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 따른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기간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는 24일이면 사업자 신고를 하지 못한 거래소의 영업은 불법입니다.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를 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보안 요구사항인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이 필요합니다. ISMS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보안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보안 투자를 통해 이용자 보호에 신경쓰고 있다는 증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필요합니다. 원화를 활용한 가상자산 거래를 중개하려는 사업자들은 시중은행의 실명확인 계좌를 발급받아야 합니다. 예전부터 소위 '4대 거래소'라 불리는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그리고 코빗은 이 실명확인 계좌를 발급받아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거래소 신고기한이 눈앞에 다가온 가운데, 모두의 예상대로 4대 거래소는 은행과 실명확인 계좌 계약을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곧 금융감독원에 사업자 신고를 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4대 거래소 외에 다른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아직 누구도 은행과 실명확인 계좌를 발급받지 못했습니다. ISMS 인증을 받고, 자금세탁방지(AML)를 위해 노력하고, 이용자 신원확인(KYC)에 신경쓰는 등의 노력, 소위 금융권 수준의 보안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좋은 소식을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4대 거래소에 비해 AML, KYC 등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을수도 있습니다. 더 많은 투자가 요구될지도 모릅니다. 가상자산 자체가 태생부터 익명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금세탁에 취약합니다. 그러니, 은행이 더 높은 수준의 투자를 요구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말들이 이상합니다. 어떻게 해야 실명확인 계좌를 발급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곳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뭐가 부족하면 부족하다, 이런 부분에 더 투자를 해야 한다와 같은 피드백 조차 없다고 합니다. 사업자들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러니 서서히 이상한 말들도 나옵니다. 처음부터 정부가 은행을 압박해, 4대 거래소만 남기고 다른 거래소들에게는 실명확인 계좌를 발급하지 못하도록 한 것 아니냐는 얘기입니다. 기회의 공정을 강조한 정부가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만, 업계에서 왜 이런 볼멘 소리가 나오는지는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보안이 취약하고,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소위 부실 거래소들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거래소들에게까지 무작정 실명확인 계좌를 발급하면 안되겠지요. 하지만 그런 거래소들을 걸러내는 것이 귀찮아서, 대다수가 부실하니 그냥 발급 안하는 것이 안전해서 등과 같은 이유로 건실한 거래소의 기회까지 날려버리면 안되는 것 아닐까요.
여러 거래소들이 있습니다. 기존 금융권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아 투자를 유치하고, 보안에 대한 투자를 일찌감치 시작한 거래소가 있습니다. 모두가 소위 '벌집계좌'라 불리는 방식으로 원화마켓을 운영하며 수익을 올릴때, 수익을 포기하고 정부 규제를 따르며 벌집계좌를 활용하지 않았던 거래소도 있습니다. 대규모 콘퍼러스 개최를 통해 불모지였던 한국을 블록체인 중심국가로 이끌었던 거래소들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특금법 시행 이후 정부 기준을 맞추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해온 여러 거래소들이 있습니다. 정부와 은행은 그들에게 납득할만한 답변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시험에 떨어져도, 왜 떨어졌는지, 내가 얼마나 부족한 것인지, 얼마나 노력하면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되돌아 봅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가상자산 거래소들에게도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심사, 그리고 정의로운 결과를 주기를 바랍니다.
허준 기자 joo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