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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Aug 29. 2017

그대 없이는 못 살아

20. <기저귀 차고 제주 한 달> 13일 차




나야 어젯밤 일기글 쓰느라 밤을 꼴딱 새워서 그렇다 치고 아이도 꽤 늦게까지 잠을 잤다. 이럴 땐 그저 감사할 뿐. 눈은 뜨기 힘들지만, 정신은 이미 깨어있는 나에게 아이가 다가와 왼쪽 눈에 한 번 쪽!, 오른쪽 눈에 한 번 쪽!, 코에 한 번 쪽!, 입에 한 번 쪽!, 이마에 한 번 쪽!, 귀에 한 번 쪽! 하며 나를 깨우는 신호를 보낸다. 어떤 엄마가 눈을 뜨지 않을 수 있을까. 


어제는 집밥 한 번 제대로 못 먹었으니 오늘은 든든히 아침을 먹어보자는 생각에 냉장고를 열었다. 냉동실에서 옮겨놓은 갖은 음식물들이 대강 녹아서 정상적인 듯 보였다. 


오늘은 두부 넣고 어묵국을 끓이고, 있는 재료를 이용해 김밥을 싸 보기로 했다. 어묵국의 육수를 낼 재료가 없으므로 가쓰오부시액을 넣고 끓이고 어묵을 넣고, 언두부를 해동해서 넣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파채를 투하하니 그럴듯한 맛이 났다. 

김밥은 어묵과 크래미, 계란, 단무지, 우엉, 치즈만 넣고 말았다. 겸이 몫은 직격 2.5센티 정도 크기로 말아, 1센티도 안 되는 두께로 썰었다. 이래야 김밥을 해체하지 않고서도 한 입에 쏙 들어가는 김밥이 된다. 들어간 재료가 많지 않으니 모양은 그저 그랬지만, 맛은 나름 괜찮았다. 배고프다며 맛살을 몇 개 먹은 터라 아이는 열심히 먹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침밥을 먹였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어제 단수로 쌓인 설거지까지 하고 하니 벌써 12시가 넘었다. 분명 아침으로 먹은 건데 점심 때다. 브런치 먹은 걸로 하자. 


“엄마, 밥 먹고 어디 가요?”


요새 아이가 늘상 하는 질문이다. 이제 먹으면 나가는 것이 관례가 되어 버린 듯하다.


“겸이 어디 가고 싶어요? 양 보러 갈까, 말 보러 갈까, 바다에 갈까, 도서관에 갈까?”

“말 보러 가요.”


선택지의 순서를 바꿔도 말을 택하기에 말을 보러 가기로 했다. 마방목지, 성이시돌목장 두 곳을 고려했으나, 오는 길에 새별오름도 들러볼 겸 성이시돌목장으로 결정했다. 씻고, 화장을 하는데 아이가 또 한 마디 한다.


“엄마 화장해요? 아~ 우리 엄마 예쁘다.”


아이가 ‘화장’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도 신기했지만, 엄마 듣기 좋으라고 내놓는 감탄사에 '이 녀석 속에 뭐가 들었나'싶다. 평소에 화장도 거의 안 하거니와 화장이랄 것도 없는 것이 수분크림 바르고 팩트 톡톡 두드리는 건데 평소에 워낙 화장을 안 해서인지 '톡톡 두드리는 게 화장'인 거고, '화장을 하면 나가는 것'이라는 회로가 설계된 듯하다. 


조금 있으니 라디오에서 패티김의 ‘그대 없이는 못 살아’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 세대의 음악은 아니지만, 사춘기 시절 노숙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잘 아는 노래이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솔직하고, 들을수록 정겨운 노랫말인 데다 멜로디도 흥겨워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겸이가 옆에 있으니 가사는 겸이라는 이름을 넣고, ‘사모한다’는 표현은 모르니 ‘사랑한다’로 바꾸어서.     


좋아해 좋아해 겸이를 좋아해 저 하늘에 태양이 돌고 있는 한 겸이를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겸이를 좋아해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한 겸이를 좋아해 
겸이 없이는 못 살아 엄마 혼자선 못살아 헤어져서는 못살아 떠나가면 못살아     

사랑해 사랑해 겸이를 사랑해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겸이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겸이를 사랑해 장미꽃이 비오기를 기다리듯이 겸이를 사랑해 
겸이 없이는 못 살아 엄마 혼자선 못살아 헤어져서는 못살아 떠나가면 못살아

사랑해 사랑해 겸이를 사랑해 엄마 생명 엄마 마음 다 바쳐서 겸이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겸이를 사랑해 영원히 영원히 변함이 없이 겸이를 사랑해 
겸이 없이는 못 살아 엄마 혼자선 못살아 헤어져서는 못살아 떠나가면 못살아     


신나게 부르고 있는데 곁에 있는 아이가 이상하게 조용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눈에 눈물이 한가득. 

