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모든 선생님이 1개의 동아리를 지도해야 한다. 특별히 학생부장, 동아리 담당교사, 고3 담임, 학년부장, 교무부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선생님이 각자의 동아리가 있다.
예전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동아리에 선생님이 지도교사로 자원하는 방식이었다면, 요즘에는 모든 것이 학생 중심이라 학생들이 지원하지 않는 동아리는 없어지고 이를 대체할 동아리가 신설된다. 과거의 방식이 동아리의 전통과 위계질서를 유지하고 선후배 간 돈독한 우정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면 현재의 방식은 학생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살려 학생주도적인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물론 뚜껑을 열고 보면 실상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든 아이들은 의욕이 과거에 비해 나날이 줄고 있다는 게 문제이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정해진 한정된 동아리에 지원하여 들어가던 시절의 학생들이 지금에 비해 더 자기 주도적인 열정을 보였다. 지금은 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에 유리하게 기재될 소재만을 찾거나 친구 따라 강남 가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어서 동아리는 예전의 열정을 잃었다. 그렇다 보니 교사들 역시 학생부에 도움이 될만한 동아리 위주로 신설을 하게 되고, 그나마 취미활동으로 살아남은 것이 응원 동아리, 밴드 동아리, 춤 동아리, 운동 동아리 정도이다.
이 때문에 학기초 선생님들은 많은 잔머리를 굴려야 한다. 계획한 대로 운영해서 잘 따라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놀다가 가는 시간이 된다. 수업만큼이나 학생의 만족도를 높이기가 어려운 것이 동아리이다. 코미디언의 타이틀을 가지고도 모든 사람들을 웃길 수 없듯 교사들도 매시 매 순간 완벽한 수업으로 채우기 어렵다. 아무래도 동아리에 있어서 만큼은 교사도 전문성이 떨어지고, 아이들도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동아리 개설 시즌 선생님들의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 듯하다. 유지를 원하는 동아리에 자원하는 부류, 학생부에 도움이 될 만한 동아리를 진취적으로 개설하는 부류, 없어질 것이 예상되어도 교사 자신이 지도가 가능할 동아리를 개설하는 부류가 그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떤 동아리를 개설해야 개설이 안 될지'를 고민하는 교사였다.반성한다. 하지만, 나는 10년 만에 하게 된 학급 담임의 역할을 차질 없이 수행하려면 내 역할이 주가 되는 동아리가 개설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학급 담임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판국에 동아리까지 망칠 수는 없다. 그냥 인원이 많은 동아리의 부담임 교사가 되어 시키는 것만 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신설한 것이 '왕초보 우쿨렐레반'이었다.
음계 연주와 기본 코드까지는 직접 지도가 가능하고, 이후 단계는 강사 선생님을 모시면 된다. 혹시라도 개설이 되는 사태를 대비해서 계획은 제대로 세워놓아야 한다. 세상에는 '만일'이 많으므로.
우쿨렐레 피크닉의 뮤비와 오카리나와 합주 영상까지 만들어 동아리 홍보 시간에 소개를 했다.
알로하, 코알로하로하, 알로하 우쿨렐레 인사
알로하, 코알로하로하, 알로하 기분 좋은 인사
경쾌한 우쿨렐레 반주에 대강당이 흥에 젖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므로 개설 동기(개설 안 될 동아리를 만드는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며 자위했다.
가입조건은 반드시 우쿨렐레가 있어야 한다는 것. 동아리를 위해 악기를 사는 열정을 보일 아이들은 없다.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드디어 동아리 신청의 날이다.
각 교실에 동아리 담당교사들이 대기하고 있으면, 전교생이 원하는 교실로 찾아가 가입을 하는 방식이다. 동아리 개설 가능성이 희박할 동아리는 한 교실에 모았다. 우쿨렐레, 오카리나, 색소폰.
예상대로 아이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 셋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아무리 성사되지 말아야 할 소개팅 자리라도 상대가 내게 호감이 없으면 괜한 씁쓸함이 밀려오는 것과 같다.
슬슬 정리를 하려는데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몰려왔다.
그중에는 내가 아는 얼굴도 보였다. 수업 시간 내내 고개를 들지 않고 잠을 청하던 그 아이. 그 녀석이 자신의 친구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보아하니 이미 다른 동아리에서 패배를 맛보고 차선책으로 우쿠렐레반으로 온 것이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을 뿐 아니라, 위기 상황이다.
잘은 몰라도 능글거리는 미소만 봐도 직감적으로 쉽지 않은 아이들임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선도위원회에 최소 한 번씩은 회부가 되었던 녀석들이었다. 다행히 개설을 위한 최소인원 규정에 한참 부족하다.
