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무려 2만5000원에 팔리고 있는 애플의 '광택용 천'을 저격했다. '천 조각 하나도 애플 로고만 달면 비싸다'는 소비자들의 볼멘 소리에 유사한 디스플레이 청소용 천을 무려로 제공한다고 나선 것.
10일(현지시각) IT 전문매체 폰아레나 등 외신에 따르면 삼성전자 독일법인은 최근 현지 삼성 멤버스 앱을 통해 고객들에게 '광택용 천' 1000개를 무료로 제공했다. 외신들은 이 마케팅이 애플을 비꼬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해석했다.
애플의 광택용 천은 고가의 모니터 '프로 디스플레이 XDR' 등을 구매하면 지급하던 사은품이었다. 이를 최근 유료 제품으로 내놓은 것인 데, 미국에선 19달러, 한국에선 2만5000원에 판매하면서 '지나치게 비싼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오히려 제품이 동이 나 배송까지 최대 두 달이 걸리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도 화제가 됐다.
애플 제품은 비싸다. 애플은 항상 프리미엄 제품만 내놓는다는 자세를 고수해왔고, 간혹 '아이폰 SE' 같은 보급형 제품을 내놓기도 했으나 이는 플래그십 제품에서 남은 부품을 재활용하기 위해 내놓은 것에 가까웠다.
광택용 천 이슈 역시 이런 애플이 고가전략에 대한 반감이 낳은 해프닝이었다. 각자의 사정 상 모두가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을 살 순 없다. 애플은 프리미엄 제품만으로 미국 시가총액 2위의 굴지의 기업이 됐다. 이를 바라보는 위화감이 작은 액세서리를 통해 표출된 것이다.
삼성의 전략은 애플과는 다르다. 삼성에는 저렴한 보급형 제품부터 애플 제품과 경쟁하는 프리미엄 제품까지 다양한 가격과 성능의 제품이 촘촘하게 나열돼있다. 제품군이 섞이다보니 애플처럼 '고급' 이미지는 아니지만, 덕분에 지구촌의 더 많은 사람들이 '삼성'이란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애플이 고가 제품으로 이뤄진 폐쇄적인 생태계를 지향하는 것에 반해 삼성은 보다 대중적이고 열린 생태계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난 8월 삼성전자 노태문 무선사업부장(사장)은 '삼성 갤럭시 언팩 2021' 행사에서 '개방성의 시대'를 강조하며 "삼성은 모든 사람이 최고의 기능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며 애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모바일 시장에서 삼성의 전략은 '반(反)애플'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마케팅에서도 애플을 노골적으로 비꼬는 '저격수' 역할을 자처한다. 과거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삼성의 스마트폰을 '카피캣'이라고 비하하며 오랜 소송전을 펼치기도 했다. 긴 악연 만큼 애플과 삼성의 라이벌 의식은 뿌리가 깊다.
지난 9월 애플이 '아이폰13' 시리즈를 공개했을 때 삼성은 이 제품이 전작에 비해 큰 변화가 없음을 꼬집으며 "우리만 데자뷔처럼 느끼는 것 아니죠?" "반으로 접혔다면 얼마나 더 멋있을까요"라는 트위터 메시지를 게재했다. 새 아이폰이 자사의 폴더블폰 같은 '혁신'이 없음을 비꼰 얘기다.
아이폰의 노치 디자인을 꾸준히 놀려 온 삼성은 이번 신제품에서도 "2021년에도 여전히 노치가 있다는 걸 상상해보세요"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삼성은 지난 2017년 노치 디자인을 처음 채택한 '아이폰X' 출시 당시부터 이를 'M형 탈모' 의인화한 광고를 내보내는 등 노치를 아이폰의 약점으로 꼬집어왔다.
성능도 비판 대상이다. 이번 애플이 이번 아이폰13에 120Hz 고주사율 기능을 처음 넣자 "우린 오랫동안 전방위적으로 120Hz 주사율을 채택해왔다"고 트윗을 날렸다. 지난해 아이폰12 출시 당시에도 첫 5G 제품이라는 점을 비꼬아 "우리는 이미 5G와 친구 사이"라고 트윗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삼성의 도발에 올해는 애플도 공개적으로 라이벌 견제에 나서기도 했다. 애플은 아이폰13의 강점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A15 바이오닉'을 소개하며 "경쟁사는 우리가 2년 전 내놓은 칩 성능을 따라잡기도 급급한 상황"이라며 자사 제품이 삼성제품보다 빠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많은 스마트폰을 팔지만, 매출 점유율에선 애플이 압도적이다. 더 적게 팔고도 더 많이 가져간다는 의미다. 한참 먼저 5G 스마트폰을 내놔도 뒤늦게 내놓은 애플이 더 많이 판다. 이런 면에서 삼성전자는 여전히 애플의 '추격자'다. 삼성이 끈질기게 애플을 견제하고 저격해야 하는 건 이런 위치 때문이다.
다만 최근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올 3분기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점유율 3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애플의 3분기 점유율은 42%였다. 두 회사의 격차는 지난해 9%에서 올해 7%로 좁혀졌다. 애플의 안방에서, 게다가 신제품 '아이폰13'이 출시된 상황에 이런 삼성전자의 추격은 예상 밖 선전이라는 평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폴더블폰이다. 삼성이 올해 내놓은 '갤럭시 Z 폴드3'와 '갤럭시 Z 플립3'는 판매 호조를 보이며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퍼스트 무버'로 올려 놓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가 미국 시장에서 판매한 스마트폰 중 폴더블폰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엔 고작 0.6%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12%까지 높아졌다.
삼성전자는 세계 1위 스마트폰 제조사가 되고도 완전히 떨치기 어려웠던 '카피캣' 꼬리표를 지울 기회가 온 것이다. 언젠가 완전히 전세를 역전해 애플이 삼성에게 도발을 걸어 올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임수정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연구원은 "프리미엄 시장에서의 우위 확보 전략에 따라 선보인 갤럭시Z 폴드·플립 시리즈의 지금까지 성과는 성공적"이라며 "기존 모델과의 차별화 부족이라는 평가를 불식하고 새로운 폼팩터를 기대하는 소비자 요구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했다"고 평가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