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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크M Sep 09. 2021

'채굴의 굴레'에 갇힌 그래픽카드...선인상가를 가다


"하루가 아니라 시간 단위로 가격이 올라요"


용산 선인상가 2층 조립 PC 매장 직원은 "아침 먹으며 보는 가격과 점심 먹으며 보는 가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PC용 그래픽카드 가격상승 현상은 해소되기는 커녕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래픽카드 가격상승은 가상화폐 채굴을 목적으로 가격에 상관없이 제품을 '싹쓸이'하는 채굴업자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가상화폐를 컴퓨터 연산, 즉 채굴로 얻기 위해선 그래픽카드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채굴에 사용되는 '채굴기'는 대당 적게는 4개, 많게는 8개 그래픽카드를 탑재하는데, 채굴장에선 이를 수백, 수천대씩 설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떨어질 줄 알았는데…채굴 제한 조치도 안 먹혔다


그래픽카드 가격이 폭등한 건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급격히 증가한 채굴 수요와 제품 품귀 현상이 맞물리며 그래픽 카드 가격이 폭등하면서 PC 조립을 위해 제품을 구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은 울상을 지어야했다.


지난 5월 가상화폐 가격이 한 풀 꺾이면서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 전망됐던 그래픽카드 가격은 아직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8일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지포스 GTX 1660 SUPER'는 77~13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지난 2019년 출시 당시 30만원 전후로 판매되던 제품이지만, 2년이 지나서도 2~4배 가격에 팔리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중고 제품도 50~60만원에 거래된다.


채굴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지포스 RTX 3080'은 최저가가 180만원대에 형성돼있고, 그 외 'RTX 3070', 'RTX 3060' 제품도 각각 120만원, 9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지포스 GTX 1660 SUPER 가격/사진=다나와 홈페이지


채굴 수요로 인해 일반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제조사에서도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픽카드 제조사인 엔비디아는 자사 '지포스' 그래픽카드 라인업에 채굴용 그래픽카드 'CMP HX' 시리즈를 포함시키고 대신 ▲RTX 3080 ▲RTX 3070 ▲RTX 3060Ti 등에 암호화폐 채굴능력 제한 기술인 ' LHR(Lite Hash Rate)'을 적용한 제품을 출시했다. 채굴용과 일반 소비자용 제품을 구분해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채굴업자들은 LHR 그래픽카드 채굴 제한 기능을 무력화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LHR 기능의 영향을 받는 '이더리움' 등의 가상화폐 대신 이 기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레이븐코인' 등으로 종목을 전환하며 여전히 채굴용으로 그래픽카드를 사들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더'에서 '레이븐'으로 옮겨 붙은 채굴 열풍


채굴용으로 그래픽카드가 판매되는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4일 용산 선인상가를 찾았다. 최근 가상화폐 가격이 회복세를 보이자 다시 채굴기 수요가 높아지는 가운데, 이전까지 수익성이 높아 주로 채굴되던 이더리움 대신 LHR 기능의 제한을 받지 않는 레이븐코인 채굴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분위기였다.


조립PC를 전문으로 하는 한 업체에 채굴기를 구매할 수 있는지 묻자 "이더(이더리움)요? 레이븐(레이븐코인)이요?"라고 되물었다. 레이븐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자 "3060Ti 6웨이(그래픽카드 6개 장착)로 830만원"이라며 "빨리 결정해야 된다. 9월에는 물량이 더 안들어와서 훨씬 비싸진다"고 재촉했다.


상가 내 또 다른 매장 사장은 "채굴기 문의도 많고 구매하는 사람도 많다"며 "총판에서도 그래픽카드 구하기가 힘들어서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도 물건 떼올 때 가격이 너무 비싸서 학을 떼며 구해온다"고 덧붙였다.


다른 매장에서 LHR 기능이 적용된 그래픽카드도 채굴에 괜찮은지 묻자 "이더는 채산량이 좀 떨어지긴 하는데 어차피 레이븐 할 거면 차이는 없다"라며 "레이븐 말고 다른 잡코인을 채굴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날 선인상가 내 업체 10곳을 알아본 결과, 6곳은 채굴기를 판매하고 있었다. 해당 업체들조차도 RTX 3080, 3070은 구할 수가 없다며 주로 RTX 3060, GTX 1660 SUPER를 추천했고, 일부는 신품이 아닌 중고로 맞출 것을 권하기도 했다.


한 컴퓨터 부품 전문 업체 대표는 "현재 그래픽카드 가격 상승 원인은 90%가 가상화폐 때문"이라며 "채굴 열풍 이전보다 공급받는 제품 단가가 1.7배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그래픽카드 "없어서 못 판다" 발길 돌린 소비자


일반 소비자들이 그래픽카드 제품을 구하긴 어려운 지, 채굴기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밝힌 매장에 물었다.

한 조립PC 업체에 RTX 3070을 구매하고 싶다고 하자 "용산에서 제일 큰 조립 PC 업체들도 그래픽카드 없이 내장그래픽 제품으로 판매한다"며 "정 급한 상황이면 조금 비싸더라도 쿠팡이나 쇼핑몰에서 구매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직원 역시 "없어서 못 판다"라며 "물건이 수입사에 들어왔는지 안 들어왔는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가격 이하로 제품을 구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용산 선인상가 1층 내부/사진=김가은 기자


한 그래픽카드 총판업체 직원은 "올 1월부터 5월까지 물건이 2주에 한번씩 들어왔다"며 "5월에 비트코인 가격이 떨어지면서 물량도 풀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여전히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카드가 여전히 채굴 수요로 전부 흡수되면서, 게임 용도로 제품을 찾기 위해 방문한 일반 소비자들은 구매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선인상가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그래픽카드 가격이 이 세상 가격이 아니라 포기했다"며 "코인 때문에 한동안 안정화될 것 같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소비자도 "그래픽카드가 무슨 플스5(플레이스테이션5) 2대 값이더라"라며 "가격이 내릴 때까지 그냥 '존버'(버티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유통 구조도 가격상승에 한 몫


그래픽카드 가격 상승은 채굴 열풍과 더불어 유통시장의 구조적 문제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래픽카드를 비롯한 PC 부품은 '제조사→수입사→총판→도매→소매'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치며 유통사 마진이 반영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이 과정에서 그래픽카드가 품귀 현상을 보이자 일부 유통사들이 과도한 마진을 붙이며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총판이나 대형 대리점들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다"며 "일부 업체에서 채굴업자에게 공급되는 가격에 맞춰 마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런 그래픽카드 가격 상승에 대해 엔비디아 측은 "최근 게임 및 가상화폐 채굴 등에 의한 그래픽 카드 수요 증가로 공급 대비 수요가 높게 형성되고 있다"며 "자사는 유통 구조상 실제 판매되는 그래픽카드 가격 등 요소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가은 기자 7rsilver@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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