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쁘다, 너무 바쁘다

by teaterrace



계단을 오르는데, 자꾸만 눈이 감겼다. 눈앞이 핑, 하니 도는 게 심상치 않다. 이러다 쓰러지지 싶은 생각에 다다르자, 눈물이 핑 돌았다.


담임을 한다는 게 이 정도로 힘든 일이었나.

아이를 낳고 체력이 방전되어 돌아왔더니 못 견디는 걸까. 아니면, 방학 동안 쉬지 못하고 아침 8시부터 꼬박 12시간 세 아이(우리 아이에 조카 둘까지)를 케어하다가 와서 잠시 지친 걸까. 어떻게 설명을 해도 내 몸은 과부하가 걸린 것이 분명했다.



긴 방학이 끝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개학 길로 접어들었다. 걱정은 했어도 오랜만의 담임이 설레기도 했는데, 이게 정말 체력전이라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밥을 먹는 시간 빼고는 쉴 틈이 없었다. 과장하지 않고 정말 1분도 쉬지 못했는데, 나는 담임도 내 업무도 제대로 다 하지 못했다. 커피를 들이부으며 감기는 눈을 치켜뜨고도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상 비담임 업무였던 일을 하면서 담임까지 해야 하니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일이 폭주하는 시기가 같았다.


출근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인터넷이 안된다고 난리였다. 새로 개시한 메신저까지 오류가 났다. 교육청아, 제발 생각 좀 하고 시작해라. 욕이 올라왔다. 어느 회사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학교에서는 인터넷이 안 되면 일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컴퓨터 교사가 아니다. 모르는 걸 해내야 한다. 전임자도 없다. 그런 난리통에 중간중간 수업에 들어가야 했다. 방학을 지나온 '우리 반 아이들' 얼굴 볼 일이 설렜는데, 출석 체크만 겨우 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업도, 일도, 담임도 제대로 못 해낸 하루 일과가 끝이 났다. 일과만 끝이 났다. 우리 학교는 개학과 동시에 학생상담주간으로 운영을 한다. 상담을 할 일이 남았다. 그런데, 집에선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친정부모님이 우리 아이와 조카 둘(동생의 심장수술로 불가피하게 우리 집에 맡겨졌다)을 돌보셔야 했다. 몸도 마음도 편치 않은 개학날이었다.



상담


학기 첫 상담은 그룹으로 진행한다. 반 친구들끼리 서로 알고 기본적인 자기소개를 하는 방법으로 소그룹 상담을 선택한 것이다. 가급적 1학년 때 같은 반이 아니었던 그룹으로 묶어서 진행을다. 가벼운 티타임 정도의 부담 없는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다과를 준비했다. 먹어야 서로 긴장이 풀린다.


야자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사정을 듣다 보니 저녁을 못 먹었다. 컵라면에 물을 붓는데 보람은커녕 이게 뭔꼴인가 싶었다. 그마저도 설익은 상태로 몇 젓가락 뜨곤 도저히 먹히질 않아 버렸다. 대충 허기만 없애고 아이들을 불렀다.


내가 먼저 나의 소개를 했다. 교사생활에 대해, 가족에 대해, 나에 대해.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만 해도 좋다고 말해주었지만 첫 주자가 운을 떼면 대개는 유사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는 모두가 쭈뼛거렸다. 어색함이 감도는 가운데, 첫 그룹상담을 마쳤다. 내가 느끼는 어색함 만큼 아이들도 그러했으리라.


둘째 날 그룹 아이들은 말이 매우 많았다. 내가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이야기를 잘 이어나갔다. 가끔씩 "선생님, 정말 이렇게 수다만 떨다 가도 돼요?"라고 확인을 했을 뿐. 결국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정리를 했을 정도였다. 역시 학교에서는 학생이 주도가 되어야 한다. 교사는 방향만 제시하면 될 뿐.


총 4회에 걸친 그룹상담을 마쳤다. 아이들에 대한 기본 데이터는 확보가 된 셈이다. 학년초 상담은 거의 자기소개에 그치기 때문에 그룹상담으로 해도 큰 무리가 없다. 게다가 아이들끼리도 유대감까지 만들어줄 수 있어 개별상담보다 좋다. 개별상담은 자기소개서에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시급한 사안을 가진 아이부터 시작하면 된다.



반장선거


1년을 잘 운영하려면 괜찮은 반장을 뽑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사는 투표권이 없지만, 괜찮은 아이가 선발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줄 수는 있다. 절차와 형식을 갖춤으로써 인기와 언변이 아니라 정말 사명감을 가지고 봉사와 헌신과 모범을 실천할 수 있는 아이가 선발되도록 이끄는 것이다.


우선, 후보로 등록하기 위한 양식을 3가지 만들어 반장 공고문과 함께 게시했다. 출마 희망자와 한 명 한 명 면담을 하며 양식을 나누어줬고, '선거관리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담임에게 제출을 해야 등록이 완료된다고 설명했다. 공약을 포함한 자기소개서를 학급에 게시하도록 하고, 투표 직전에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에서는 '질문의 질'이 굉장히 중요하다. 공청회라는 타이틀을 건 회의에서 "반장 되면 뭐 사줄 거야?"와 같은 장난스러운 질문은 나오지 않는다. 공청회가 반장선거에서 중요한 이유이다. 인기투표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담임이 질문을 몇 개 던지면 아이들도 그 수준에 맞추어 질문을 던진다. 대답은 후보 순서대로 하지 않고 자유발언이다. 출마에 대한 고민이 없이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주가 될수록 괜찮은 반장이 뽑힐 확률은 올라간다.


