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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Sep 11. 2017

아빠를 환영해요.

21. <기저귀 차고 제주 한 달> 2주 차




새벽에 아이가 굴러서 나에게 오는데 윗도리가 척척하다. 기저귀가 샌 모양이다. 다행히 침대커버 밑에 방수요를 깔아놓기는 했지만, 아이 옷과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그러고 나니 잠이 깨버렸다. 


오늘은 남편이 오는 날이라 그런지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론 오늘의 동선을 어떻게 짜야할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우선은 어제 윗집 이모가 준 힌트처럼 웰컴 피켓을 하나 만들기로 하고, 날씨를 봐서 노루나 양을 보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면 될 것 같았다. 대강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잠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우유를 이불에 쏟았다는 아이의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정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엄마를 깨운다. 


수건으로 얼른 닦고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간밤에 쉬를 해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전했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가, “쉬 한 거 아닌데. 우유 쏟은 건데.”라며 항변한다. 이런 꼬마 녀석도 자기가 한 실수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물론 새벽에 일어난 일은 잠이 깨지 않은 상태라 기억이 없어서이겠지만, 설명을 해줘도 아니란다. 우유란다. 저녁에 돌아와서도 빨아놓은 침대커버를 씌우는데도 우유라고 하니 그래, 어젯밤 일은 비밀로 하자.  




비 예보가 있는 날이라 가급적 빨리 움직이는 게 낫겠다 싶어, 아침은 어제 먹다 남은 김밥과 어묵국으로 가볍게 먹었다. 먹으면서 웰컴 피켓(일명, 아빠 환영해요 그림)을 만드니 생각보다 출발시간이 빨라졌다. 


아이는 ‘아빠 환영해요 그림’에 이것저것 추가하라고 주문이 많았다. 고양이에 해녀 이모에 하르방까지. 



스케치북을 가방에 챙겨 넣고 아이 옷만 입으면 되는데, 밖은 이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냥 도서관으로 갈까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탐라도서관에 가볼 계획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금요일은 휴관일이라서 열람과 대출은 안 된다고 한다.(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건 되는 모양이다. 휴관일에도 근무자가 있고, 독서실 이용은 가능하다는 것도 특이하다.) 


그럼 조금 멀지만 차선책으로 제주기적의도서관 휴관일을 물었더니 월요일이라 하기에 거기로 가는 걸로 정했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은 공공도서관이라 해도 휴관일이 다르다는 것. 이용자 입장에서는 휴관일을 피해 다른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으니 좋을 것 같다. 


통화를 마치고 나니 비가 그쳐 있다. 역시 제주의 날씨는 정말 오락가락. 예보 상 지금 시간에는 구름만 끼고, 있다가 오후 3시쯤 되어야 비가 온다고 했는데, 역시 닥쳐봐야 알 수가 있다. 특히 한라산 근처에서는 변동이 더욱 심해 예측이 더욱 어렵다. 그러면 일단은 원래 계획대로 노루공원에 가서 우산 쓰고 보고, 비가 정 많이 오면 도서관으로 향하기로 했다. 




집에서의 거리는 30㎞ 정도인데, 시내를 관통해서 가다 보니 차가 많이 밀렸다. 중앙로 일대는 초록 신호 한 번에 통과하는 차가 몇 대 안될 정도였다. 금요일 오전 시간에 이럴 정도이니 출퇴근 시간은 얼마나 심할까 싶다. 차선은 적고, 도로는 좁고, 차량은 많고. 아무리 집값을 높게 쳐준대도 이런 곳에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느니 차라리 길 넓고, 교통편 다양하고, 편의시설 많은 서울에서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즈음, 한적한 산길로 들어선다. 


방금 했던 생각은 어디에 가고, ‘이래서 제주에 사는 거지’ 싶은 멋진 도로가 나타났다. 


비를 맞은 나무들이 마음껏 초록을 발하고,
구름 모자를 걸쳐 쓴 산이 자신의 운치를 자랑하는 곳. 


