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아침의 눈인사, 그리고 밤의 경외: 후지산

시즈오카 4박 5일

by 턱시도 Tuxedo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열었다.

호텔 방 창문 너머로 흰 눈을 뒤집어쓴 후지산이 또렷하게 보였다. 이렇게 깨끗하게 모습을 드러낸 후지산을 아침에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다. 오늘 하루의 시작이 이미 정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차를 몰아 먼저 향한 곳은 니혼다이라. 이곳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신 신사인 구노잔 도쇼구가 있다.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화려한 장식의 신사를 바라보고 있으면, 전국시대를 끝낸 권력자의 마지막 이야기가 아직도 이 산 위에 남아 있는 듯하다.

바로 옆에는 현대 건축물이 하나 서 있다.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설계한 니혼다이라 유메 테라스다. 목재 구조가 부드럽게 겹쳐 올라간 건물 위에 서면 스루가 만과 후지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통과 현대가 묘하게 같은 공간에 놓여 있었다.

이후 바닷가 쪽으로 차를 몰았다.

목적지는 미호노마쓰바라. 바다 건너로 후지산이 보이는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구름이 산을 가리고 있었다. 바다와 소나무 숲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정작 주인공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근처의 후지산 세계유산센터에 들렀다. 후지산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사람들이 이 산을 어떻게 바라봐 왔는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한 산을 둘러싼 이야기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전시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조금 인상적이었다.

오후에는 후지산 서쪽으로 이동했다.

숲길 끝에서 만난 것은 시라이토 폭포였다. 절벽에서 수없이 많은 물줄기가 실처럼 흘러내린다. 이름 그대로 ‘하얀 실’ 같은 폭포였다. 일본의 폭포 가운데에서도 독특한 풍경을 가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해가 조금씩 기울 무렵, 차는 가와구치호 쪽으로 향했다. 오늘 밤은 이 호수 근처에서 묵기로 했다.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고개를 들었을 때, 창밖에는 다시 후지산이 있었다. 낮에 보았던 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후지산은 아름답다기보다 오히려 조금 두렵게 느껴질 정도로 거대했다.

아마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이 산을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신성한 존재처럼 바라봐 왔던 이유가.

내일 아침, 이 산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턱시도의 여행수첩

후지산과 세계유산

후지산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높이는 약 3,776m로 알려져 있다. 이 산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다만 등재 방식이 흥미롭다. 후지산은 자연유산이 아니라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자연경관 때문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후지산을 신앙과 예술의 대상으로 바라봐 왔다는 점이 평가된 결과라고 알려져 있다.

에도 시대에는 ‘후지코(富士講)’라는 신앙 집단이 형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후지산에 오르는 것을 종교적 수행처럼 여겼다. 또한 일본 회화와 문학에서도 후지산은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후지산은 단순히 높은 산이 아니라 일본 문화 속에 깊이 자리한 산이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오늘 하루 동안 이 산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봤지만, 아마 내일 또 다른 모습의 후지산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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