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이 되었습니다, 10년 만에.

아싸 담임 #2(선생님의 소개팅)

by teaterrace




업무분장이 발표되었고, 예상대로 나는 담임이 되었다. 근 10년 만에 말이다.


이상한 것은 업무분장표 상에 없던 업무와 함께라는 것. 이전 학년도 나의 업무에 담임만 더해진 형태였다. 비담임 업무에 속했던 업무에 담임이 추가된 것은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작년에 3개월 남은 육아휴직을 탈탈 털어 쓰고 남편과 함께 제주에 가서 지내기로 하면서(우리는 제주와 육지를 오가는 주말부부이다), 업무에 많은 배려를 받았기에 올해는 꾹 다물고 주어진대로 하기로 했다.


아이들과 첫 대면을 하기 전에 해야할 일이 있다. 바로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자료를 준비하는 일이다. 요즘은 선생님들도 디지털에 익숙해져서 자기소개서 같은 것들을 구글이나 네이버 설문지로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QR코드로 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아날로그가 좋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자료가 더욱 정감이 가고 가독성도 좋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하여 무려 4페이지에 걸친 자기소개서와 8페이지에 달하는 학급운영계획과 생활안내서를 만들었다.


10년 전에 만든 자료를 토대로 하다 보니 불필요하거나 조사하면 안 되는 내용들, 이를테면 개인정보와 관련된 내용들도 들어가 있어 대폭 수정이 필요했다. 최근에 담임을 하던 선생님들께 자문을 구해, 넣으면 안 되는 것이나 민감한 사항들은 삭제를 다. 앞서 말한 대로 '학생 인권 조례'에 관한 자기 생각들도 써넣게 하고, 교육주체의 의견 일원화를 위해 부모님 의견란도 만들었다. 자기소개서를 넣을 봉투를 준비해서 겉면에 이름과 학번을 세긴 라벨을 붙였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갑작스러운 담임 회의를 마치고 교실로 향했다. 심장이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아이들과 만나는 첫 수업시간, 첫 담임 시간은 매년 겪어도 떨린다. 어떤 아이들일까. 소개팅을 해도 이 정도로 궁금하지는 않을 것 같다. 소개팅은 단 한 명만 마주하고 파악하면 되지만, 아이들은 수도 많고 제각각이다. 그들은 어떤 표정으로 앉아 있을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며 빠른 눈길로 교살 안을 훑었다. 아이들은 긴장한 표정 속에 모두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마 아이들 서로가 아직은 어색한 상태여서이리라. 이제 2학년이지만, 아직 고1 여학생 특유의 어리숙함이 남아있었다.


아이를 키우고 만나서일까,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까. 막상 교실에 들어서니 떨리는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담담해져 있었다. 대신에 표정도 없어졌다. 이런.


칠판에 이름 석자를 쓰고,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출석을 확인했다. 요즘은 개학이나 방학 무렵 체험학습을 쓰고 가족여행을 가는 경우가 많아서 혹시 결석을 한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인사를 했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핸드폰을 꺼내서 저장을 하세요. 혹시 핸드폰 없는 사람?"


아무도 손들지 않았다.


"저장을 마친 사람은 이 번호로 자기의 이름과 학번을 문자로 보내세요."


내가 생각해도 'AI인간' 같은 말투와 멘트였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니 혹시 약속이 있거나 기다리고 있는 다른 반 친구가 있는지를 물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못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핸드폰을 수거했다. 핸드폰이 손에 들려있으면 상대의 말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다. 때로는 일부러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대화가 끝나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다. 우리 학교는 매일 아침 조회시간에 핸드폰을 수거하기에, 아이들은 익숙한 듯 핸드폰을 제출했다.


그 사이 나는 준비해 온 자료를 나누어 주었다. 일일이 스테플러로 찍은 자료와 이름을 붙인 봉투를 하나하나 나누어주었다. 봉투를 준비한 이유는 별 것은 아니고, 개인정보와 사생활 이야기를 적은 자료를 제출하려면 아무래도 다른 친구들의 눈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솔직한 이야기를 쓰기가 어려울 것을 대비해서였다.



학급운영계획과 생활안내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준비해 간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아주 차분하게.


창제시간을 활용하여 기초논술 작성 연습을 할 계획과 희망자에 한해 오전 독서시간을 운영할 것을 안내했다. 그리고 생활태도 평가제를 활용하여 잘한 점과 고칠 점을 평가하고 기록할예고했다. 칭찬을 받을 항목과 지양해야 할 항목을 설명하고, 이외에도 추가하고 싶은 사항이 있으면 자기소개서 뒤쪽에 써달라고 이야기했다. 잘한 점과 고칠 점이 누적되었을 때 어떤 상벌이 있으면 좋을지에 대한 아이들의 의견도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학급회의를 갈음할 자기의견서를 수합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다음으로는 담임으로서 중요시 여기는 부분에 대해 선다형 문제 형식으로 아이들에게 물으며 알려주었다. 이를테면, 이런 형식이다.


Q. 눈을 떠보니 8시 반이다. 가장 먼저 어떻게 해야 할까?

① 수업이 시작하려면 아직 30분이나 남았으니 여유롭게 세수하고 예쁘게 단장한다.
② 우선 엄마에게 짜증을 퍼붓고, 징징거리며 뛰어나온다.
③ 이왕 늦은 거 걍 더 잔다.
④ 깜짝 놀라 얼음이 되어 버린다.
⑤ 일단 담임샘에게 전화를 하여 알리고, 최대한 빨리 준비하여 나온다.