"얘들아, 이 동아리는 없어질 거야. 너희들이 지원서를 쓰고 가더라도 동아리 개설이 되지 않으면 다른 동아리로 편입될 거야. 그러느니 지금이라도 빨리 인원이 어느 정도 모인 동아리로 가는 게 좋지 않겠니?"
아이들의 눈빛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다행이다. 회유가 먹히는 느낌이다. 아니, 회유가 아니다. 사실이다. 없어질 동아리에 지원을 해서 원치 않는 동아리에 강제 편입되느니 지금이라도 살 길을 도모하는 것이 유리하다.
"설령 개설된다 하더라도 우쿨렐레가 있어야 해. 그리고, 나중에 교내에서 버스킹도 할 거야. 괜찮겠어?"
이 말은 후에 두고두고 후회할 실언이 된다.
"버스킹이요? 어? 괜찮지 않냐? 매점 앞에서 버스킹 어때? 재밌겠다, 그렇지?"
한 녀석이 이 말을 던졌고, 이내 아이들이 수긍하기 시작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얘들아, 내가 농담하는 거로 들리지? 아니야. 진짜야. 우쿨렐레도 꼭 있어야 하고 버스킹도 반드시 해야 해."
"네! 선생님, 저희 할 수 있어요. 남자는 버스킹이죠!"
"그래? 그럼 월요일까지 전원 우쿨렐레 준비해오면 인정할 게. 너네 진심이란 거."
망했다. 내가 무슨 말을 내뱉은 것인가.
사실 절대 사 올 리가 없는 아이들이다. 교과서도 제대로 챙겨 오지 않고, 교실에서 눈 한 번 마주치기 어려울 정도로 잠을 자는 아이들이다. 이를 모든 선생님들이 증언해주었다.
"제대로 다들 모였네! 하하하"
놀림조의 이 반응을 듣고도 내가 태연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드디어, 대망의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하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하하, 니들이 드디어 패배를 인정을 하러 온 것이겠다.
배시시 미소를 짓는 아이들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쿨렐레였다. 내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교과서도 챙겨 오지 않는 녀석들이다. 녀석들 뿐만 아니라, 주말을 지나면 아이들은 많은 것을 잊어버린다.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스쳤지만, 패배를 인정해야 할 사람은 나였다.
"인정!"
아이들은 야호! 를 외치며 물러났고,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열정을 인정하여 최소인원 동아리를 개설해주었다.
이것이 나의 우쿨렐레 동아리의 시작이다.
매주 금요일에 2시간씩 모여 동아리를 한다.
첫 시간부터 의기양양하게 우쿨렐레를 들고 나타났다. 자신의 우쿨렐레에 이름까지 붙여줬단다. 메이슨, 제이슨, 로빈슨 등등. 이름이 주는 함의는 우리가 익히 김춘수 님의 <꽃>에서 들어온 바가 아니던가. 아이들이 우쿨렐레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의미이다.
음계를 가르치고, 타브 악보 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 녀석들, 괴물 같다.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뿐만 아니라, 집중력이 엄청나다. 동요 한 곡을 끝냈다. 첫 시간에. 아이들 스스로도 놀란 눈치다.
두 번째 시간에는 코드를 가르쳤다. 그리고 파트를 나누어 한쪽은 코드를 반주하게 하고, 한쪽은 개방현 음계를 연주하도록 했다. 근사한 하모니가 나왔다. 아이들도 탄성을 내질렀다. 와아-!
선생님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일취월장하는 아이들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들의 집중력과 열정 때문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럴 애들이 아닌데..."를 연발했다. 뿌듯했다.
음악적 치료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다른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자의 교실에서도 우쿨렐레를 뽐낸다고 한다. 비록 대단한 연주 실력은 아닐지라도 최소 그 학급에서 그 아이만큼 우쿨렐레를 다룰 친구가 없는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1인자 자리를 차지했으니 아이들 입장에서도 얼마나 신이 날까, 싶었다.
드디어 강사 선생님이 모셔졌다. 전문적으로 배울 기회가 온 것이다. 덩달아 나도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전문적으로 배움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아이들의 눈동자가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학교의 일정 상 얼마 지나지 않아 동아리 발표회가 있었다. 하여, 강사 선생님은 오시자마자 발표회 준비를 시켜야 하는 상황이었고, 아이들은 1곡만 공연하기로 결정을 했다. 막상 공연을 서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우려가 되었는지 안 하면 안 되겠냐는 푸념도 나오기 시작했다.
