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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크M Sep 06. 2021

'12년 아이폰 외길' 애플팬의 '플립3' 적응기

드라마 '알고있지만'의 유나비(한소희 역)는 나쁜남자인 줄 알면서도 같은 과 박재언(송강 역)에게 속절없이 끌린다. 잘 생겨서. 너무 잘 생겨서 다른 남자들이 좋은 남자인 줄 알면서도 성에 안찬다.


내가 나비라면 '갤럭시 Z 플립3'는 재언이다. 이런 저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잘 생겨서, 그 이유 하나로 떨쳐 버릴 수 없는 존재. 아이폰이 아니어서 너무 불안한데, 그래도 계속 써보고 싶은 '갤럭시 Z 플립3'를 결국 사버렸다.


골수 애플팬 변절시킨 폴더블 혁신


사람들이 "예쁘다"며 눈을 반짝일 때마다 자부심이 고양된다. 얼마만에 꺼내 놓고 자랑하고 싶은 스마트폰인가. 나 폴더블폰 샀다구.


2009년 '아이폰3GS'를 시작으로 12년 간 총 6대의 아이폰이 내 손을 거쳐갔다. 견고하고 세련된 외관, 완벽히 정돈된 레이아웃, 부드럽고 빠른 동작, 탄탄한 생태계까지, 아이폰은 늘 최고의 스마트폰이었고 다른 폰엔 곁눈질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폰 12 프로 맥스'와 '갤럭시 Z 플립3' /사진=남도영 기자 hyun


하지만 언젠가부터 새 아이폰을 사도 껍데기만 바뀌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특별히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좀 지루했다. 늘 좋아서 좋은 줄도 모르게 된 느낌이랄까.


지난달 11일, 삼성 갤럭시 언팩 행사에서 '갤럭시 Z 플립3'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만 '혹' 해버렸다. 잠시 당황하는 사이 커버 디스플레이에서 삼성페이로 결제를 하는 모습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잽에 이어 어퍼컷까지 맞고 나니 정신이 몽롱했다.


그렇게 아이폰이 아닌 첫 스마트폰 '갤럭시 Z 플립3'를 예약했다.


접는 이유는 확실하다


앞서 리뷰를 쓰려고 제품을 대여해 '갤럭시 Z 폴드3'와 '갤럭시 Z 플립3'를 동시에 사용해봤지만, 하나를 고르긴 쉽지 않았다. 폴드3도 실제 써보니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큰 화면에 익숙해지면 '안 본 눈'을 구하기 전엔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 허나 구매는 결국 플립3로 결정했다. 다들 그렇듯 예뻐서다.

'아이폰 12 프로 맥스'와 '갤럭시 Z 플립3' /사진=남도영 기자


폴드 시리즈는 다음 세대를 한 번 더 기다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반면, 플립3는 이미 '완성형'으로 느껴졌다. 디자인부터 가격까지, 지금 당장 써보고 싶은 폴더블폰이었다. 현재 '라벤더'나 '크림' 색상이 인기라는 데, 무광을 좋아해 블랙을 선택했다. 블랙은 확실히 실물이 훨씬 예쁘다.


/사진=남도영 기자 


사람들이 폴더블폰에 대해 가장 의문을 품는 지점은 '왜 접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실제 써보면 반으로 접힌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유용하다. 손 안에 쏙, 가방 앞주머니에도 쏙, 바지 주머니에도 쏙쏙 잘 들어간다. 앞서 쓰던 '아이폰12 프로 맥스'는 왠만하면 어디 넣지 않고 그냥 들고 다녔다. 휴대하기 편하다는 것 만으로도 '접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이사 가긴 쉽지 않네


문제는 지난 10년 넘게 아이폰을 쓰며 쌓은 '데이터' 였다. 사진부터 연락처, 메모, 암호, 앱, 인증서 등등 아이폰 안에는 모든 생활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축적돼 있었다. 그동안 타사 제품으로 바꿀 생각을 못했던 가장 큰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래도 한 번 해보자(예쁘니까)는 심정으로 플립3의 초기설정을 시작했다. 다행히 '스마트 스위치'란 기능이 있었다. 다른 스마트폰에서 연락처, 스케쥴, 앱, 사진, 메모, 동영상 등 각종 데이터를 한 번에 옮겨올 수 있는 기능이다. 물론 아이폰도 해당된다.


