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모든 건 이 하나의 메시지에서 시작되었다.
한 달 떠나 있고 싶어
당시 친정엄마의 갑작스러운 기억상실 사건과 아이의 병치레를 동시에 겪은 터였다. 게다가 복직을 앞두고 이사도 가야 하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적응해야 하고, 남편과는 주말부부 생활을 하며 ‘1인 육아 체제’에 들어설 것마저 생각하니, '엄마는 어쩌나, 아이는 어쩌나' 도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고 움직여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문득 잠시라도 이 모든 걸 잊고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 있자.
한 달만 떠나 있자.
지금이 아니면 못한다.
즉각적으로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은 무슨 일 있었냐는 질문 대신에 의외로 담담하게 차분히 계획을 세워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차라리 반대라도 했으면 반발심으로 꼭 가고야 말겠다고 했겠지만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보라는 말에 오히려 내가 주춤했다.
하나하나의 질문을 곱씹으며 나 자신에게 수차례 질문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정말 있나 하는 마음으로 검색하면서 ‘한 달 살기’라는 키워드가 저 멀리에서 번뜩였다.
‘아! 맞아! 이런 게 있었지’
당시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런 삶을 사는 사람도 있구나', '참 팔자 좋네' 라며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넘겼던 기억이 났다.
기사를 읽어보니 이에 관한 책도 있고, 포털사이트의 카페도 있단다.
그 즉시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하룻밤 사이에 다 읽어버렸다.
내친김에 카페도 가입했다.
카페에서는 숙소에서부터 차량, 갈만한 곳 다양한 정보가 방자하게 들어차 있었다.
여러 가지 기준으로 필터링한 숙소들 중 나의 일정에 맞고 임대료도 적합한 곳에 연락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곳은 진즉에 예약이 끝나 있었다.
알람까지 맞춰놓고 숙소의 예약까지 한다고 하니 나의 늦은 감성을 탓할 수밖에.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히려 오기가 생겨났다.
그간 나의 깜냥을 체크해보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렸는데 이제는 내 깜냥이고 뭐고 일단 숙소라도 찜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최종 후보 순 3곳을 추려냈다.
하지만 이제 또 난관이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남편이 회식이나 출장이 있으면 쪼르르 친정으로 가거나, 친정부모님을 우리집으로 오시게 해가며
'독립 육아'라고는 생각해보지도, 하고 싶지도 않던 나였다.
그런 내가 무려 한 달을 혼자서 케어할 수 있을까?
모든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 무렵 남편이 넌지시 물어왔다.
잘 되어 가? 숙소는 정했고?
그제야 난 내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1)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매일 밤 울며 괜히 왔다고 후회하고, 애한테 성질만 부리다 오게 되는 건 아닌지...?
(순한 우리 아이를 케어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애로사항은 먹이는 것.
솔직히 내 손으로 이유식 열 번을 만들어 먹이지 못했고 -정성껏 만들어도 먹지 않는 아이 때문에 포기-,
낮잠 시간이나 여러 상황 때문에 하루에 두 끼만 먹일 때도 있었다.
안 먹으면 안 먹이면 된다는 마인드.
나도 있다.
하지만, 새벽 3~4시에 배고프다고 계속 깨워대니 안 먹이면 나만 손해다.)
2) 이사로 인한 대출금 이자 갚아야 하는 형편에 이렇게 팔자 좋게 한 달 씩이나 다녀와도 정말 괜찮은 건지...?
“당신은 막상 닥치면 잘 해낼 거야.”
“그리고... 그렇게 고민만 하다 보면 애써 골라놓은 숙소마저도 놓친다.
막상 예약하면 이 모든 고민이 다 해결될 거야.”
“당신이 왜 가고 싶은지를 잘 생각해봐”
3년간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 오롯이 내 힘-남편 힘, 엄마 힘을 포함하여-으로 아이를 케어하고자 했고,
그래서 어린이집에 위탁하지 않고 돌보았다.
하지만...
복직을 위해 아이는 어린이집에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에겐 방학이 있지만 그 계절에는 덥거나 춥고, 비싸고 사람도 많다.
나에게나 아이에게나 지금과 같은 시간은 없다.
시간은 돈으로 측량할 수 없으며 살 수도 없다.
대출금 이자는 복직해서 열심히 갚으면 된다.
‘한달살이’의 효과는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어떻게든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닥칠 주말부부의 운명에 적응하기 위한 전 단계 훈련도 될 것이다.
전화를 걸었다.
예약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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