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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크M Mar 15. 2021

'해진이형'은 왜 시원하게 연봉을 올려주지 못했을까

[FreeView]

#보상이 섭섭한 직원들


#글로벌을 보는 이해진


#3~5년 후를 지켜보자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이날 네이버의 창업자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일본에 있었다. 그는 2010년 네이버재팬 설립 이후 일본 시장 공략을 위해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10여 년의 노력에도 일본 시장의 문은 열리지 않았고, 지진으로 직원 절반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총괄(GIO) / 캐리커쳐 = 디미닛


여진의 공포가 계속되는 도쿄에 남아 끝까지 남은 개발진과 만든 서비스가 '라인'이었다. 라인은 거대한 자연재해를 겪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연결하며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았다. 토종 인터넷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첫 사례였다. 훗날 이 GIO는 라인 상장을 기념한 간담회에서 "절박함이 라인의 성공 비결"이라고 밝혔다. 국내시장은 너무 작아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외에서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절박함이 라인을 성장시킨 동력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2021년 3월 11일 이 GIO가 선 곳은 네이버 직원들 앞이었다. 평소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는 이 GIO는 이날 온라인 사내 행사(연단)를 열고 전사 임직원에게 향후 사업계획에 대해 입을 열었다. 연단은 이 GIO가 창업자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자리다. 그는 연단을 통해 다시 한 번 해외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번엔 일본보다 스케일을 키워 전(全) 아시아와 IT의 본고장 미국을 목표로 삼았다.


사상 최대 실적…보상을 원하는 직원들


/사진=네이버 제공


하지만 직원들의 관심사는 최근 IT업계에 불고 있는 고액 연봉 인상과 관련한 사측의 보상안에 쏠려 있었다. 네이버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특수를 맞아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성과급은 예년 수준으로 직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 최근 게임업체들이 잇따라 수백만원, 많게는 천만원 단위의 연봉 인상을 보상으로 제시하자 네이버 직원들은 더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 GIO를 비롯한 네이버 경영진은 지난달 25일 '컴패니언 데이'를 통해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등 장기적 성과에 초점을 맞춘 보상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해명을 내놨다. 허나 네이버 노조 측은 계속해서 성과급 지급 수치 공개와 개선 등을 요구하며 반발했다.


이후 다시 열린 연단에서도 이 GIO는 해외 사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GIO는 왜 보상을 요구하는 직원들에게 계속 사업 계획만 얘기하는 걸까. 그는 지난 12일 '연단후에'라는 제목의 전사 이메일을 통해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운명의 3월11일, 다시 한 번 '글로벌'을 말하다


후회되는 부분이 너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어제 제가 너무 '사업'에 포커스하려다 보니 지금 IT업계의 핫이슈인 '보상'에 대해서 피해가려 한 것 같은 인상을 혹시나 주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이해진 GIO 전사 이메일 중)


3월11일은 이 GIO 인생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그는 이날 임직원들에게 해외사업 계획을 밝히며 대지진 앞에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일본 사업을 계속해야 할 지 고민했던 순간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는 전사 이메일에 "어제가 하필 3/11 인지라 괜히 너무 감상적이 되어버린 것 같은 후회도 많다"고 전하기도 했다.

Z홀딩스 출범 후 야후재팬 메인 화면 / 사진 = 라인


이 GIO에게 지금은 너무나도 중요한 시점이다. 목숨을 걸고 성공시킨 일본 사업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의 합작사 'A홀딩스' 출범으로 아시아 최대 인터넷 기업을 향해 다시 한 번 거대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 GIO는 연단에서 "일본 시장에서 소프트뱅크와 합작 출범한 Z홀딩스는 일본 최대 인터넷 기업이 됐다"며 "기회를 살려 2027년까지 검색 50%, 온라인 커머스 50%를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선 한국 토종 콘텐츠 '웹툰'이 성공 가도를 달리는 중이다. 네이버는 올해 초 세계 최대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6600억원에 인수하며 네이버웹툰과의 시너지를 통해 미 본토를 공략할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여기에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한 팬 플랫폼 '위버스'까지 더해 세계 최대 무대에서 제대로 승부를 펼쳐보겠다는 게 이 GIO의 복안이었다.


