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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ul 14. 2017

내가, 우리 아이의 교과서라는 것.

12. <기저귀 차고 제주 한 달> 6일 차



밖은 아직 어둑한데 아이가 일찍 깨서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겸이는 노래를 참 좋아한다. 할 수 있는 노래가 아마 100곡은 될 것 같다. ‘나무야’를 시작으로 말소리에 멜로디가 실리더니, 이제는 3~4번을 들으면 금방 가사를 왼다.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대화도 음을 넣어서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보는 사람들마다 뮤지컬을 시켜보면 어떻겠냐고들 할 정도다. 이런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해주면, 남편은 변성기 지나고 다시 생각하란다. 


치잇! 그냥 좀 같이 호들갑 떨어주면 안 되겠니. 


아무튼 겸이의 노랫소리를 듣는 일은 대부분의 시간에는 즐겁고 행복하다. 


하지만, 

아침 일찍, 그것도 해도 아직 안 뜬 시간에 부르기 시작하면 더럭 겁이 난다. 녀석이 잠이 완전히 깨버렸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못 들은 척하고 계속 잤더니 아이는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엄마, 목말라요.” 

이 말 역시 못 들은 척했다. 포기할 아이가 아니다. 내가 대답할 때까지 반복해서 말한다. 

“알았어. 물 갖다 줄게.” 

물을 먹은 아이는 “카하~” 하고는 다시 또 뮤지컬 투로 “엄마, 이거 책 읽어주세요.”란다.  


“지금 밤이야. 아직 깜깜하잖아. 얼른 다시 자.” 

너무 졸린 나머지 신경질적인 투로 말해버렸다. 아이는 서운했는지 운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무뚝뚝한 말투로 미루어 눈치를 채고는 

“엄마 화났어요? 엄마 미안해요. 아침부터 울어서 미안해요.” 이런다. 

아휴. 내가 졌다. 


이렇게 오늘 아침도 '또' 일찍 시작했다.      




밤사이 비가 내려서인지 온몸이 끈적했다. 몸을 일으키니 아이가 '야호!'를 외친다. 끄응. 

블라인드를 걷고 창문을 열었다. 산산한 바람이 금세 집 안으로 들어온다. 


“겸아~” 

식사를 준비하려는데 윗집 이모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쪼르르 문 앞으로 달려 나가는 아이. 

“일찍 일어났나 봐요.” 


두 손엔 삼각김밥과 커피가 들려있다. 아이들의 체험학습 도시락을 싸시면서 우리 몫까지 챙겨다 주신 것이다. 게다가 요 며칠 목말라있던 커피까지. 정말 황송한 순간이었다. 


윗집 이모의 수제 삼각김밥, 그리고 커피


겸이도 얼른 식탁에 앉는다. 어쩌다 편의점에서 사주면 몇 절음 베어 먹고는 고개를 달랑달랑 흔드는 아이인데, 이모의 수제 삼각김밥은 하나를 훌쩍 넘겨 먹었다. 이래서 아이들의 입맛은 속일 수가 없나 보다. 아침이라 혹시라도 입이 깔깔할까 싶어 계란찜을 해서 곁들여 먹였다. 우리 시엄니표 버섯계란찜.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의외로 깊은 맛이 난다. 

(계란물에 쌀뜨물과 다시마 한 장, 슬라이스 된 마른 표고 대여섯 개, 그리고 소금과 비법의 다진 마늘. 이렇게 넣고 전자렌지에 5~6분 돌리면 보들보들 감칠맛 나는 계란찜이 완성된다. 꼭 해보시길.)


시엄니표 계란찜


밥을 먹으면서 오늘 갈 곳을 검색했다. 

오랜만에 여행책자를 펼쳐놓고 비 오는 날 가기 좋은 몇 곳을 골랐다. 도서관, 돌고래, 초콜렛만들기. 이렇게 3개의 안을 들고 겸이에게 물어보았다. 돌고래 당첨. 


책에 소개된 곳은 마린파크였다. 운전시간도 적당하기에 거기로 정하고 자동차에 올랐다. 그런데, 혹시 소셜에 나온 게 있나 싶어 찾아봤는데, 당일 구매한 티켓은 사용불가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싶어 마린파크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돌고래체험은 예약제이며, 금일분은 예약 마감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 현장 구매는 가능하단다. 단, 5천 원만 더 내면 말이다. 또한 돌고래체험이 기본 테마여서 입장권만으로는 그다지 볼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담당자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돌고래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을 찾아보았다. 전에 가봤던  아쿠아플라넷을 제외하고 나니 ‘퍼시픽랜드’라는 곳이 있었다. 중문 쪽에 있는 곳으로, 세트로 묶인 많은 관광지들 중에서 한 번쯤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기에 이곳으로 정했다.




중문으로 가는 길에 만난 메밀밭 @ 수산리


네비상으로는 30분 정도 걸린다는데, 내 운전실력으로는 40분이 걸렸다. 가는 도중 잠든 아이는 도착해 시동을 끄자마자 잠에서 깨었다. 현재 시즌의 공연시간은 각각 11:00, 13:30, 15:00, 16:30 인데 도착시간이 12시쯤이었으니 1시 반 공연을 보면 된다. 입장은 공연시작 30분 전부터 가능하다. 입장 시작할 때 들어가야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볼 수가 있다고 하기에, 점심은 바로 앞 카오카오베이커리에서 사서 먹기로 했다.  