차도 없고, 공기는 상쾌하고 너무 좋아서 “겸아, 엄마는 이런 길이 너무 좋아.”라고 말하는데 아이가 대답이 없다. 고지를 3분 앞두고 잠이 든 모양이다. 큰 목소리로 부르니, “엄마, 난나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떴어요.”라며 일어났다. 





노루생태관찰원. 

성인은 입장료 1천 원, 아이는 무료이다. 그 밖에 먹이주기 체험은 1천 원, 노루 모형 만들기 체험은 3천 원인데 글루건을 사용하는지라 포기하고, 먹이주기 체험만 하기로 했다. 



입장권 사진을 찍고, 매표소 바로 왼쪽 ‘관찰로’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입장권을 보여주면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를 주는데, 내 입장권이 보이지 않았다. 사진 찍고 바로 가방에 넣은 것 같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사정을 얘기하고 영수증을 보여주니 다행히 인정을 해주셔서 나뭇가지 하나를 받게 되었다. 



울타리는 겸이 키 높이 정도 되는데, 울타리 사이로 먹이를 주어도 되고, 울타리 중간중간에 나무 발판이 있어 그걸 밟고 서면 겸이 머리 하나 올라올 정도의 높이가 된다. 엄마가 안고서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되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혹시 놀라거나 무서워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동물 먹이주기를 하기 전에는 동물과 인사를 시킨다. 

“사슴아 안녕. 난 겸이야. 만나서 반가워.”라고 시키니 얼추 따라서 말한다. 


노루와 사슴, 고라니는 제각기 이름이 있는 만큼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굳이 그것을 설명해 줄 단계는 아니기에 아이가 알고 있는 단어로 사슴이라고 표현했다. 사슴에게 노래를 불러주라고 하니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라며 노래를 부른다. 이제 준비운동(?)도 했고 줄기를 하나 따서 손에 쥐어주니 서슴지 않고 울타리 너머로 먹이를 건넨다. 



온순한 동물이어서 그런지 얌전하게 잘 받아먹으니 아이도 신이 났다. 처음엔 내가 줄기를 떼어서 아이 손에 쥐어 주었는데, 내가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는 사이 이제는 아이가 직접 줄기를 떼어 노루에게 건네준다. 



줄기를 입에 문 노루는 신기하게도 잎사귀는 입안으로 넣고, 줄기 부분은 딱 끊어서 뱉어냈다. 잎사귀를 씹으면서 되새김질을 하는지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먹는데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엄마, 사슴이 고맙다고 인사를 해요.”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우리에게 할당된 먹이가 다 소진이 되고 나서 우리는 관찰로를 조금 걸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이 많이 없기에 돌아 나와서 노루생태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나무로 만든 커다란 노루 한 마리가 버티고 서 있는데, 그 모습과 질감이 이중섭의 황소를 떠올리게 했다. 



안에서는 노루 만들기 체험에 쓰일 나무재료를 다듬고 계셨고,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니 박제된 노루와 노루뼈 등이 우리를 맞았다. 귀여운 동물이라 그런지 박제 모형과 노루뼈도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더 안으로 들어가니 노루에 관한 설명판과 노루뿔 만들기, 도장 찍기 등 체험용 작은 부스가 있었고 ‘은혜를 갚은 노루’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상영하기도 했다. 동영상에 굶주린 우리 아이는 그 영상을 3번을 연속해서 보고는 그 자리를 뜰 수 있었는데 그래도 미련이 남는지 계속 그곳에만 머물려고 했다. 