깜짝 놀라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 겸아?” 



내 말에 아이는 그만 ‘으앙~’하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품속으로 달려든다. 이유인즉슨, 노래가 너무 슬프다는 것이다. 노래가 슬프다고 울다니 정말 너 26개월 아가 맞니? 


물론 겸이는 아주 어렸을 적 멜로디가 구슬프면 듣다가 울기를 잘 했다. 신기하게도 뱃속에 있을 때 불러주던 자장가 4곡에 유독 반응했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검둥개야 우지 마라.” 이 부분이 나오면 '으앙'하고 빵 터져 운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잘 자라 내 아기...”, “엄마가 섬그늘에” 노래를 시작만 해도 입을 삐죽삐죽하다 이내 울어버린다. 


하지만, 그 모습을 이제는 보기 힘들다. 이제는 내가 그 노래를 하면 “엄마, 검둥개 슬퍼.” 라든지 “엄마, 잘 자라 우리 아가 슬퍼.” 정도로 자신을 기분을 표현한다. 그런 아이가 노랫말을 듣고 울고 있다. 멜로디가 슬픈 노래도 아닌데 그 노랫말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이다. 


“엄마 노래가 재밌는데, 노래가 슬퍼요.”

“왜 슬퍼?”

“'난나 없이는 못 살아, 엄마 혼자서 못 살아'라고 해서 속상해요.”


나 역시 코끝이 찡하더니 괜스레 슬프다. 늦깎이 시집가서 낳은 아이라 다른 젊은 엄마들만큼 오랜 시간 함께 못 살아줄 것이 항상 미안했는데, 녀석이 이런 말을 하니 나도 울컥했다.


“그래. 엄마도 가만히 생각하니까 슬픈 것 같네. 겸이랑 엄마랑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다정하게 잘 살아보자.”


라며 시한부를 선고받은 엄마처럼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무래도 이 녀석, 정말 뮤지컬에 재능이 있나. 감정도 풍부하고, 노래도 좋아하고. 


엄마는 너의 미래가 무척이나 궁금하구나.     





성이시돌목장은 집에서 약 30분 정도 걸렸다. 

가는 길은 정말 고요했다. 잠깐잠깐 차를 세우고 정경을 봐도 좋을 만큼 2차선 도로이지만 넓게 빠져 있었고, 실제로 차를 세울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놓은 곳도 많았다. 이게 드라이브구나 할 때쯤 숲길로 들어섰다. 


이시돌목장이 아니더라도 주변에는 많은 목장들이 있었다. 주차장에 전에 없던 새로운 건물이 하나 들어서 있었다. 바로 ‘우유부단’이라는 카페. 우유갑 모양에 외양간을 떠올리게 하는 색감의 건물인데, 크게 주변의 풍경을 해치지는 않았다. 말도 보여주고, 지난번 해변에서 만난 RAIN맘이 말한 ‘우유부단’에도 와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내부가 넓지는 않았고, 카페 앞에 우유갑 구조물 벤치가 놓여 있어 사람들이 줄지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거의 다 와서 잠든 아이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카페에서 뭐라도 사 와서 함께 차에 있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깨더라도 우선 아기띠로 안고 들어가 보기로 했다. 깨면 테쉬폰 집을 보러 가면 되고, 깨지 않으면 차라도 마시며 쉬면 되니까. 볕이 화창해서인지, 카시트에서 아이를 내리는데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딘가 싶은지 두리번두리번 거리다가, 카페 손님들에게 먹을 것 좀 달라고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하얀 개를 보더니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다. 


카페 안도 사람들도 북적였다. 다행히 자리 하나가 생겨서 아이를 내려놓고 우유와 시그니처 밀크티를 주문했다. 우유와 우유 베이스 아이스크림과 밀크티, 그리고 커피와 같은 ‘우유 말고’ 종류를 판매한다. 



전에 왔을 때 남편이 엄청 먹어보고 싶어 한 우유를 아들이 대신해서 마시고 있다. 벌컥벌컥 마시더니 아이스크림은 언제 주냐고 묻는다. 그래, 엄마가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고 했지.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면서 남편 줄 우유도 추가로 샀다. 우유는 돌아가는 길에 찾아간다고 냉장고에 위탁해두었다. 달달한 것을 먹은 아이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본래 까만 피부인데 하얀 티셔츠를 입혀놓고 하얀 아이스크림과 우유를 먹는 모습을 보니 오늘은 어쩐지 하얗게 보이는 건 엄마뿐일 테지. 