귀여운 돌고래빵.


빵과 우유를 먹으며 주변을 산책하는데, 풍광이 정말 절경이다. 어쩌면 바람이 많이 불어서 더 멋져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탁 트인 바다 위로 하얗게 일어나는 성난 파도거품은 정말 근사해 보였다. 


퍼시픽랜드 뒤편 산책로. 성난 파도


바람의 소리를 듣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공연은 총 3가지이다. 원숭이쇼, 바다사자쇼, 돌고래쇼. 넓은 내부를 이동하며 다닐거라 예상하고 유모차를 가지고 들어갔다. 그런데 공연장은 한 군데였고, 그것도 계단만 있어서 유모차는 들어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유모차는 직원용 책상 옆에 세워두고 들어갔다. 

1시에 입장했으니 들어가서도 30분을 기다려야 했는데, 30분이란 시간은 두 돌배기 아기에게는 꽤 길고 지루한 시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돌고래는 언제 나오냐고 계속 묻는다. 돌고래도 밥을 먹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그저 앉아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꽤나 힘들었을 것 같다.




이윽고 막이 열리면서 쇼가 시작되었다. 

원숭이들이 공을 가지고 놀고 장대를 타기도 하며, 타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바다사자도 익히 보아왔던 것처럼 공으로 쇼를 보여주고, 짧은 앞다리로 박수를 치는 정도였다. 특이점이 있다면 객석에서 3팀을 골라 무료 기념촬영을 해 준다는 것. 열심히 손들었으나 실패했다. 팁이 있다면 인형이나 눈에 띄는 무언가를 들고 흔들어야 뽑힌다.


드디어 돌고래쇼. 

쇼에 앞서 작년 7월에 태어난 아기 돌고래의 탄생 영상을 보여주었다. 


엄마 돌고래를 따라다니며 그 고통을 함께 해주는 아빠 돌고래, 그리고 1시간 여의 산통 끝에 벌건 핏물을 뿌리며 아기 돌고래를 출산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사람의 그것' 같았다. 젖을 먹고 자라는 동물이라 포유류라 하겠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잠시 동안, 겸이를 낳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돌고래들이 보여주는 장기들은 다른 곳에서 본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조련사와 선보이는 수중 묘기는 꽤 다이나믹했다. 사람이 로켓을 타고 날아가는 것 같다고나 할까. 

돌고래쇼

약 50분의 공연이 끝나고 나니 돌고래와의 유료 사진촬영 시간이 있었다. 1회 1만 원이며, 한 컷에 2명까지 가능하다. 폴라로이드 사진과 함께 차회 사용 가능한 1인 입장권을 1장 준다. 사진 한 장 값으로는 꽤나 비싸지만, 입장권 가격을 비교해보면 그리 비싼 것은 아닌 것 같다(소셜에서 판매하는 입장권이 성인 기준 9천 원, 현장판매 1만 원이니까). 


마린파크의 돌고래체험도 못했으니 이거라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아이에게 물었다. 

“겸아, 겸이도 형아들처럼 돌고래랑 악수하고 사진 찍어볼까?” 

의외로 “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섭지 않겠냐는 나의 질문에도 “괜찮아, 난나(겸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는 용감해.”라고 대답한다. 울어서 못 찍게 되면 다시 환불해준다니 밑져야 본전, 긴 행렬 뒤에 나도 한 꼭지 붙어서 섰다. 


줄을 선 시간에 비해 찍는 시간은 정말 순간. 내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데도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의 찰나의 순간. 살짝 겁을 먹기는 했는데 다행히 울지는 않았고, 긴장된 모습이 역력한 사진을 하나 얻었다. 


돌고래와 첫 만남.
돌고래와 첫 악수.
요것이 1만원짜리 폴라로이드. 차회 입장권도 1매 준다.

“돌고래 만지니까 어땠어?” 

“차가웠어.” 

“미끌미끌하고?” 

“응! 미끌미끌하고 차가웠어.” 


화장실에 들러서 기저귀를 갈고 밖으로 나오는데, 화장실 맞은편 기념품샵이 아이의 눈에 띈 모양이다. 가급적 빛의 속도로 차에 오르려고 했지만, 아이는 여지없이 기념품샵에 마음이 팔려 차에 타서도 계속 울었다. 결국 '별 것 아닌 장난감'을 '별 것 같은 가격'을 주고 사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잠깐 가지고 놀더니 카시트가 갑갑하다느니 서울 할머니 집에 가겠다느니 하면서 다시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만 보니 졸려서 우는 것 같다. 잠깐 안아주니 금방 잠이 들었다. 카시트에 태우고 출발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졌다. 흐리긴 해도 아주 많은 비는 피해서 왔는데, 결국 우리는 '비'님과 조우하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 식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5시 정도인데 이미 주차장이 꽉 찼다. 빗줄기마저 엄청 굵어졌다. 차 댈 자리를 찾아 주차장을 돌다 보니 그곳을 역주행하고 있었나 보다. 두 대나 연달아 사나운 삿대질을 하고 지나갔다. 진(進)도 퇴(退)도 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과 맞닥뜨렸을 때, 초보운전자는 정말 울고 싶다. 