그 외에도 노루의 울음소리나 짝짓기에 관한 소리를 듣고 영상을 볼 수 있는 시설도 있었고, 노루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는데 너무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특히 입을 맞추듯 코를 맞대고 있는 사진은 나로 하여금 한참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주차장으로 오니 벌써 시간이 2시가 다 되어간다. 공항까지는 약 40분 정도 걸리는데, 3시 도착 비행기니 바로 이동해야 계획대로 웰컴 피켓을 들고 아빠를 맞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점심을 걸러야 했기에 이 곳으로 올 때 봤던 식당에서 얼른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아까 올라올 때는 그리 경사진 줄 몰랐는데 내려가는 길은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아도 엄청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본래의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생이소리’라는 향토음식점 간판을 보고 거기로 들어갔다. 바로 옆에 비슷한 메뉴의 음식점이 있었는데 거기엔 활발한 백구 두 마리가 폴짝거리고 있었고, 이 곳엔 아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터가 있었다. 아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곳으로 뛰어가 비에 젖은 자전거에 앉았다. 



본래는 전복뚝배기를 먹을 심산이었는데 아주머니 설명으로는 칼칼한 맛이 꽤 강한 모양이다. 아직 매운 걸 못 먹는 아이 때문에 잠시 고민했더니 아이는 따로 먹을 만한 걸 줄 테니 그걸 주문하라고 하신다. 생선구이나 조림 등은 2인 이상 주문 가능한 메뉴인데 제주에는 그런 곳이 많아 1인 여행자는 말솜씨가 아주 좋거나 돈을 더 쓰지 않으면 맛보지 못하는 요리가 많다는 것은 참 아쉽다. 


깔끔한 밑반찬이 깔리고 드디어 전복뚝배기가 나왔다. 그리고 따로 챙겨주신다는 아이 음식은 다른 아닌 성게알 미역국이었다. 감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곳에서 1만 원의 메뉴로 판매하고 있는 것인 데다 한 대접 가득 그리고 성게알도 듬뿍 얹어주셨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반찬 하나하나 깔끔하고 맛이 좋다. 



메인 메뉴인 전복뚝배기는 크지 않지만 전복이 6미가 들어가 있고, 조개와 홍합이 들어가고 꽤 칼칼한 것이 해장하기에 딱 좋을 정도이다. 제주 올 때마다 해물뚝배기 같은 국물요리는 꼭 한 번 먹는데, 모든 집이 맛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주로 애월에 있는 ‘그마니네’라는 곳에서 뚝배기를 먹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마니네’보다 더 칼칼하고, 반찬도 더 많고, 더 저렴하고 맛도 좋다. 거기에 인심까지 좋으시니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다행히 아이도 한 그릇 뚝딱. 나보다 밥을 더 많이 먹었다. 다음에 절물휴양림에 오게 되면 다시 한번 들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차에 올랐다. 집에서 가까우면 당장이라도 또 가겠다고 말하겠지만, 그 교통난을 뚫고 찾아갈 자신은 없었다. 아무튼 공항으로 가는 길은 다행히 아까보다는 막히지 않았다. 




공항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3시. 제주공항 사정으로 비행기가 25분 정도 지연 출발했다고 하니 도착도 딜레이 될 터라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국내선 도착장으로 갔다. 렌터카 주차장에서 바로 공항으로 들어가면 국제선 도착장이라 국내선 도착장까지는 조금 걸어야 했다. 3시 15분인데 아직 도착 전이다. 


스케치북을 꺼내서 아빠한테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잠깐 연습을 했는데, 아빠가 나오지 않으니 점점 지치는 기색이다. 


기둥에 걸터앉아 스케치북을 들고 여닫히는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아빠가 나온다. 아이는 손에 든 걸 깜빡하고는 아빠에게 안겨버린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할머니가 "이거 아빠 보여줘야지"라고 말씀해주셨고, 그제야 얼른 아빠에게 보여주었다. 



“이런 걸 언제 준비했어.”


라며 생각보다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아빠. 


아마 아들을 만난 게 더 반가워서였으리라. 가족이 다 모였는데, 부대시설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 마음을 알기에 서운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아이를 안고 부비느라 정신이 없다. 약속대로 아이에게 새우과자를 하나 사주고는 주차장으로 왔다. 


