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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크M Apr 06. 2021

반도체가 부족하다던데, 삼성은 괜찮은거냐

[테크M 오리지널]

#삼성의 라이벌들#
1화. 숙적 TSMC와 돌아온 인텔

"그래서 삼성은 괜찮은 거냐"

아버지는 오랜만에 본 아들보다 삼성 걱정이 먼저다. 혹자는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일이 삼성 걱정'이라 하지만, 삼성의 성장을 지켜보며 산업화 시대를 걸어온 아버지 세대에겐 '삼성 걱정이 곧 나라 걱정'이다. 전후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꼽히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세계 '1등'이란 자부심을 심어 준 삼성이 흔들린다는 건 곧 세계 경제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의미로 비춰지는 모양이다.


이런 '삼성 걱정'을 기성세대의 노파심 만으로 볼 순 없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소액주주 수는 215만3969명에 달했다. 2019년 말 기준 56만8313명과 비교해 4배 가량 늘어난 수치다. 코로나19로 경제 위기가 닥쳐오자 '삼성 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희망을 걸고 투자한 사람이 그만큼 늘어났단 얘기다. 지난 3월17일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는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까지 900여 명의 주주가 몰려 삼성의 미래를 함께 '걱정'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삼성전자 주주총회 / 사진 = 삼성전자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사협의회가 2020년 12월 결산 상장사 실적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 597개사 매출은 1961조763억원으로 3.2% 줄었고, 영업이익은 107조4072억원으로 3.2% 늘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빼고 계산하면 매출 감소 폭은 4.53%로 더 커지고, 영업이익은 6.41% 감소세로 돌아선다. 국내 경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압도적 비중을 확인할 수 있는 결과다.


뼈 아픈 총수 부재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236조8070억원, 영업이익 35조9939억원을 달성했다. 매출은 1년 전보다 2.78% 늘었고, 영업이익은 29.62% 증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 경제 상황이 최악의 위기였음을 고려하면 크게 선방한 실적이다. 이 정도면 삼성은 걱정 안 해도 알아서 잘 하려니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의 물음에 '괜찮다, 걱정 안 하셔도 된다'라고 답하기엔 삼성이 놓인 상황이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는 현재 '총수 부재'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에 놓여있다. 가장 걱정되는 건 삼성의 간판인 반도체 사업이다. 반도체야 말로 오너 중심의 강력한 리더십과 결단력이라는 삼성 특유의 경영 방식이 빛을 본 대표적인 사업군이다.

경기 평택에 위치한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 = 삼성전자

1974년 고(故)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산업의 가능성을 포착하고 사제를 털어 파산 직전인 한국반도체를 인수했고, 1983년 호암 이병철 회장은 사내 안팎의 전문가들은 물론 청와대조차 말렸던 반도체 사업을 과감히 밀어붙이며 오늘날 대한민국 수출의 20% 가까이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을 일궈냈다. 이후 삼성은 위기 때마다 과감한 투자와 기술개발로 '초격차'를 만들어내며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자리를 지켜왔다. 이런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워진 총수 부재 상황은 사업적으로 삼성에 '악재'임에 틀림없다.


'반도체 비전 2030' 실현 비상


지난 2019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며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도 글로벌 1위를 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선대의 업적을 발판으로 더 큰 시장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이 부회장의 '승어부'(勝於父·아버지보다 나음) 프로젝트인 셈이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반도체보다 2배 이상 크고, 5세대(5G) 이동통신, 고성능 컴퓨팅(HPC),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 발전에 따라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25년 383조원 규모로 성장이 전망되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승부를 내기 위해 2030년까지 연구개발과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경기도 평택시 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증설 현장 모습. /사진 = 삼성전자

하지만 현재 삼성은 총수 부재로 투자 동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황이다. 시스템 반도체는 각종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와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해주는 '파운드리' 등으로 분업화가 이뤄져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와 제조, 판매를 포괄하는 종합 반도체 회사(IDM)에 속한다.


삼성은 팹리스 분야에서 퀄컴(AP), 소니(이미지 센서) 등과 경쟁하고 있으며, 차량용 반도체와 신경망처리장치(NPU)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시장에선 해당 분야의 경쟁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위한 대형 인수합병(M&A) 소식을 기대하고 있고, 삼성 측도 이에 대한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


숙적 TSMC의 천문학적 투자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의 핵심은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를 제치고 1위를 달성하는 데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파운드리 기업 매출은 전년 대비 23.7% 증가한 846억달러(약 92조원)에 달했다. 올해도 전년보다 6% 성장해 897억달러(약 97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시장 규모 측면에서 파운드리는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인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 통신칩 등의 규모를 이미 크게 추월했다.


