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 활성화와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으로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중국과 스웨덴이 CBDC를 도입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고,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CBDC 도입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도 한국은행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CBDC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지난 5월 한국은행은 'CBDC 모의실험 연구 용역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 공고 안내'를 내고 민간업체와 함께 CBDC 모의실험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12일 마감되는 이번 모의실험 연구 용역 입찰에 이미 참여 의사를 밝힌 네이버 라인과 카카오 그라운드X는 물론 ▲삼성SDS ▲LG CNS ▲SK C&C 등도 참여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빈 서강대 지능형 블록체인 연구센터 교수는 "대기업들이 CBDC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월렛 전쟁과 기선제압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연구과제이긴 하지만 한국은행이라고 하는 중앙은행에서 하는 블록체인 사업인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CBDC 모의실험 사업비는 50억원으로 금액만 놓고 봤을 땐 ▲네이버 ▲카카오 ▲삼성 ▲LG ▲SK 같은 대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업을 통해 사업경험을 쌓을 수 있음은 물론, CBDC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돼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국내의 내로라 하는 기업들이 달려드는 CBDC는 도대체 무엇일까? 코린이 기자와 함께 테크 기업이 목매는 CBDC에 대해 알아보자
CBDC는 말 그대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다. 더 구체적으로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 현금과 동등한 지위를 같은 전자적 형태의 화폐다. 보통 우리가 디지털화폐로 알고 있는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발행한 토큰과 달리 중앙은행에서 그 가치를 보증한다. 또 가격변동성이 큰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토큰과 달리 CBDC는 스테이블코인처럼 가치가 고정돼 있다. 정부가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인 셈이다.
또 발행량이 고정돼 있는 토큰들과 달리 CBDC는 발행량이 정해져 있지 않다. CBDC와 토큰 모두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지만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CBDC가 주목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CBDC를 연구하고 발행하는 가장 큰 이유로 '중앙은행의 화폐주권 보호'가 꼽힌다. 민간이 발행한 디지털화페를 사용하고 중앙은행의 법정화폐를 사용하지 않게 되면 중앙은행은 화폐발행자의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민간기업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넘었다. 이에 한국은행은 지난달 30일 '스테이블코인 규제 동향과 중앙은행 역할 연구' 용역 입찰 공고를 냈다. 중앙은행 입장에선 스테이블코인이 신경쓰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더불어 다양한 기능을 프로그램할 수 있는 점도 CBDC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다. CBDC를 설계할 때 스마트 컨트랙트를 적용하면 금액·날짜·인원·거래 등 프로그래밍한 조건 충족시 거래가 자동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김형중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통화정책을 통해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의 양을 조절해야 하는데, CBDC를 발행하지 않고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난립하게 둔다면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CBDC 발행은 필연적이고, 실물화폐는 낡은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또 그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CBDC에 적용하면 재난지원금 지급 같이 특정한 목적에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CBDC는 '비용절감', '금융포용성 증대' 등이 장점으로 언급된다. 먼저 실물화폐를 CBDC로 대체하게 되면 실물화폐를 발행·저장·운반 할 때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금융포용성 역시 제고할 수 있다. CBDC의 경우 은행계좌를 보유할 필요가 없기에 개인·기업의 필요에 부합하는 금융상품과 서비스 이용기회가 확대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CBDC 발행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CBDC 자체가 한국 시장에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은 비현금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국가 중 하나다. 과거 정부가 세원확보나 자금세탁방지(AML)와 같은 정책목적에 따라 신용카드를 포함한 비현금수단의 사용을 법제도적으로 권장해 전자결제가 활성화 됐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18년 한국의 현금결제 비중은 19.8%에 그쳤다. 신용카드나 각종 페이를 쓰고 있는 이용자들이 CBDC로 넘어갈 요인이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또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한 지적도 있다. 일반적인 가상자산, 토큰과 달리 CBDC는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해 표면적으론 익명성 보장이 가능하지만 중앙은행이 거래내역을 관리하기 때문에 후에 요청시 거래내역 추적이 가능하다. 한국은행이 전국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이로 인해 빅브라더가 출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승주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과거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넷 뱅킹도 잘 돼 있고, 간편결제도 잘 돼 있어 CBDC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을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가상자산의 존재 가치는 익명성에 있는데, 전세계 대다수 정부가 CBDC 추진함에 있어서 익명성 제거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신용카드와 다를 게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다만 그는 시장에서 CBDC가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CBDC가 기존 시스템과과 별다를 게 없다고 해서, 시장에서도 그렇게 받아들일지는 알수 없다"며 "지금도 가상자산을 사용하면서 거기에 적용된 기술을 인지하고 쓰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전통 가상자산에 CBDC가 어떤 영향 미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