차에 타면 아이는 바로 잠들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집으로 와야 할지 제주시에 나온 김에 어디라도 들러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가 공항에서 가까운 이호테우를 떠올렸다. 항상 공항에 올 때마다 한 번씩 들러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빠듯한 비행기 시간 때문에 매번 못 갔던 곳. 흐리기는 하지만, 비는 안 오고, 이 곳은 일몰이 예쁜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시간상으로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운전대는 내가 잡았다. 남편 마중을 위해 나왔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남편은 아이 옆에 타면서 “잘 부탁해요.”라고 인사했다. 예상대로 아이는 금방 잠들었고, 이호테우에 도착해서 유모차에 아이를 옮겨 태웠다. 




해변으로 들어서는 순간, 기대했던 모습이 아님에 우리는 잠시 실망했다. 제주의 바다는 맑은 푸르름, 청명함이 있는 그런 모습이어야 하는데 주변에는 음식점이 늘어서 있고 태풍 후 잔해들이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을 연상시켰다. 단순히 공항에서 가깝다고 해서 추천하는 해변은 아니었을진대, 아직 저녁노을이 지지 않아서 일까 하는 생각으로 방파제 쪽으로 향했다. 


말의 고장답게 등대도 말 모양이다. 방파제 쪽으로 걸어가니 과연 이쪽이 장관이다. 오른편에는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고, 거기에 카라반들이 자리 잡고 있다. 바다를 마주한 카라반 캠핑은 어떤 느낌일까. 앞에 근사한 말 등대도 있겠다, 석양이 내리깔리면 정말 멋질 것 같았다. 



비가 온 데다 비구름이 잔뜩 끼어 저녁노을은 볼 수 없었지만, 방파제에 앉아서 맛보는 커피는 그 분위기와 더불어 나로 하여금 어떤 CF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커피는 캠핑장 쪽 ‘요리하는 점빵’이라는 푸드트럭에서 남편이 사 온 것인데, 남편이 찍어온 사진을 보니 음료는 사이드 메뉴인 듯하고, 파스타나 샌드위치 같은 것을 주로 파는 듯했다. 요즘 핫하다는 쉬림프박스 푸드트럭처럼 항상 한 곳에 있는 것은 아니고, 때에 따라 자리를 옮겨서 장사한다고 하는데, 그런 삶도 나름 멋스러워 보였다. 남편이 사진으로 보여준 음식이 맛깔나 보여 사다 먹을까도 고민했지만, 아이도 이미 깨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그냥 차로 돌아가기로 했다. 





저녁식사 장소로 정한 곳은 예전에 제주시 쪽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가볼 곳으로 점찍어 둔 갈비집이었다. 관광객은 없고 도민들만 주로 찾는 식당으로 도로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직원들이 고기를 구워주거나 깔끔한 인테리어로 무장된 그런 곳은 아니고, 정말 동네 식당이다. 메뉴판을 보니 양념갈비와 생갈비 그리고 냉면이 전부이다. 



우선 양념갈비를 먼저 먹고 여의케 되면 생갈비를 먹기로 했다. 보통은 양념이 되지 않은 고기를 먼저 먹고 후에 양념고기를 먹지만, 혹시나 배가 불러서 양념갈비를 먹지 못하게 될까 봐 나온 일종의 고육책이었다. 


예상대로 고기는 많았다. 그나마 우리는 2인분이니 망정이니 다른 4인 가족의 경우 그야말로 고기산이었다. 



