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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May 26. 2017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

04. 나 같은 사람도 떠났다



이대로 가도 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일대 사건이 터졌다. 


앞서 말한 대로 제주에서 돌아오고 일주일 후 이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거기에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이사 들어갈 집의 임대인이 정식 계약 이틀 전에 변심을 해서 그 집을 계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사 나갈 집에 대한 계약서도 같은 날짜에 쓰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계약만료일이 아직 1년 하고도 반년이나 더 남은 상황에서 복직 때문에 미리 집을 빼서 나가야 했는데, 갑자기 들어갈 집이 이렇게 상황이 어그러져 버렸으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대로 나갈 집 계약도 미루자고 했더니 남편이


 우리도 이렇게 당황스러운데 남들에게 똑같이 당황스럽게 하면 안 될 것 같다


라고 하기에 나갈 집 계약은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길로 부동산으로 갔는데 여기서 더 심각한 문제가 터졌다. 


심각한 전세난으로 정식 계약서를 쓰기 전에 계약금의 일부를 계약금조로 먼저 입금한 후 계약날짜에 계약서를 쓰는 것이 요즘 관례인데, 그 임대인 할머니가 계약금에 100만 원만 더해서 주겠다고 배짱을 부리는 것이다. 당장 모레 나갈 집 계약을 하면 정해진 날짜에 우리는 무조건 집을 빼줘야 하고, 들어갈 집은 없는 상황인데, 거기에 계약금 배액상환도 못 받으니 여러모로 억울한 상황에 처했다. 


더 고약한 것은 이 할머니가 변심한 이유가 다른 부동산에서 전세가를 더 올려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몰래 그 부동산에 물건을 내놓고 우리에게 세금 문제로 늙은이가 돈이 없어서 그런다며 사정과 협박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급기야는 200만 원을 받거나 정 안되면 1년만 살고 이사비용 100만 원을 줄 테니 나가 달라고 하기까지 했다. 이사의 수고로움에다 이사비용까지 하면 100만 원은 턱없이 부족한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배액상환의 의지도 없을 뿐 아니라 남의 어려운 사정 따위는 전혀 고려치 않고, 그저 자기 배만 불릴 작정으로 변심한 사람이니 점점 그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다. 




우선은 디데이 3주 안에 들어갈 집을 구해야 했다. 


게다가 추석까지 끼어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2주의 주말뿐이었는데,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이 상황에서 제주를 가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을 수 없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남편에게 토로를 했다. 


남편은 고민도 하지 않고, 


이 일 때문에 못 가게 되면 더 억울할 거야.
우리가 열심히 다니면 어떻게든 구하게 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갈 준비 열심히 해



라고 답했다. 


미안하고도 고마운 대답이었다.




밤늦게까지 부동산을 돌았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아이는 배고프고 힘드니 짜증을 부리다 어느새 잠이 들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그 할머니가 더 괘씸했다. 


“젊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인정이 없어요.”라든지 “선생님이라면서 100만 원 없어서 못 사는 것도 아니면서”라는 인신공격성 말투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복장이 터진다. 


결국엔 20년 된 낡은 아파트를 계약하면서 집을 구하는 데까지는 일단락되었고, 답답한 마음을 안고서 비행기에 오르는 신세가 되었다. 


만약, 계약일자를 넉넉히 앞두고 변심한 것이라면 치사하고 짜증 나지만 받아들이고 새로 들어갈 집을 구하면 되었을 일이지만, 이틀 전 통보하고 배액상환 조차도 하지 않으려는 데다 오히려 우리를 '운 좋게 생긴 공돈(그 할머니 표현에 의하면 불로소득이란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젊은이들'로 내모는 못된 심보에 오기가 생긴 것이다.  


이후에 남편 혼자서 보증금 상환에 관한 절차를 밟았고, 그것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도 나는 계획을 실행했다. 


물론 남편의 공이 컸지만.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같이 남아 이것을 처리하려 했다면 

나는 제주살이의 행복한 경험은 하지도 못한 채 그 할머니만 원망하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를 안고 지내고 있을 것이다. 



준비하다 보면 여러 가지 걸림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이 여행 준비를 위한 과정에서 생기는 것일 수도 있고, 

나처럼 여행 외의 것들로 골머리를 앓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제동들에 걸려 넘어지면 제주살이 계획은 아주 먼 훗날의 일이 되어버린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마음이 움직인 지금

바로 실행에 옮기기를 권한다.


한 발자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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