이 GIO는 이 날 "한정된 기술과 기획 인력을 국내와 해외 중 어디에 집중시킬지 판단했을 때, 해외에 나가는 게 더 좋은 결정"이라며 "3∼5년 뒤 제가 하자고 했던 해외 사업이 망하면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라고 강하게 어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는 어디로 가는가


연단 시작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배가 어디로 가는지', '이 배를 탄 사람들이 후회가 없을지'의 문제, 즉 '사업'과 '보상'은 제가 20년 일해오면서 늘 가장 고민해온, 고민할 수밖에 없는 동전의 앞뒤면 같은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사업 없이 좋은 보상이 이뤄질리 없고 좋은 보상없이 좋은 사업이 지속될 수 없겠죠.(이해진 GIO 전사 이메일 중)


이 GIO가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방향'이다. 그는 전사 이메일에서  "보상은 2주 전에 대표님이 설명도 하셨고 1주 전에는 사원대표들과도 여러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기에 어제는 사업에 대해서 우리의 지금 위치와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서 포커스해보고 싶었다"며 "지금 세상이 다들 보상만 이야기할 때 우리는 우리 사업에 대해서 점검하고 고민 먼저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 = 네이버


글로벌 무대를 향해 아직 갈 길이 먼 이 GIO에게 지난해 코로나 특수로 이룬 성취는 어쩌면 직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은 의미였을지 모른다. 우리는 네이버를 국내 1위 '포털 공룡'이라 부르지만, 늘 글로벌 시장만 바라보는 이 GIO 눈에는 늘 한국 시장은 살아남기에 너무 작은 그릇으로만 보이나 보다. 이 GIO가 보기엔 네이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적어도 3~5년은 더 치열하게 달려야 한다.


이 GIO가 좋아하는 만화 중 '원피스'라는 만화가 있다. 해적왕을 꿈꾸는 '루피'라는 소년이 동료들을 모아 부·명성·힘을 하나로 엮는 보물 중의 보물 '원피스'를 찾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원피스를 꿈꾸는 이 GIO 입장에선 지금 항해하고 있는 곳에 배가 도착했을 땐 훨씬 큰 보상이 기다릴텐데, 벌써 배 안에 실은 과실부터 나누자는 건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내놓은 보상 방안이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이었다.


'통큰 해진이형' 못될지언정 일괄 보상은 어렵다


특히 이 GIO는 최근 게임사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진 IT업계 연봉 인상 바람이 '일괄 보상'으로 흐르고 있음을 견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의 사업은 검색 등 전통적인 IT 영역 뿐만 아니라 커머스, 콘텐츠, 금융까지 훨씬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국경 없는 인터넷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 직원들 모두가 스스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게 '강한 동료'를 원하는 이 GIO의 생각이다.


앞서 동종 업계의 김범수 카카오 의장 역시 직원들 앞에서 "전 자본주의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회사는 결국 N분의 1로 갈 수는 없고, 차등의 차이가 얼마나 나야할지에 대한 점은 회사의 시스템이나 회사의 방향성에 따라 갈리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왼쪽)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 캐리커쳐 = 디미닛


이 부분에 대해 이 GIO 역시 전사 이메일에서 "지금 업계의 보상 경쟁은 IT업계 인력의 보상 수준을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각 회사마다 회사의 사업의 변화나 방향에 대한 충분한 설명없이 서로 너무 급하게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 후유증이 염려되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이 GIO도 일괄 연봉 인상안을 발표하자마자 기사 타이틀에 '통큰 택진이형'으로 도배시킨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처럼, 한 번 쯤 '통큰 해진이형'으로 불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나보다. 이 GIO는 이메일에 "솔직히 저도 뭐 이 회사를 떠나기 전에 '해진이 형이 쏜다' 뭐 이런 거 한번 해서 여러분에게 칭찬받고 사랑받고 하는 거 함 해보고 싶긴 하다"고 전했며 "많은 고민과 작업이 이뤄지고 있고 시간이 조금 걸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누가 끝까지 배에 남을 것인가


우리 경영진과 스탭(스태프)을 믿어주세요. 그리고 암튼 사업이 더 커지고 더 잘되어야 타사와의 보상 싸움에서 최종 승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진 GIO 전사 이메일 중)


이 GIO가 해외 사업이 안되면 책임지고 물러난다고 배수의 진을 칠 만큼 앞으로 네이버는 향후 3~5년이 결정적인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좁은 한국 땅의 이름 뿐인 '포털 공룡'으로 남을지, 아니면 구글-페이스북, 텐센트-알리바바 등 미·중 거대 IT 플랫폼의 '인터넷 제국주의'에 맞설 진짜 '용'이 될 지가 이 시간에 달려있다. 이 GIO는 이 시간을 바라보고 지난 10년 차곡차곡 준비를 해왔다.


이 GIO는 라인과 야후재팬의 통합법인 A홀딩스의 경영을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다시 대표직으로 돌아가 글로벌 무대에서 승부를 건다. 이번에도 아마 목숨을 건 수준의 도전이 되지 않을까. 마지막에 웃을 자는 지금 보상을 받은 사람일지, 무모한 꿈을 향해 함께 배에 탄 사람일지, 5년 뒤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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