우유는 고소하고 진하기보다는 익히 알고 있는 저온살균우유의 맛처럼 깔끔하고 가벼웠고, 밀크티 역시 홍차와 우유의 진한 풍격이 있기보다는 산뜻하고 많이 달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은 셔벗 스타일로 우리네 어릴 적 설탕 넣어 우유갑 채로 얼렸던 그 감촉인데, 자극적이게 달지 않고 괜찮다.


먹었으니 이제 말을 보러 가자. 

말들은 생각보다 가까이 와 주지는 않아서 초원을 노니는 말들을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대신 한 구석에 자란 억새풀에서 사진을 찍고 테시폰 집을 구경했다. 



테쉬폰은 건축물 양식의 이름이다. 이라크 바그다드 근처의 테쉬폰이라는 곳의 건축물들이 이런 형태를 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오랜 기간 태풍과 지진으로부터 온전히 그 형태를 유지를 하는 비밀은 곡선형으로 연결된 쇠사슬의 형태 때문이라고. 이 건축양식은 협재 성당에서도 사용되었으며, 현재 주택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축물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주택이라기보다는 축사 같은 느낌도 든다. 



큰 나뭇가지가 안쓰럽게 부러진 것을 보니 이곳도 태풍으로부터 안전지대는 아니었을진대, 그 가운데 이 테쉬폰 주택은 낡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 바람에도 정말 잘 버틴 것 같다. 


모진 풍파를 다 겪은 주름 진 할머니의 모습이 이러할까, 잠시 상상해본다. 외형상으론 젊은이들에 비할 수 없지만, 청춘들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내적 강함이 존재하는 위용 넘치는 할머니의 그 주름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디든 올라가기 좋아하는 아이는 창틀에도 나무에도 올려달라고 성화다. 덕분에 멋진 사진들이 나왔다. 



테쉬폰 뒤쪽으로 말 세 마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노닐고 있기에 다가갔더니 그들도 우리에게 다가왔다. 막상 가까이 오니 겁이 났는지 나에게 안긴다. 



이제 새별오름으로 이동하려는데 아이가 나무 열매를 줍느라 바쁘다. 

흙이나 풀을 만지는 데 거침이 없는 아이. 난 그런 아이가 참 보기 좋다. 하지만 입에는 넣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 



맡겨놓은 우유를 찾아 새별오름으로 향했다. 인적은 드물고 점점 무서워질 무렵, 내리막길에 물 웅덩이가 나타났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자세히 보니, 태풍 때 내린 빗물이 대량으로 고여 있는 것인데 여기뿐만 아니라 앞쪽에도 군데군데 웅덩이가 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 깊이인지 가늠할 수도 없는 데다 외길이어서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하는지 무섭다고 집에 가자고 한다. 어렵게 후진으로 차를 빼는데 뒤에 이곳으로 오려는 차 한 대가 서 있다. 가만히 보니 축사를 드나드는 트랙터였는데 외국인 노동자가 운전을 하며 우리 차를 몇 번이고 돌아보며 물웅덩이를 헤쳐 나갔다. 


다른 길로 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미 놀라서 갈 엄두가 나지 않기에 그냥 집으로 가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점심을 우유와 아이스크림으로 때웠다. 아침을 늦게 먹어서 거기에서는 배가 고픈지 몰랐지만, 집이 가까워오니 슬슬 배에서 식량공급을 요청하는 소리가 난다. 저번에 봐 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왕서방 식당. 

네비로 찍으니 이상한 길로 안내한다. 구엄초등학교 건너편인데 왜 자꾸 유턴을 시키는지. 그냥 감으로 좌회전해서 들어갔다. 식당은 골목길 안쪽에 있어서 담벼락에 차를 세우고 들어갔다. 마당이 있는 옛날 건물에 차려진 중국집이었는데, 배달 주문이 더 많은 듯했다. 



마당에 그네가 있기에 겸이를 거기에 앉히고, 안으로 들어가 쟁반짜장을 주문했다. 이왕 먹으러 온 거 맛있는 거 먹자고. 그런데 삼선간짜장도 눈에 띄길래 물어봤더니 그게 더 맛있다고 하기에 얼른 주문을 바꿨는데 잘한 행동인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마당에 있는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종종 찾아오는 손님들은 모두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관광객들은 다른 건가 싶을 무렵, 빠른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할머니 무리들이 우리 아이를 보며 말씀하신다. 


“아이고, 어떻게 요렇게 귀여운 아이가 있을까. 근데 애기엄마, 여기 있으면 모기 물어요. 그래서 안에서 먹는 거야.”