이 시장에서 삼성이 경쟁하고 있는 라이벌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절대 강자다. 삼성은 약 17%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TSMC와 격차가 큰 상황이다. 삼성이 목표한 시스템 반도체 1위를 달성하기 위해선 TSMC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TSMC 소개 이미지 /사진=디미닛 제공


TSMC는 이전까지 애플 '아이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삼성이 독점 생산하던 구도를 깨고 2014년 '아이폰7'의 AP 생산을 뺏어오며 본격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애플은 현재도 TSMC의 가장 큰 고객으로, 자사가 설계한 모든 칩 제품을 모두 TSMC를 통해 생산한다. 이후 퀄컴, 엔비디아, AMD 등 유력 IT회사들을 주요 고객으로 유치한 TSMC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확보하게 됐다.


외신들은 대만에 지진이나 화재 등 재난이 발생하면 총통부를 제치고 TSMC부터 챙긴다. 엔비디아의 젠슨황 CEO가 "플랜 B는 없다. 모든 것이 TSMC의 어깨 위에 있다"고 말할 정도로 TSMC는 국제적으로 반도체 생산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이다. 올해 반도체 부족으로 심각한 생산 차질을 겪고 있는 미국 제너럴 모터스(GM)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일본, 독일 정부도 대만 정부를 독촉하며 TSMC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 사진 = TSMC


특히 TSMC는 파운드리 사업 모델의 창시자이자 회사를 글로벌 굴지의 기업으로 키운 창업주 모리스 창 전(前) 회장 중심의 안정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과감한 투자로 삼성의 추격을 번번이 따돌리고 있다. 파운드리와 함께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이루는 팹리스, 패키징 등 연관 산업군 경쟁력에서도 대만은 한국을 크게 상회한다. 삼성전자가 TSMC와 경쟁하는 것을 두고 '대만 전체와 싸운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 TSMC는 올해 최대 280억달러(약 32조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 자본지출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향후 3년간 1000억달러(약 113조원)라는 천문학적인 투자 계획을 또 다시 발표했다. 이는 앞으로도 매년 30조원 이상을 쏟아붓겠다는 얘기로, 시스템 반도체 시장 1위를 위해 필수적으로 넘어야 할 산인 TSMC의 이 같은 과감한 행보에 선장 없는 삼성전자의 부담감은 더 커지고 있다.


혼돈의 파운드리 시장, 선장 없는 삼성의 운명은


최근 파운드리 시장은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으로 말미암아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국 정부가 일제히 반도체 자립화를 추진하며 다시금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TSMC, 삼성과의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며 무너져가던 '반도체 왕국' 인텔도 최근 팻 겔싱어 신임 CEO 취임과 함께 바이든 정부를 등에 엎고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파운드리 사업에 재차 뛰어들었다. 삼성 입장에선 강력한 라이벌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인텔 Ocotillo 캠퍼스 / 사진 = 인텔


현재까진 기술력으로 TSMC에 대항할 수 있는 회사는 7나노 이하 미세공정에서 유일하게 경쟁 중인 삼성전자 밖에 없다. 인텔은 10나노 이하 공정에서 기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기술 격차 해소에 2~3년은 걸릴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는 생산 규모에선 TSMC에 밀려도 기술력에선 자신있다는 입장이다.


생산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반도체 성능은 높아지고 소비전력은 낮아진다. 최근 클라우드, AI, 5G 등의 기술 발전으로 처리해야 할 데이터 처리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IT기업들은 더 미세한 공정의 제품을 원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TSMC는 5나노 초미세공정까지 양산에 들어간 상태로, 3나노 기술 개발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삼성은 3나노에서 신공정 'GAA(Gate-All-Around)'을 도입해 역전을 노린다는 계획이다.


선단 기술 경쟁 이후에는 '규모의 경제' 싸움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현지 반도체 공장 신·증설을 위해 미국 텍사스와 뉴욕, 애리조나 등을 대상으로 170억달러(약 19조) 규모의 파운드리 투자를 검토하며 주 당국과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이미 TSMC는 한 발 앞서 지난해 360억달러(약 40조원)를 투자해 미국 애니조나주에 공장 6개를 설립하는 계획을 확정했다.

/ 사진 = 인텔


이런 최근 상황은 다소 삼성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파운드리 진출 발표와 함께 단숨에 '3강' 후보로 부상한 인텔이 바이든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자국 내 수요를 흡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인텔이 기술력을 끌어올릴 때까지 TSMC에 외주 물량을 맡기며 밀월 관계를 이어갈 가능성도 점쳐진다. 수요 측면에서 설비 투자에 변수가 많아진 셈이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도 변수다. 미국 백악관은 오는 12일 국가안보 보좌관 주관으로 최근 반도체 수급 대란과 관련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초청, 해결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 중엔 삼성전자가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가 미국 내 반도체 생산기지 유치와 반중(反中) 반도체 동맹의 출발점이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삼성 입장에선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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