우리가 일반 갈빗집에서 2인분 주문했을 때 담겨 나오는 양은 주먹만 한 덩어리 2개이다. 나올 때부터 ‘에게게!’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먹다 보면 인원수보다 항상 추가로 주문해야 하는 그런 집들과는 상반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1인분 정량이 국물을 포함하여 200g이나 250g인데 비해, 이 집은 340g인 것이다. 국물을 빼고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반근’의 양을 먹는데 웬만한 대식가 아니고서는 '배가 차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1인분의 양을 늘려서 값을 비싸게 책정한 것도 아니다. 1인분 가격이 1만 4천 원으로 정말 저렴하다.(가끔 1만 원 이하의 프랜차이즈도 있긴 하지만 양과 질을 고려했을 때 비교할 만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고기의 질을 문제 삼을 수 있는데, 우선은 100% 제주산에다 캬라멜 소스 같은 것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적당히 단 맛에 두툼하게 씹히는 고기가 정말 부드럽고 맛있었다. 우리 아이가 맛을 보고는 고기가 채 구워지기 전에 또 달라고 성화했던 음식은 처음이었다. 


특히나 통멸젓에 찍어먹으면 그 맛이 정말 일품이다. 멸젓 자체가 주는 고소함도 있지만, 양념육의 맛을 해치지 않고 조화로운 것이 좋았다. 보통은 흑돼지구이처럼 생고기구이에만 찍어먹는 줄 알았는데, 이 곳에 와보니 괜히 그런 게 아니구나 싶다. 





고기를 거의 다 먹어갈 즈음, 커다란 뚝배기에 된장찌개가 나왔다. 옆 테이블은 공기밥을 시켜서 그렇다 치고 우리에게는 잘못 주는 건가 싶어서 물어보니 서비스란다. 여기에서 또 한 번 감동. 


일반적으로는 공기밥을 시켜야 된장찌개가 따라 나오고, 게다가 아주 귀여운 사이즈의 뚝배기에 나오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에서는 다른 업소에서는 판매품목으로 칠 만한 커다란 뚝배기에, 그것도 서비스로 나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안에는 각종 야채와 딱새우 등 제대로 된 된장찌개이다. 깔린 반찬만 해도 서운치 않게 제공되었는데, 모든 음식의 양과 질 모두 만족이다. 



그렇게 세 명이 마지막까지 잘 먹었는데도 2인분 먹고 배가 불러버렸다. 아쉽게도 생갈비는 더 먹을 수 없었지만, 남편 있을 때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남편은 제주에 아내가 있으니 이런 도민 맛집도 소개해주고, 운전이 가능해져서 고기와 함께 술도 먹을 수 있으니 참 좋다는 농담을 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잘 있어주니 너무 고맙다는 진심도 전했다. 


그동안은 내가 운전을 못해서 가족이 고기를 먹을 때 술을 곁들여 마시는 일은 남편에겐 요원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 방문한 손님을 대접하는 기분으로 집까지 운전해서 왔다. 


가족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꽉 찬 느낌'을 선사한다는 남편의 말을 들으니 안쓰러운 마음이 생겨났다. 

오늘 밤은 꽉 찬 밤을 보냅시다. 


우리의 재회를 자축하며! 우유 한 잔 건배!






Epilogue

집에 들어오는데 윗집 이모가 밤 한 봉지를 들고 내려오신다. 시댁에서 보내준 밤이라는데, 아마 우리집 불이 꺼져있으니 기다렸다가 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내려오신 것일 테다.

주시는 것도 항상 감사하지만, 이렇게 좋은 이웃과 인연이 된 사실에 무한 감사하다. 돌아가기 전에 나도 무언가로 보답하고 싶은데, 우선은 집을 깨끗이 사용하는 것부터 잘 지켜야 미안한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늘의 가계부}
노루생태관찰원 2천 원(입장료 성인 1천 원 +먹이주기 1천 원)
생이소리 전복뚝배기 1.3만 원
공항편의점 아이과자 약 4천 원
공항 주차료 1400원(약 1시간)
이호테우해변 커피 트럭 '요리하는 점빵' 7천 원
평산숯불갈비 3.2만 원(양념갈비 1.4천 원 * 2인분 +맥주 1병)




Today's meal     

-조식: 어묵국 +김밥 

-중식: (엄마) 전복뚝배기, (아이) 성게알 미역국  

-석식: 돼지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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