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괜찮은 것'으로 충분한가(Is 'good' good enough?)"
삼성전자가 오는 8월11일로 예정된 '갤럭시 언팩 2021' 행사를 앞두고 내놓은 문구입니다. 삼성은 이번 언팩에선 폴더블폰 '갤럭시 Z' 시리즈 신제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과연 폴더블폰은 '괜찮은 폰'들을 넘어서 새로운 '대세'가 될 수 있을까요?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됐다
이번 언팩 트레일러 영상에선 '벽돌폰'으로 불리던 최초의 휴대전화부터 피처폰, 현재의 바(bar)형 스마트폰까지 등장하며 "이것은 한 때 괜찮은 것이었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곤 "이들은 모두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었고, 우리는 더 나은 경험을 하면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한 때는 대세였던 것들도, 새로운 대세가 나타나면 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삼성은 휴대전화 시장에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이 올 것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은 바로 폴더블폰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올해 '갤럭시 노트' 시리즈 신제품을 내지 않는 것은 삼성이 이미 새로운 패러다임에 올라 탔음을 의미합니다.
지금 인기 있는 '갤럭시 S' 시리즈나 애플 '아이폰'도 매년 신제품이 나오지만 이제는 '혁신'이라 부르기엔 부족함이 있습니다. 굳이 바꾸지 않고 전에 쓰던 제품을 써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피처폰을 쓰다 스마트폰으로 넘어 가던 시절처럼 '저건 꼭 사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삼성은 이런 '괜찮은 것'들과 결별을 선언하고 폴더블폰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2019년 값비싼 '실험작'으로 평가되던 '갤럭시 폴드'는 2년 만에 삼성 스마트폰 사업의 미래가 됐습니다.
멈춰 서는 순간 추락이다
잘 알다시피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마트폰을 파는 기업입니다. 그런 기업이 스스로 괜찮은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피처폰 시대 삼성은 당시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노키아를 따라잡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거의 다 따라잡았을 때, 애플 아이폰이 등장했습니다. 애플이 무슨 휴대폰을 만드냐며 코웃음을 치던 노키아를 비롯해 모토로라, 블랙베리 등은 모두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최근 LG전자마저 막대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철수했습니다.
휴대폰 시장에는 패러다임 전환을 따라가지 못한 기업들의 숙명이 똑똑히 각인돼 있습니다. 스마트폰 혁명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삼성은 이후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현재까지 스마트폰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지금 혁신하지 못하면 언제든 노키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을 겁니다.
이미 시작된 위기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은 올 2분기 5800만대의 스마트폰을 출하했고, 뒤를 이어 중국 샤오미가 5300만대로 뒤를 쫓았습니다. 점유율로 보면 삼성이 17.6%, 샤오미가 16.1%로 1% 포인트(p)대로 격차가 바짝 좁혀졌습니다. 작년 2분기에만 해도 삼성이 19.6%, 샤오미가 9.4%였던 것을 보면 얼마나 추격이 거센지 알 수 있습니다.
삼성은 2019년 세계 최초의 5G 스마트폰 '갤럭시 S10'을 내놓으며 5G를 새로운 기회로 삼았지만, 지난해 애플 '아이폰12'가 나오자마자 시장을 석권해버렸습니다. 애플은 올 2분기 스마트폰 시장 전체 매출의 무려 41%를 차지했습니다. 5G 아이폰 덕에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나 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삼성은 제일 많이 팔고도 매출 점유율은 지난해 17%에서 올해 15%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프리미엄 시장에선 애플에, 중저가 시장에선 중국 제조사에 치이고 있는 삼성은 시장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들이 따라잡기 어려운, 더 난이도 높은 혁신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내놓은 카드가 바로 폴더블폰 입니다. 폴더블폰은 스마트폰 주요 부품들을 직접 개발해 생산할 수 있는 삼성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혁신입니다. 피처폰 시절 폼팩터 혁신을 주도하던 기억이 날 겁니다.
폴더블로 '판'을 뒤집는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폴드부터 지난해 나온 '갤럭시 Z 폴드2' '갤럭시 Z 플립2'를 거치며 폴더블폰이 유의미한 시장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직 전체 스마트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판'을 뒤집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겁니다.
폴더블폰이 성장하기 위한 조건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쓸모', 다른 하나는 '가격' 입니다. 쓸모는 '왜 접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됩니다. 지난해 나온 갤럭시 Z 폴드2는 넓은 화면을 이용한 멀티태스킹이나 여러 각도로 접어서 활용할 수 있는 '플렉스 모드' 등을 선보이며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더 많은 이들을 설득할만한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는 이번 갤럭시 Z 폴드3에선 'S펜'을 지원하고 전면에 '언더디스플레이카메라(UDC)'를 탑재해 풀스크린을 구현하는 등 폴더블폰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수많은 유출 정보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성 스마트폰 사업을 이끌고 있는 노태문 무선사업부장(사장)이 강조한 '개방형 생태계'가 그것입니다. 폴더블폰의 미래를 열기 위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리더들과 협업한 결과물이 무엇일지 기대가 됩니다.
파격적인 가격으로 '대세화' 이끈다
삼성전자는 지난 29일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수차례 '폴더블 대세화'를 강조했습니다. 김성구 삼성전자 IM부문 상무는 "폴더블폰 신모델은 고객 특성에 맞춰 제품 완성도와 혁신성을 높였고 폼팩터에 최적화된 사용자 경험 제공할 것"이라며 "향상된 제품 경쟁력에 더해 플래그십 마케팅 추진과 매장 디스플레이 확대 등으로 판매량을 늘려 규모의 경제 키우고 제품 설계 최적화 통해 수익성을 확보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올해는 폴더블폰을 제대로 한 번 팔아보겠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자신감은 가격대를 크게 낮췄다는 데서 나온다고 봅니다. 전작의 200만원대를 훌쩍 넘는 가격은 소비자들이 폴더블폰에 접근하는 데 가장 큰 허들이었습니다. 한 번 접어봐야 접는게 왜 좋은 지 알텐 데, 시도하기엔 너무 부담이 큰 가격이니 좋아도 좋은 지 알 길이 없었거든요.
이번 3세대 폴더블폰은 전작보다 가격을 약 40만원 낮추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갤럭시 Z 폴드3'는 일반모델이 199만원대로, 200만원대 이하로 턱걸이를 했습니다. 무슨 마법을 부려 제품을 개선하며 가격을 이만큼 낮출 수 있었는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현재로는 매력적인 가격으로 보입니다. 아직도 최고가 스마트폰에 속하긴 하지만, 애플의 최고가 모델인 '아이폰 12 프로맥스 512GB'가 187만원이란 점을 고려한다면 한 번 붙어볼만한 가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대로 괜찮을지, 한 번 열어 봅시다
10년 넘게 아이폰을 쓰던 저도 이젠 신제품이 나와도 무덤덤 해진지가 오래됐습니다. 그냥 입던 속옷이 낡아서 새 속옷을 사 입은 느낌이랄까요? 기왕 새로 살 거라면, 폴더블폰에 눈길이 가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아이폰도 여전히 '괜찮은' 폰이긴 합니다. 아직 괜찮은 거로 괜찮을지, 아님 다음 세상을 열 때가 됐는지, 8월11일을 한 번 기다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