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aterrace Feb 19. 2019

주말부부, 남편이 필요해.

세상에 둘도 없는 맘씨 좋은 남편



동생이 입원을 했다. 허리가 많이 좋지 않아서 검사를 받았는데 수술이 필요한 상태라고 해서 큰 병원으로 가서 입원 후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수술을 위해 여러 검사가 진행이 되었지만, 출근을 하며 통원치료를 하는 것보다는 여러모로 편한 점이 있었으리라. 요통은 누워서 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이기에 아무래도 입원기간 동안 휴식을 취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주변의 희생이 필요했다. 올케가 간병을 하는 동안 조카들을 돌볼 인력이 필요했는데, 다행히도 올케의 친정,  동생의 처부모님이 당분간 아이를 맡아주시기로 했다. 나도 출근 중이다 보니, 우리 부모님은 우리 아이를 맡아주시느라 여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급적 시술의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기다리며 각종 검사를 받았는데, 허리디스크라고 판단하기에는 미묘하게 통증 부위가 다르며 MRI상 보여지는 증상의 정도에 비해 실제 통증이 더 강한 것이 좀 이상하다고 다. 그리고, 근전도 검사 결과 오른쪽 다리의 신경이 많이 손상되었다는 결과도 들었다. 의료진은 심장 쪽 질환을 체크해보자며 심전도 검사를 진행했는데 거기에서 이상이 발견되었다. 상행대동맥이 기준에 비해 많이 확장되어 있다며 긴급 CT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갑자기 심장수술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청천벽력


허리 통증을 없애기 위한 가벼운 입원을 했을 뿐인데, 심장수술이라니 가족 모두가 너무 놀라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심장'수술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이었다. 뇌사자는 비록 뇌는 죽었어도 우선 몸은 살아있다. 하지만, 심장박동이 멈추면 사람은 죽는다. 혹시 그렇게 되면 어쩌지. 온갖 두려움과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튿날 아침, 택시를 불러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학교 졸업식이라 아이들이 꼭 보러 오라고 했는데, 미안하게도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수술 전에 동생 얼굴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달음에 달려간 동생에게 기대한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듯 특유의 멋쩍은 표정을 지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비록 위중한 병이라고 해도. 하지만, 동생의 얼굴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수술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혹시 모를 앞일에 자신의 아이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다.


모르고 지나갔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아이들과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알게 되어서 그 행복마저 앞당겨 빼앗기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갔다. 부모가 되고 나서 나 자신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아이 때문이었다. 내가 아프거나 죽게 되는 사실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홀로 남겨질 아이 생각에 어떻게든 기필코 건강하게 잘 살아보리라는 다짐을 하곤 했다. 동생 역시 자신을 걱정하는 부모나 누나의 마음보다는 자신의 아이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철없던 동생이 이제 진짜 아버지가 되어가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간, 그러니까 예정대로라면 열흘 못 보았을 아이들인데, 이제는 기약도 없어졌다. 수술을 며칠 앞둔 때에도 아이들을 자신이 없다고 했다. 마음이 약해져서 이대로 수술을 안 하고 살겠다고 같아서라고. 마음이 미어질 듯 아팠다.


상황이 길어지게 되자, 조카들을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처가에서 계속 돌봐주기에는 상황이 어려워서 우리 부모님과 나까지 합세해서 아이들을 돌보기로 했다. 물론 나는 출근을 해야 해서 퇴근을 해서야 힘을 더할 수 있었다. 돌을 갓 지난 막내와 이제 4살이 된 큰 조카, 그리고 우리 아이까지 셋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들이 제 엄마를 찾지 않아서 그나마 수월했지만, 어린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는 것은 우리 아이보다 분명 손이 많이 갔다. 그리고 나 역시 낯설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주말에 남편이 있는 제주로 가서 남은 방학을 보내고 오기로 했었다. 하지만, 동생의 수술이 예정되어 있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예매해 놓은 표를 취소하고 대신에 남편이 본가로 왔다. 누군가 아플 때는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한다며 기꺼이 와서 일손을 보태주었다. 그리고 혹시 병원비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며, 대출금을 갚기 위해 모아놓은 통장을 보여주며 잘 고민해보라고 말했다. 내가 남편의 입장이었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생각이었다. 남편에게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그 말을 하지는 못했다.