우리 학급은 총 5명의 희망자가 등록양식을 받아갔는데 제출한 아이는 총 3명이었다. 정부반장 각각 1명씩 선발되면 떨어지는 것은 단 1명이다. 아이들도 이점을 염려했다. 그래서 낙마한 아이에게는 정부반장을 제외한 나머지 학급 임원 역할 중에 희망하는 것을 우선 배정하기로 했다.


공청회를 마치고, 투표에 들어갔다. 선거인명부에 싸인을 하고, 희망하는 번호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계산을 해서 발표해준다. 아이들과 나 역시 긴장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후보 중 한 명이 0표가 나와버렸다.


본인마저 저득표를 예상해서인지 기권을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기 체면은 살린 셈이지만, 나도 아이들도 모두 놀랐다. 본인 표 1개만 나왔다면 더 우스워졌을 상황이 펼쳐졌다. 당선된 2명의 아이들에게 잘 다독일 것을 당부하고 교무실로 돌아왔다. 나의 위로보다 경쟁자들의 위로가 상처 받은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치유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종례 시간에 아이를 단상 앞에 세워서 낙선 소감을 이야기할 기회를 주었다. 괜찮지 않더라도 괜찮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하는 것이 그 아이도 다른 친구들도 불편한 감정을 털고 상처로 남게 하지 않을 것이므로.



학부모 상담


이제 학부모 상담 차례이다. 모든 학교는 학년초 학부모 총회를 한다. 학교 운영과 입시에 관한 제반사항들을 안내하는 자리이지만 결국은 담임교사를 만나기 위해 학교를 찾는다. 그래서 교사들에게 학기초 상담이 의무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몇 년을 거듭한 끝에 나는 학부모 총회에 별다른 상담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개학하고 일주일 남짓 만난 아이들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솔직히 얼마나 되겠는가. 부모로서 내 아이를 맡기면서 일주일 동안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궁금하기보다는 내 아이가 가진 기질이나 양육하면서 어려웠던 점 등 우리 아이에 대해 부탁하고 싶은 것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개별 면담을 진행하지 않는 대신 아이에 대한 귀한 말씀을 듣고 싶다는 내용을 담은 가정통신문을 발송했다. 그리고 혹여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 전화상담도 진행하기로 했다. 1/3의 학부모가 총회에 오실 뜻을 밝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하게 개인상담은 진행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준비한 자료를 들고 교실로 올라갔다. 피곤함 때문인지 그리 긴장되지는 않았다. 초보 애엄마가 경력 애엄마를 만나는 기분 정도가 들었던 것 같다. 우리 반은 2학년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학급이 되었다. 그다음으로 많은 학급의 두배의 인원이었다. 부모가 관심이 많은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부담도 되었다. 언제 다 만나 뵙나.


목례와 함께 소개를 했다. 이름, 학급 구성, 운영방침 그리고 연간계획, 부탁드릴 말씀까지 차례차례 읽어 내려가며 설명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주시는 분도 있고, 어디 한번 보자 하는 표정으로 보시는 분도 있고 다양했지만, 역시 아이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부모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활기록부와 입시와 관련한 자료를 배부하고, 아이들의 화장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달라며 발췌본을 나누어 드렸다. 피할 수는 없으니 건강하게 사용하도록 가정에서도 지도를 부탁드린다는 말씀과 함께 말이다. 같은 이야기라도 건강 걱정을 하며 이야기를 건네면 학부모들도 대게 공감을 하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가정통신문에서 안내해드린 바와 같이 개별 면담은 하지 않으나, 아이들에 대해 알려주실 것이 있으시면 꼭 말씀 전해 달라는 말과 함께 마무리 인사를 하고 나왔다. 내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우리 부모님은 한 번도 학교를 찾아오지 않으셨다. 고3 때 대입원서를 쓰기 위해 오신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학교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인지 잘 안다. 그래서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그 순간은 진심이었다.


교무실에 내려와서 조금 기다리니 선한 인상의 어머님이 먼저 오셨다. 착한데 공부를 안 해서, 아직 방향을 못 잡아서 걱정이시란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니 나도 재미가 있다. 매번 이런 식이어서 상담이 길어졌던 경험이 많기에 적당한 선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가정통신문에 별도로 신청하신 날짜에 상담을 하시겠다며 절반의 인원이 귀가하셨다는 말씀도 전해주셨다.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두 번째 어머님은 아이가 공부를 하는데, 성적이 안 올라서 속상해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요즘 아이들 답지 않게 학원에 목매지 않고 자기 주도 학습을 하고 있는 아이라 나도 눈여겨보고 있다는 말씀을 전해드렸다. 공부방법에 대한 컨설팅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건 내 몫이다.


세 번째 어머님은 아이와 마찬가지로 싱글벙글 웃음이 많은 분이셨다.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성적은 나오는 편인데 원하는 꿈(교사)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목표가 정해진 것만큼 유리한 것이 없다는 말씀을 해드리고 학년초라서 아이들이 많이 혼나고 있는데 당분간은 믿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반장이라 다른 아이들보다 더 혼날 것이라고. 어머님은 역시 방긋 웃으시며 알겠노라고 대답을 하셨다.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하지만, 이제 모든 상담이 다 끝났다. 이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2주간의 긴 달리기가 이제 결승점이 보이는 것 같았다.


조금씩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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