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오카 4박 5일
아침에 다시 커튼을 열었다.
어제보다 더 또렷한 풍경이 창밖에 펼쳐져 있었다. 흰 눈을 덮은 후지산이 아침 햇빛을 받아 선명하게 서 있었다. 마치 오늘 여행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분명히 말해주는 듯한 모습이다.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물 위로 올라오는 김 너머로 후지산이 그대로 보인다. 이런 풍경 앞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그저 조용히 바라보게 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먼저 들른 곳은 오이시 공원. 가와구치호 건너편으로 후지산을 바라보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호수 위로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웠지만 풍경은 그만큼 또렷했다.
이후 잠시 들른 곳은 오시노 핫카이. 후지산의 눈 녹은 물이 지하수를 이루어 솟아나는 연못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물은 믿기 어려울 만큼 맑았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이 물을 신성하게 여겨왔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그 후 차는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목적지는 이즈 반도. 산을 내려오면서 공기의 온도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반도의 남쪽 끝에 가까운 시모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계절이 달라진 듯했다. 아침에 있던 후지산 주변보다 공기가 훨씬 따뜻했다. 같은 현 안에서도 이렇게 기후가 달라지는 것이 흥미롭다.
이곳에서는 자연보다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1853년 이 항구에 나타났던 미국 해군 제독 매튜 페리이다. 이른바 ‘흑선’이라 불린 군함을 이끌고 일본에 개항을 요구했던 인물이다. 항구 주변을 잠시 걸으며 그 흔적들을 떠올려 보았다.
저녁이 되어 호텔에 들어왔다.
창밖에는 태평양이 그대로 펼쳐져 있다. 파도는 일정한 리듬으로 해안을 두드리고 있다. 후지산 주변의 산 공기와는 전혀 다른 바다의 밤이다.
이렇게 하루 사이에 산과 호수, 그리고 바다까지 지나왔다.
내일 아침에는 이 태평양의 바다가 어떤 색으로 보일까.
턱시도의 여행수첩
시모다와 흑선 내항
시모다는 일본 근대사의 중요한 장소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1853년 미국 해군 제독 매튜 페리가 이끄는 함대가 일본에 개항을 요구하며 나타난 이후, 일본은 서서히 외국과의 통상을 시작하게 된다.
이 사건은 흔히 **‘흑선 내항(黒船来航)’**이라고 불린다. 당시 일본은 에도 막부 아래에서 약 200년 가까이 대외 교류를 제한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페리 함대의 등장 이후 일본은 미국과 **가나가와 조약(1854)**을 체결하게 되며, 그 결과 시모다와 하코다테 등이 개항지로 지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오늘날 시모다는 단순한 해안 도시라기보다 일본이 근대 세계와 처음으로 마주한 항구 가운데 하나로 설명되기도 한다.
아마 내일은 이 항구의 또 다른 이야기를 조금 더 찾아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