케이블로 두 스마트폰을 연결해 데이터를 옮기는 데, 생각보다 순탄치는 않았다. 두 폰을 연결하니 아이폰이 충전 중으로 변하더니 플립3의 전원을 빨아먹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작은 체구로 배터리 용량이 아쉬운 플립3가 데이터 전송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꺼져버렸다. 그동안 옮기던 데이터는 모두 사라졌다. 며칠 동안 스마트폰 2개를 들고 다녀야 했다.

/사진=남도영 기자 


몇 번을 실패하고 나서야 해결책을 찾았다. 둘을 연결한 상태에서 플립3를 무선 충전기 위에 올려놓고 간신히 데이터 전송을 마쳤다. 이사를 마치고 열어보니 배경화면부터 낯익은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달력에 적어놨던 일정들을 보니 안도감이 들었다.


남은 문제는 맥북과 애플워치였다. 다행히 에어팟은 플립3에 연결해서 쓸 수 있었지만, 애플워치는 무용지물이 됐다. 맥북에서 문자 메시지를 받지도 못하고 '에어드롭' 같은 기능도 못 쓴다. 오래 살던 지역을 떠나 새 정착지에 적응하는 건 상당한 비용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낯섦과 설렘


갤럭시 스마트폰 환경에 적응하는 건 그대로 또 시간이 필요했다. 익숙치 않은 레이아웃과 제스쳐는 계속 원치 않은 곳에 터치를 유발했다. 플립3는 가로폭이 좁아 좀 더 어색한 점도 있었다. 설정도 낯설고 내가 찾는 기능이 어디 붙어있는지 하나씩 하나씩 알아나가야 했다.


플립3는 아직 온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위해 내비게이션 스타일을 '버튼'에서 아이폰과 같은 '스와이프 제스처'로 바꿀 것을 추천했다. 설정을 바꾸니 한 결 편해졌다. 허나 결국 새로운 환경에 온전히 적응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았다.


몇 가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긴 했으나, 감동적인 순간도 찾아왔다. 처음으로 지하철 게이트를 지갑이 아닌 스마트폰을 찍고 통과할 땐 온 몸에 짜릿한 전류가 흘렀다. 플립3의 세계로 인도한 결정적 기능인 삼성페이 역시 골수 아이폰 이용자에겐 '신세계'였다. 이게 진짜 되려나 조마조마하며 태그를 시도했고, 이제 지갑을 가지고 다니거나 카드 수납 케이스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얻었다.


아이폰엔 없고 갤럭시엔 있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멀티태스킹 기능이다. 인터넷 화면을 보다가 링크를 드래그해 위나 아래에 놓으면 동시에 두 화면을 볼 수 있다. 인터넷 쇼핑에 특히 유용하다. 유튜브 영상을 띄워 놓고 웹서핑이나 '카톡'을 하는 건 기본이다. 무언가 다른 화면을 보고 옮겨 적어야 할 때, 위아래로 자연스럽게 화면을 나눠 동시에 쓸 수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편리했다.


플립의 참맛은 '폰꾸'에서 나온다


내심 플립3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는 '폰꾸(폰꾸미기)'에 대한 욕구 때문이었다. 과거 피쳐폰 시절, 휴대폰 고리 하나도 몹시 신중히 고르던 그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삼성전자가 제품 출시와 함께 선보인 나름 과감한 디자인의 액세서리들과 콜라보 아이템들이 이런 충동을 부추겼다.


허나 사고 싶었던 케이스가 온오프라인 모두 품절 상태였다. 삼성디지털프라자에도 한 두 종의 케이스만 앙상하게 걸려있었다. 사전판매 사은품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걸릴텐데, 당장 씌울 껍데기가 없어 겁없이 '쌩폰'을 들고 다녀야만 했다. 이번 폴더블폰의 심상치 않은 인기가 실감이 났다.

/사진=남도영 기자


며칠 오픈마켓을 뒤져 간신히 정품 케이스 하나를 구했다. 미리 사뒀던 키링도 걸고 살짝 꾸며주니 처음엔 '별로'라던 와이프도 '괜찮네'로 평이 바뀌었다. 지금은 콜라보 액세서리를 주문해 기다리고 있다. 몇 가지 폰꾸 계획을 더 수립해놨다. 플립3를 만난 이후로 지름신이 폭발하고 있다.


제품들이 서로 비슷해져 가던 스마트폰 시장에서 누군가 한 눈에 알아봐주는, 강렬한 개성이 담긴 제품을 만난 건 참 오랜만이다. 배터리가 좀 아슬아슬하고, 발열도 분명 있는데, 아직까진 이 색다른 하드웨어의 매력이 단점들을 압도한다. 이 설렘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다음 장기 사용기도 기대해달라.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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