라고 하신다.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아이를 쳐다봤더니 눈물샘 바로 위 눈꺼풀을 이미 모기가 물고 갔다. 아뿔싸. 


아무튼 기다림 끝에 나온 짜장은 ‘제주의 삼선 짜장답게 전복도 들어가 있네’ 하며 눈으로 한 번 감탄, 맛도 ‘우와~ 역시!’ 할 정도로 좋았는데, 먹을수록 달았다. 그냥 5천 원짜리 기본 짜장을 먹을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든 건 이때부터였다. 



나중에 윗집 이모에게 얘기를 들었는데, 그날그날 맛이 다르다고. 아버지가 요리한 날은 엄청 맛있고, 아들이 한 날은 그저 그렇다고 한다. 


먹고 있는데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기웃거린다. 아이는 신기하면서도 가까이 오는 게 무서운지 나한테 대롱대롱 매달리며 제 다리를 의자 아래로 내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개에 대해서는 공포심이 없는 아이인데, 매일 밤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며 고양이 흉내를 내면서도 아이도 고양이는 약간 두려운가 보다.



“엄마, 고양이가 왜 눈을 이렇게 뜨고 나를 봐요?”

“고양이가 배가 고픈 것 같아.”


몇 가닥 주니 잘 받아먹는다. 아이는 자꾸 주라고 하는데, 과연 계속 줘도 되는 건지 몰라서 몇 번 망설였다. 우리가 자주 안 주니까 다른 손님에게로 갔다. 아이는 밥 먹다 말고 고양이 있는 곳으로 가자한다. 무서우면서도 자꾸 끌리는 뭔가가 있나 보다. 


결국 중국집 주인의 발놀림에 고양이는 쫓겨나 버렸고, 아이는


“고양이는 무서운 게 아닌데, 눈으로 보는 건데.”


라며 쫓아낸 이모에 대한 원망을 집에 올 때까지 되풀이하며 말했다.





집에 와서 주차를 하는데 벽에 앞바퀴와 모서리 일부를 긁었다. 남편에게 전화하니 벽만 무너뜨리지 말란다. 아이는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우리 집이 아닌 윗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이모! 이모! 난나 왔어요. 말! 말!”


자기의 귀가 소식을 알리고 동시에 말을 봤다고 자랑하려는 것이다. 우렁찬 아이의 목소리에 윗집 이모가 반가운 목소리로 맞이해주셨다. 


“이모! 거북이! 거북이!” 


며칠 전에 구경한 거북이가 보고 싶다는 아이의 말을 이모가 얼른 알아채고는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짐을 옮겨놓고는 다시 위로 올라왔다. 그 사이 아이는 젤리 두 봉지와 블록으로 만든 트럭과 포크레인을 손에 들고 신이 나서 뛰어나왔다. 내 손에는 지난밤 떨어진 거라며 건네주신 감이 들려있다. 오늘도 우리는 윗집 이모의 성은을 받았다. 


이모와 이야기 중에 둘째 아이가 신이 난 얼굴로 나왔다. 소곤거리지만 나도 들을 수 있는 정도의 목소리로 “엄마, 상! 나 상!” 이런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제주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그림 그리기에서 저학년 대표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그 상 때문에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 있다는 것이다. 그걸 자랑하고 싶어서 엄마를 따라 쪼르르 밖으로 나온 아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빠진 앞니를 드러내며 웃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우리 아이도 곧 저런 모습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거 별거 아니야. 이런 건 겸손해야 하는 거야.”라는 엄마의 말에, 머쓱했는지 쌩하니 돌아서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저녁도 먹고 들어왔겠다, 낮잠도 조금밖에 못 잤겠다, 오늘은 간단히 씻고 자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남편과 굿나잇 인사도 못하고 '정말' 잠들어버렸다.  





Epilogue

태풍이 쓸고 간 마당에는 찢긴 나뭇잎과 어디선가 날아왔을 쓰레기들이 정신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쓸어야지' 했는데 정신없이 나갔고, '쓸어야지' 했는데 오늘도 정신없이 나갔다.
그런데, 오늘 귀가하고 나니 마당이 깨끗이 정리되어 있다.     

분명 쥔장님 부부 중 한 분이 치우셨겠지.
아.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오늘의 가계부}
우유부단 1.5만 원(성이시돌 우유 3개 +시그니처 밀크티 +아이스크림)
왕서방 식당 삼선간짜장 7.5천 원



Today's meal     

-조식: 어묵국 +김밥 

-중식: 우유 +아이스크림  

-석식: 삼선간짜장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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