연습시간이 몇 회가 거듭되자, 아이들은 슬슬 지쳐갔다. 리허설을 마친 아이들이 드디어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그 선생님 2학기에도 오세요?"
"그럼! 그런데 왜 그걸 묻는 거야?"
"열심히는 해주시는데, 너무... FM이에요. 쉬지 않고 연습만 시키고, 너무 재미없어요. 예전에는요, 우쿨렐레만 생각해도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안 하고 싶어요."
아이들을 달래야 했다. 당장 공연이 내일이다.
"우리 천재소년들이 힘들었구나! 선생님 열정은 넘치시고... 그래! 이제 연습 그만 하자! 그리고, 내일 잘하지 못해도 아무도 모르니까, 그냥 즐겁게 하고만 내려와."
드디어 공연 날이다.
한 녀석이 오지 않는다. 바로 어제, 공연에 서지 않겠다고 배짱을 부리던 녀석이다. 다행히 나타나기는 했는데, 여전히 무대에 서지 않겠단다.
아이의 손을 잡았다.
"HJ야, 선생님하고 한 약속 기억 나? 버스킹 하겠다고 했잖아. 그냥 다른 거 생각 말고, 친구들이랑 선생님만 생각해."
"선생님. 우쿨렐레가 싫지는 않아요. 하지만, 무대는 싫어요. 리허설에서 보셨잖아요. 저 무대공포증 있어요."
아이의 말처럼 전날 리허설에서 가장 긴장을 했다. 다리는 갈 곳을 잃은 듯 앞뒤로 쉼 없이 움직였고, 안절부절못하고 제멋대로 흔들흔들했다.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음을 보여주려 애를 썼지만, 누가 보아도 가장 긴장을 한 것은 그 아이였다. 그동안 반 친구들 사이에서 쌓아온 자신의 무게감을 이 따위 긴장으로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럼 그럼. 선생님이었다면 아마 무대에 올라갈 생각조차 못했을 걸? 너네니까 가능한 거지. 지금 연습 안 해도 되니까 잘 고민해 봐."
그때, 한 녀석이 엎드린 HJ 곁으로 다가갔다.
"HJ, 한 번 올라가면 끝이야. 그냥 눈 딱 감고 하자. 응?"
이 얼마나 영화 같은 장면인가. 그들의 모습이, 그들의 대화가 아름다웠다. HJ는 못 이기는 척 연습에 합류했다.
고등학생 남자아이들이 상상하는 공연은 그들 말로 '가오가 살고, 간지가 나는'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우쿨렐레는 귀엽고 경쾌하면 충분히 아름다운 공연이 된다.
"얘들아, 거울을 봐봐. 너희들이 어떤 모습인지. 너희 연주는 지금도 충분해(사실은 귀여운 수준이지만). 그런데! 몸이 너무 뻣뻣해. 나무 같아 보여. 연주보다 자꾸만 너희 몸짓에 더 시선이 가게 된다?평소처럼 신나게 웃고 장난치고 그러는 게 조금 더 자연스러울 거 같아. 그래, 그래! TH처럼. 와! 잘한다! 그렇지! 선생님이 아무래도 외모로 뽑아놓은 거 같아. 야, 너네 팬클럽 생기면 어쩌냐!"
아이들은 그제서야 표정을 푼다.
"에라, 모르겠다. 야! 그냥 한 번 하자!"
무대 뒤다. 드디어 우리 순서이다. 아이들은 힐끔힐끔 무대 밖을 내다보며 '미칠 것 같아'를 연발했다. 그 순간은 사실 내가 더 긴장이 되었다. 연주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관객들의 호응이 부족할까 봐서도 아니다. 그저, 녀석들이 공연을 마치고 자책하거나 실망할까 봐, 오로지 그것이 염려되었던 것이다.
무대에 올랐다. 환호가 쏟아졌다. 몇몇 여학생들(특히, 우리 반 아이들)에게 부탁들 해두었다. 아이들이 풀이 죽어 있으니 응원 많이 하라고.
약속대로 객석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띵까띵까. 여전히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아이들은 잘 즐기고 내려왔다. 그리고, 남학생들 특유의 허세를 뽐내며 이야기했다.
우린, 무대체질인가 봐!
일본 영화 <스윙걸즈>를 보면, 우연히 스윙 대회에 참여하게 된 여학생들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나온다. 악기를 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그리고 대회 출전이 좌절되어 실망하는 모습, 드디어 입상하게 되는 환희의 모습까지. 연주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젊음의 실패가, 극복이, 그리고 열정이 우리를 감동케 한다.
<스윙걸즈>가 영화라면, <우쿨렐레 보이즈>는 현실이다. 바로 내 앞에서 일어난 기적의 현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