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충분히 괜찮아, 포키!

<토이스토리 4> 속 우리 이야기

by teaterrace

출근을 하는데 교무실 앞에서 우리 반의 한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눈썹 뼈 부근에 반창고를 붙이고선. 무슨 일인지 물으려던 나를 제치고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자초지종은 설명해 줄 마음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이의 눈동자에 사연이 담겨있음을 나는 안다.


"그냥 욕실에서 어지러워 넘어져 부딪혔어요. 그뿐이에요."


그 순간 내가 아이에게 해줄 말은 상처의 이유를 묻는 것도, 상처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묻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얼른 병원에 다녀오라는 말이 최선이다.


"무슨 일인지는 병원에 다녀와서 알려주고."




아이를 보내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의 설명은 더욱 간단하다. 자신은 어제 집을 비운 상태인데, 한밤중에 제 오빠에게 전화가 와서 급히 응급실을 다녀오라 했고, 오늘은 그 상처 때문에 성형외과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은 듯 별일 아니라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킨다.


오후가 되자, 아이는 아침에 붙였던 것보다 더 큰 반창고를 붙인 채 나타났다. 그 모습이 전년도 담임 눈에 먼저 띄였고, 평소 아이를 잘 알았던 선생님의 직감으로 아이를 다그 그 이유를 알아냈다. 그리고 나를 찾아 상황을 해주었다.


예상했던 바이다. 방법만 다를 뿐.


"어지러워서 넘어진 것 이전의 일에 대해 선생님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아이는 눈물부터 쏟았다. 새로운 담임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노출된 것이 지독히 싫어서 일 수도 있고, 오히려 그 반대로 나 이 정도로 힘드니 좀 알아달라고 호소하는 행위일 수도 있으나 어떻게 판단을 하든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다.


"샤워기로 목을 졸랐어요. 어느 순간 너무 어지러웠고 넘어지면서 세면대 수전에 얼굴을 박았어요."


내 심장은 터질 듯 뛰고 있는데 막상 진술하는 아이는 매우 담담하다. 늘 이런 식이었다는 듯. 이럴 때일수록 대수롭지 않은 듯 대해야 다. 그래야 아이가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놀란 기색을 눈치채면 아이는 금세 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입을 닫거나 적당하게 얼버무릴 수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뭐라고 설명하기도 어렵고요."


이 아이는 평소 학교를 매우 좋아서 학교에 있는 동안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리고 집에서는 에너지 고갈 상태로 지내다 결국 자해로 얻는 쾌감을 '에너지 대체원'으로 사용하는 듯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아파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아이는 이야기했다. 이런 말이 곱디고운 고등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눈 앞에 있는데도 잘못된 더빙을 입힌 영상처럼 부자연스럽게 여겨진다.


다행인 것은 진짜로 자살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문제는 자해의 방법이 전학년도보다 더 과감해졌다는 것. 얕게 손목 긋기로 시작한 자해는 이제 목을 졸라매는 것으로 한 단계 진화했다. 아이가 느끼는 고통의 역치가 올라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역치란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를 일컫는 말이다. 역치는 같은 크기의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을수록 올라간다. 즉, 더 큰 자극을 주기 전에는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를 감각의 순응이라고 한다. 비록 자살의 의도가 없다손 치더라도 감각의 순응으로 인한 역치 상승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정말로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이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일점도 없는 듯 보였다. 자해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는 하지만,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는 것 자체가 그 이유인 듯하다.


아이는 오로지 남을 위해 자신을 헌신할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는 듯했다. 관계에 대한 집착이 큰 아이는 자신을 헌신해야만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고 곁에 있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다. 그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감정은 '동정'뿐이다. 하지만, 이를 어찌 대등한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도 자격이 필요한 것일까.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 아이에게 과연 어떤 결핍이 있었던 것일까.



<토이스토리 4>에서 새로 등장한 '포키'라는 장난감은 자학적 캐릭터로 웃음을 준다. 그 웃음이 쓴웃음이라는 게 문제이지만.


쓰레기통에 버려진 포크로 만들어진 다소 엉성한 이 장난감 인형은 유치원 적응이 필요한 보니에게 누구보다 좋은 친구이다. 그가 있어 유치원 생활을 해내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다. 겉모습은 보잘것없는 '재활용된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보니에게는 더없이 좋은 애착 대상이다.



하지만 정작 포키 자신은 그것을 인지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한다. 자신은 그냥 쓰레기일 뿐이라며 보니의 침대에서 도망쳐 쓰레기통으로 숨어 들어가거나 바깥세상의 쓰레기통으로 탈출을 도모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위로와 안심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포키는 단 하나뿐이에요.


사라진 포키를 대체할 장난감을 다시 만들자는 엄마에게 보니가 던진 말이다. 이미 의미가 부여된 대상은 다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다. 비록 쓰레기 장난감일지라도. 이런 사실을 포키 자신만 모르고 있다.


포키의 우스꽝스러운 자조 속에서 나는 우리 반 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쓰레기통으로 숨는 포키는 자신을 해하여 그 고통 속에 숨는 그 아이의 모습과 많아 닮아 있다. 자신은 쓰레기일 뿐이라며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존재임을, 없어서는 안 될 대상임을 믿지 못하는 모습과 꼭 같다.


그렇다고 절망만 그려져 있지는 않다. 우디와 같이 곁에서 지속적으로 일깨워주는 존재가 필요함도 함께 일러준다. 그게 우리 어른들의 역할 임도 말이다.



넌 충분히 괜찮아, 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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