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첫 출근일 이후에도 나에게는 모든 것이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충격의 연속이었다. 일단, 보통의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동교과 협의회가 있었다. 동교과 협의회에서는 어떤 학년 어떤 반을 가르칠지, 1주일에 몇 시간을 가르칠지 결정하게 된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한 번만 파이터가 되면 1년이 편해지는 회의'로 불린다. 예전 학교에서는 어떤 교과 선생님들이 두 시간 넘게 주당 시수 하나만을 가지고 싸우다 결론이 나지 않아, 그 다음날까지 싸우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다들 수업을 적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 한 시간이 늘어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나를 포함하여 우리 학교 보통교과 교사들은 동교과 협의회를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인문계고 아이들이 1학년 때 배우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을 2년에 걸쳐 배우고, 남는 시간에는 전공 과목 기초 이론을 배우거나, 관련 실습을 한다. 그래서 보통교과 선생님들은 각 학년별로 딱 한 명씩, 두 명이 있다(한 명만 있는 교과도 꽤 된다.). 나는 2학년 담임이므로 2학년에서 내 교과를 수업하면 되는 것이었고, 동교과 선생님은 1학년 담임으로 1학년에서 나와 같은 교과를 수업할 예정이었다. 첫 회의에서 담임이 발표된 순간, 동교과 협의회도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전 학교에서까지는 같은 전공 교사가 10명 이상 되어 동교과 협의회를 한 번 열기도 어려웠는데, 두 명이서 앉아 교과 운영을 논의하려니 뭔가 어색했다. 특성화고에서는 내 교과가 비주요 교과라는 것이 확실히 실감났다. 다행히, 동교과 선생님은 무척 좋은 분이었다. 작년까지 쓰던 활동지 파일도 주셨고, 수업에 관한 여러 생각도 나누었다. 나보다 경력은 훨씬 적었지만(이 학교가 첫 발령지라고 했다.), 우리 학교에서의 경력은 훨씬 더 많으신 분이었고, 나에게 먼저 궁금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생각나는 대로, 꼭 수업만이 아니라, 특성화고에 관한 궁금한 점을 이것저것 편하게 물을 수 있었다. 그리고 동교과 교사로서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는 것은, 내가 새 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고민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선생님께서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주고 계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어쩌면 그 분이 학교 생활을 헤메고 있는 내 모습에서 본인의 첫 발령 당시의 모습을 보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교과 협의회를 마치고 나는 부장님께 내가 맡은 4반 아이들의 명렬표를 요청하여 받았다. 그런데 세상에, 정원이 14명이었다. 작년에 22명의 아이들을 맡아 데리고 있으면서 다른 반에 비해 그것도 적다고 생각했는데(요즘 인문계 고교는 고교학점제 때문에 반 별 인원의 편차가 큰 편이다. 작년의 나는 운이 좋았다.), 14명이라고? 이거 핀란드 고등학교 수준 아닌가? 4명씩 앉혀도 4줄을 다 채울 수가 없다니. 나는 믿을 수가 없어 부장님께 물었다.
"왜 이렇게 인원이 적은 거에요?"
"음, 원래 저희 학교 학급 정원은 25명인데요, 애초에 지원률이 100%를 안 넘기도 하고요. 대부분은 다 자퇴하기 때문에 그래요."
또다시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나는 명렬표를 뽑아 찬찬히 살펴보았다. 25명 중 살아남은 14명의 이름이 하나씩 머릿속에 박혔다. 지원률이 100%는 아니라 해도, 전체 회의에서 들은 지원률을 생각해보면, 최소 4~5명은 자퇴했다는 건데... 그리고 한 반에서 4~5명일 정도면, 전체 학년에서는..... 내가 1년 동안 전교생 중 한 두 명 자퇴하던 곳에서 와서 이렇게 적응이 안되는 건가? 물론, 심한 양아치들이 이미 자퇴했기를 바라며 2학년 담임에 지원하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를 바란 건 아니었다. 이건 애초에 학교 생활을 못 견딜 만큼 나약하고 어려운 아이들이 많기 때문일까, 학교가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대체 누구의 탓일까. 한 학년 입학생이 200명 정도 되는데, 그 중에 50명 가량(확실한 건 아니나, 대략 계산 했을 때)이 자퇴하는 것이 특성화고에선 당연한 일인 걸까? 우리 반 교실에 올라갔을 때 나는 14명이 한 교실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14개의 책상과 의자만으로 전체 공간을 다 채우기에는, 고등학교 교실 한 칸이 너무 넓었다. 나에게는 공간이 너무 많이 남는 새 교실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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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사 출근 일정이 모두 마무리된 후, 2월의 마지막 주 어느 날, 나는 짐을 싸들고 혼자 학교에 출근했다. 아이들이 올 교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3월 첫 주 임시 자리표도 칠판에 붙여 놓을 생각이었다. 아이들의 책상과 의자를 깨끗이 닦고, 바닥도 쓸고 닦았다. 겨울 방학 내내 잠자고 있던 묵은 먼지를 싸그리 쓸어 버리고, 그러면서 내 마음도 다시 차분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 이젠 여기가 내 학교야. 여기가 1년간 쓸 내 교실이고. 받아들이자. 다른 건 잊어버리자. 나는 빗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교실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사물함을 모두 열어 안에 있는 쓰레기들을 깨끗이 비우고, 구석구석 닦아냈다. 몇 번이나 손걸레를 다시 빨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물함의 거의 마지막 칸을 들여다 본 순간,
나는 그 곳에 주사기 바늘과 다 쓴 주사기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이게 왜 여기 있지? 학교에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내 머릿속은 맹렬하게 회전했다. 주사기를 활용하여 저지를 수 있는 온갖 나쁜 일들이 떠올랐다. 갑자기 사물함 전체에 손도 대고 싶지가 않아졌다. 설마 이 학교에서 화학 실험을 하진 않았을테고, 했더라도 이런 위험한 주사기를 이 학교 아이들에게 쓰게 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사적으로 가져와서 주사를 놓았다는 이야기인데, 미용반이 없으니 미용 도구도 아닐테고. 나는 아직까지도 그 주사기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의료용 약을 주사하고 자기 사물함에 넣어 놨다가 까먹은 것이리라고 믿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너무 무서워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설마 범죄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나쁜 약에 손 대는 아이들까지 있는 걸까...... 그런 애들은 작년에 다 자퇴했겠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자퇴가 안쓰러운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또 이런 아이들이라면 이미 자퇴해 주었기를 바라고 있다니.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학기 첫날 아이들이 이걸 발견하지 못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비닐장갑도 낀 후 그 주사기를 비닐 몇 겹으로 감싸서 들고 있던 쓰레기 봉투에 넣었다.
나는 주로 고2, 고3만을 맡아 수업을 해 왔었다. 고1 과정을 가르친 것은, 고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던 10년 전 한 번 뿐이었다. 중학교 과정마저 제대로 모를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나는 EBS 고1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하고, 고민을 하고, 활동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려웠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려니 너무 어려웠다. 매일 밤 육아가 끝난 후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고, 자료를 만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3월 1일에는 남편과 아이를 바깥으로(아이 사촌 집으로) 보내고 혼자 집에 남아 반나절 넘게 학기 첫 날 준비에 매달렸다. 모든 준비가 끝난 늦은 밤. 나는 노트북을 닫아 가방 속에 곱게 넣은 후 길게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