남편이라도 함께 있었다면, 저녁에라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을 상황이었다. 이를 아는 남편은 주말 내내 함께 아이들 돌보는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두고 가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오고 가는 수고를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은 가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지만 여기에 있는 나와 부모님은 끝없는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친정 일로 남편까지 고되게 만든 것도 미안한데, 그렇게 속 깊은 생각까지 해주니 눈물이 절로 났다. 공항을 향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어느 때보다 안쓰럽게 느껴졌다.


함께 살던 반려견이 하늘나라로 갔을 때도 누구보다 나에게 위로가 된 사람은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매일 밤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 눈물을 쏟던 나를 말없이 안아주며 끝에는 위로를 건네주었다. 보통의 남편이었다면, '개 한 마리 죽은 걸로 뭐 그리 오래 힘들어하냐'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남편은 '재롱이는 분명 천국에서 고기산을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을 거야'라며 나를 웃겨주었고,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나의 기도를 듣고 '사람으로 태어나도 골치 아픈 일 많으니까, 거북이로 태어나서 사람 손 타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다가 가라'며 진지하게 축복해주기도 했었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오랜 슬픔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곁에는 남편이 없다. 동생의 상황을 전하는 것도 전화를 통해서였다. 물론 흐느끼는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고 위로를 해주었지만, 남편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는 없었다. 더 외롭고 무서웠다. 남편이 나에게 주었던 것은 물리적인 노동력도 있었지만, 함께 슬퍼하고 기뻐해 주는 마음이 무엇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누나, 내가 금방 깨어나겠지만, 혹시라도 늦어지면 00(올케)도 잘 돌봐줘"라는 동생의 부탁은 정말이지 내 가슴을 저릿하게 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어려울 때 서로 의지가 되는 사람은 부모도 형제도 아닌 배우자였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동생 역시 자신의 아내를 더 걱정하고, 올케 역시 남편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괜한 농담으로 웃겨주며 잘 버티도록 힘을 주는 지혜로운 아내였다. 힘이 들 때 빛나는 것이 부부애인 것 같다.


수술을 얼마 앞둔 지금. 누구보다도 두려울 사람은 동생 본인일 것이다. 하지만, 마취를 하고 심정지가 되고, 인공호흡기와 인공혈액기에 의존해서 잠시 기억을 잃는 동안 기다리는 우리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게 될까.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수술실을 향하는 동생의 손을 붙잡고 마지막일지 모르는 인사를 건네야 하는 걸까. 라섹수술을 위해 수술실에 들어가는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엄마의 모습의 떠올리면 나라도 정신줄 붙잡고 부모님과 올케를 위로해야 할 텐데 잘할 있을지 모르겠다.


그 순간에 남편이 함께 있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까운 곳에 있다면 어렵지 않은 바람인데, 먼 곳 제주에 떨어져 있다 보니 또다시 와달라고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 색시, 지금쯤이면 함덕 바다를 향해 달리고 있었을 텐데 고생이 많다"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던 남편의 손길이 그립다. 따지고 보면 이 상황으로 인해 누구보다 피해를 보는 사람이 바로 남편인데 투정 없이 내 걱정만 해주는 맘씨 좋은 남편. 괜히 제주로 가게 한 걸까, 당장이라도 차로 달려올 수 있는 곳에서 주말부부를 하자고 할 걸 그랬나. 그렇잖아도 심란한데 후회까지 밀려온다. 주말부부 생활을 하며 남편의 부재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일은 기쁠 때보다는 주로 힘들고 슬플 때인 것 같다.  


난 지금 남편이 절실히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주말부부에게 제주는 불효의 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