긴장한 표정 속에서도 아이들은 꿋꿋하게 대답을 했고, 나는 추가 설명을 곁들이며 잘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그밖에 단체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매너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수업 시간 중 '상습적으로' 화장실 가지 않기, 교실에서 헤어아이론(고데기) 사용하지 않기, 각자 맡은 청소구역에 책임감 가지기, 체육시간 외 체육복 착용하거나 실내에서 실외화 신지 않기, 수업시간 중 화장하지 않기, 깨끗한 교실환경 만들기(책상 위나 바닥에 책, 화장품 및 거울을 쌓아 두지 않기), 매 시간 타종 시 자리에 앉아 있기, 생리로 인한 결석이나 수업불참에 관한 권리를 악용하지 않기, 주인 허락 없이 남의 물건을 만지거나 사용하지 않으며 자기 물건 관리는 스스로 하기, 자기만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이기적인 사람 되지 않기, 담임에게 카카오톡 등 사적 통신수단을 통하여 연락하지 않기 (‘#이ㅇㅇ’로 번호 저장할 것),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간에 연락하지 않기 등등.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느꼈던 아쉬움을 그때그때 정리해 두었. 부디 우리반 아이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리하여 알려준 것이다. 개인의 자유 추구로 말미암아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은 권리를 누림에 대한 '댓가' 혹은 '전제조건'임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수업시간 중에 화장실을 갈 수 있지만, 상습적으로 가는 것은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지켜본 바로는 수업 중 화장실에 가는 아이는 거의 매번 다음 수업시간에도 간다. 이럴 때를 두고 '상습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가 개인의 자유는 보장해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수업의 흐름을 끊고 집중 방해함으로 교사에게도 친구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절차인 것이다.


또한, 생리로 인한 결석이나 결과(수업에 빠짐)를 악용하는 여학생들을 여럿 보았다. 특히,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생리결석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왜일까? 학교에서도 악용과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병원의 진료확인서 등을 제출하는 절차를 만들었지만, 내과에서도 확인서를 발급해주는 상황이 되다 보니 원천 봉쇄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생리결석은 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인정받은 권리이지, 결코 원할 때 사용 가능한 자유이용권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이 정말로 많다. 이런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면, 생리통이 없어도 매달 당연한 듯 생리휴가를 쓰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양심과 도덕성을 저버리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지는 않다.


문자메시지와는 달리 사적 통신수단이 되어버린 카카오톡으로 연락하지 말아 줄 것도 당부했다. 마지막 담임을 하던 시절에는 없던 통신수단이 생겼고, 지금은 이것이 교사를 옭아매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셀피(selfie), 소중한 가족의 사진 등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고, 예의 없는 부모들의 밤낮 없는 연락에 시달리고 싶지도 않다. 이건 마치 직장동료나 상사가 업무와 관련한 것을 카톡으로 연락해오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제간이라고 해도 상호 간 내 사생활을 노출해야 할 의무는 없다.


아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작성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소하고 당연한 내용조차도 '몰라서 실수'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우선은 모두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모두가 편안하다.


신뢰와 존중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예의 바른 사람이 되세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존중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아무리 믿고 있다고 해도 그 사람에 대한 존중의 표현을 하지 않으면 그 신뢰는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친구에게든 부모님에게든 선생님에게든 기본적인 예의를 갖춰 대하세요. 내가 존중으로 대할 때 그 표현은 나에게도 돌아옵니다."


오랜만에 담임을 하게 되어 선생님도 서툴 수 있으니, 그런 점이 있다면 꼭 알려주기를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모든 안내를 마치고 나니 1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먼저 끝난 다른 반 아이들이 교실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심지어 목청 높여 떠들기도 해서, 다시 한번 '세상 미친년 모드'로 버럭을 했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건 연기이다. 너희 앞에서 상냥하지만, 나도 이렇게 화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켜두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인간은 '친절'에서 '불친절'로 넘어가는 것에는 불만을 품지만, '불친절'에서 '친절'로 넘어가는 것은 고맙게 여긴다. 아이들 역시 자유로움이 구속으로 바뀌었을 때는 불만을 표하지만, 규제 상태에서 느슨함이 생겼을 때는 그렇게 고마워할 수가 없다.


사실 이렇게 장황한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들은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둘 정도 부산하거나 조는 아이가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마 아이들은 이번 1년은 망했다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교실을 나서는데,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렇지. 니가 괜찮았을 리 없지.


교무실에 내려와 보니 아이들이 보낸 문자가 와 있다. 즉시 번호를 저장하는데 한 녀석의 문자가 빠졌다. 이렇게 실수하는 녀석들이 꼭 하나 있다. 그 녀석의 이름과 학번은 누군가에게 잘못 도착해 있겠구나. 에이그. 어쨌든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번호까지 저장해놓으니 마치 꽉 찬 저금통을 손에 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나는 선생님들마다 '도대체 뭐 그리 할 말이 많아?', '초장부터 애들 잡았어?', '1시간 했다고 소문났던데?' 등등의 말들을 건넸다. 나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점심시간, 교사 식당은 새로 만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지내봐야 알겠지만, 우선은 괜찮아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선생님들의 소개팅도 이렇게 끝이 났다.



이제 개학 즉시 필요한 것을 준비할 차례이다. 자리배치표와 청소구역을 지정하는 일. 아! 상담순서도 정해야 한다. 그룹상담으로 몸풀기를 한 후, 개별상담에 들어간다. 평소의 방학이라면 첫 수업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을 텐데 이번엔 온통 담임으로서 해야 할 것만 머리 속에 꽉 찼다.


방학을 지나온 '내 아이들'을 만날 일이 이제는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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