이를 키웠다. 그런데 '꿈을 꾸는 삶'을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말문이 막힌다.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는지에 대하여 말이다. 멀고 큰 그림은 아직 그리지 못했다.


다만, 남들과 조금은 다른 삶을 살면서 이것에 관해 소소하게 기록을 하기 시작했고, 살며시 '나의 장래에 이렇게 살면 좋겠다'는 그림이 막연하게나마 그려졌다. 주말 부부, 주말 가족의 인생을 살면서 평범한 가정을 꾸려나갈 때 느끼지 못했던 감사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울 수 없는 불편함, 의도치 않은 미안함 등의 감정들을 하나 둘 객관화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미미하게나마 나를 성찰하게 되고, 치유와 용서를 얻기도 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끄적거렸다. 운동은 못하지만, 나는 지금 꿈을 그려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나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면서 말이다.


아이가 또다시 엄마의 꿈에 관해서 질문을 한다면, "엄마는 어떤 꿈을 꾸냐면, 일상을 글로 쓰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모습을 그려",라고 답하고 싶다.


물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정말 잘 쓰는 이의 글을 읽으면 주눅이 들기도 하고, 가끔은 유명해져야 글도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것 같아 자신이 없어질 때가 더 많다.  


나만 행복한 글쓰기와 남들도 더불어 행복해지는 글쓰기는 다른 것일 테니까.


당분간은 많은 글을 읽고, 쓰며, 꿈꾸는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주말부부가 아니었다면, 떠올리지 못했을 꿈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아직은 부끄러운 필력이어서 남들에게는 비밀인데, 남편의 적당한 관심과 팬심이 달콤한 당근이 되고 있는 요즘이다. 가끔씩 냉정하게 매콤한 채찍도 휘갈기지만 말이다. 이왕이면 매콤한 채찍은 하나, 달콤한 당근은 두 개면 좋겠다.


남편은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유독 내 눈이 반짝거린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무언가에 심취해 있는 내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삶이 부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당신이 신기하다고. 나는 남편을 질투하기만 했는데. 이럴 땐 남편이 나보다 한수 위인 것 같다.


이제 나도 남편의 삶에 응원을 보태야겠다.


남편! 혼자 사는 삶에 취미를 찾기를. 아니, 꿈을 그리며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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