간신히 자리를 찾아 주차를 한 후 우산을 꺼내고 나니 아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큰 우산도 날려버릴 듯한 거센 비바람이 불었다. 아이는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우선 하나를 쥐어주고는 늘상 얘기하듯 “삐~”하면 먹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장을 다 보고 계산할 때쯤 되니 아이스크림은 완전히 액체로 변해있었다. 이런 순간에 맞닥드릴 때마다 나는 항상 마음에 새긴다. 


‘나는, 엄마잖아’


녹은 아이스크림을 통에 넣고 다시 새 것으로 꺼내올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많이 봤다. 하지만, 내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던 건 순전히 마음속의 저 외침 때문이다. 


아이를 위한 일을 하면서 아이에게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아이를 태우고 가는 자동차가 신호위반을 한다던가, 아이 손을 잡고 무단횡단을 한다던가, 아이 앞에서 남들과 욕하면서 싸우거나, 뻔한 거짓말이나 핑계를 대며 상황을 모면하려 든다던가 하는 행동들 말이다. 그릇된 행동을 '본보이는' 부모들을 볼 때마다 '저 부모는 어떤 교육관을 가지고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일까'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아무튼 중문을 오가는 운전길보다 더 험한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배가 고픈지 핫도그를 달라기에 전자렌지에 데워서 케찹을 발라 주었더니 금세 꿀꺽하고는 하나 더 달라한다. 이런 일은 드물기에 얼른 하나 데워서 대령했다. 그 사이 나는 된장국을 끓이고 냉동 불고기산적을 구웠다. 간단하지만 속이 훈훈해지는 저녁식사였다. 

핫도그 촵촵.

목욕을 시키고 침대에서 구르며 놀다 불을 껐다. 헌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순순히 자는 시간이냐며 물어온다. 책을 챙기고 북스탠드를 켜기만해도, 안 잘 거라는 으름장부터 놓던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당연스레 수긍하는 듯한 모습이랄까. 아이에게 규칙이라는 것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출발할 때는 50분짜리 공연 보자고 근처도 아닌 먼 곳을 찾아가는 게 맞나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평생 처음 돌고래와 악수하고 그 기억을 가슴에 담았다. 이 짧은 순간의 경험만으로도 아이는 수시로 '돌고래와 악수한 이야기'를 한다. 분명 뇌리 어딘가에 작은 파편 하나로라도 남겨놓았으리라고 엄마는 믿어본다. 


아이와 함께 나서는 길은 항상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린다. 이 '이벤트 하나'로도 오늘 하루는 마감되었으니까.          





Epilogue

퍼시픽랜드 관람을 마치고 차에 타는데, 옆에 주차된 차에서 3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내리더니 대뜸 제주에선 어디를 가면 좋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컨셉에 따라 다르지 않겠냐고, 이쪽 중문에선 대부분 실내 관광지들이 많은 것 같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자 '제주사람이냐'부터 '아이와 둘이 온 내가 대단하다'느니, 자기는 혼자 왔고 자기도 자차를 가지고 왔다면서 묻지도 않은 자기소개를 하면서 동질감을 느끼는 듯 좋아라했다.
그 후 나는 뒷좌석에 타서 아이를 달래고 있는데, 떠났던 그 차가 다시 옆자리에 주차를 하더니 '이제 어디 갈 거냐'라고 묻는 거다. 다시 온 것도 이상하고, 어디 갈 건지 묻는 것도 의심스러운 나는 무심한 말투로 숙소에 갈 거라고 대답하고는 다시 아이 달래기에 들어갔다.

집에 돌아와 이 에피소드를 남편에게 이야기해주니, 남편은 “아~ 이제야 어떻게 된 건지 알겠네.”란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낮에 남편의 전화로 '제주에 혼자 왔는데 반가워서 말 붙였는데 혹시라도 불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메시지가 왔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 차에 붙은 남편 전화번호를 내 것으로 생각하고 연락을 해 온 것 같았다.
친절하게도 남편은 ‘잘못 보내신 거 같아요.’라고 답장까지 보냈다고 하니, 그 남자 입장에서 나는 철벽녀쯤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남편은 한편으론 언짢아하면서도 한편으로 수상한 사람 같다며 걱정도 했다. 과연 그 남자는 '단순한 반가움'이었을까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이었을까.     
  
{오늘의 가계부}
입장료 9.9천 원(소셜 세트 구매)
카오카오 베이커리 1만 원(카스테라, 돌고래빵, 통밀모닝빵, 우유)
장난감 9천 원
식재료 약 4.6만 원



Today's meal     

-조식: 삼각김밥 + 버섯 계란찜

-중식: 카오카오 빵 +우유  

-석식: 핫도그 + 된장찌개 +냉동 불고기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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