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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 교사 출근일 (1)

by 공고초보


교감선생님이 전 교사 업무분장 결과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별다른 감흥 없이 앉아 있었다. 어차피 1학년 아니면 2학년 담임일 것이었다. 이 학교는 중학교처럼 담임을 하는 사람도 행정 업무를 맡아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어느 부서의 어떤 일을 맡게 되든, 하기 싫었다. 나는 내가 인문계 고교에서 일할 기회를 받지 못했다는 것에 심통이 나 있었다. 누구에게 내야 할지도 모르는 유치찬란한 화가 점점 더 쌓이고 있었다.


우리 학교는 기계, 컴퓨터, 전기과가 각 3개 반씩 존재하여 한 학년에 총 9개 반이 있었다. 생각했던 대로 나는 2학년 담임이 되었다. 1지망인 기계과 담임은 못 되었지만, 2지망인 컴퓨터과 4반 담임이었다. 별로 아쉬울 것도 없었다. 어차피 기계과든 컴퓨터과든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나로선 전혀 알 수 없었으니까. 3지망인 전기과 담임이 되었다고 해도, 또는 희망원에 적지 않은 1학년 담임이 되었다고 해도 별로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학교에서 전입교사인 나를 배려해 주었다는 생각에 좀 놀랐는데(보통 전입교사들은 기존 교사들이 가장 희망하지 않는 어려운 일을 맡게 된다.), 희망원에 적어 냈던 작년 근무 부서와 같은 부서에 배정을 해 주었던 것이다. 나는 작년에도 2학년 담임이었으므로 **고등학교 2학년부 소속이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작년까지는 2학년 담임 전체가 2학년부 소속이었다면, 이 학교에서는 2학년 부장님 밑에 부원은 나 한 명이었다. 즉 나는 2학년에 관한 각종 사무 업무 전체를 맡아 하게 되었다. 나는 올해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해서는 매우 만족했다. 10년간 계속 해 왔던 담임 업무의 연장선이므로 별로 인수인계 받을 것도 없었다. 여기에 각종 자잘한 진학지도 관련 업무가 추가되었으나, 이 학교에서는 진학지도라는 것을 할 일도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내 걱정과 관심은 오로지 한 곳에만 쏠려 있었다. 바로, 내가 만나게 될 아이들이었다.


내 머릿속이 본격적으로 2학년 4반 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는 동안, 각 부서 부장님들이 나와서 부서에서 하는 일을 소개하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많은 생각을 했던 건 '홍보부'라는 부서의 소개 시간에서였다. 홍보부의 부장님은 젊은 남자 선생님이었다. 회의 전, 시청각실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갈 때, 그가 올해 3년차인데 처음 부장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얼핏 들었다. 어떤 부서 부장을 저런 어린 선생님께 주었을까, 나는 생각했다. 학교에 40대 이상의 교사도 많아 보이는데, 그가 설마 학교 4대 중요 부서인 교무, 연구, 과정, 학생부의 장은 아닐 것 같은데.....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는 고등학교 안에 '홍보부'라는 부서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었다. 홍보부는 관내/외 중학교를 돌아다니며 우리 학교에 학생들을 보내달라고 홍보하는 일을 하는 부서였다. 음, 많이 고생하시겠네. 그래서 젊은 분이 부장님이 되셨구나. 설명을 듣던 나는 부장님의 마지막 멘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희 부서에서 곧 2인 1조로 전체 선생님들 조를 편성하여 담당 중학교를 배정해 드릴 예정입니다. 많이 바쁘고 힘드신 것 압니다만 우리 학교를 위한 일이므로 모두 함께 힘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말을 들은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나더러 중학교에 홍보도 나가라는거야? 맘에 들지도 않는 이 학교의 훌륭한 점을 잔뜩 이야기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영업직 신입사원 역할까지 해야 다는 사실에 너무나 화가 났다. 론, 여기 온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었다. 발령 받은 직후 특성화고 근무 후기를 미친 듯이 찾아보았을 때 보았던, 한 선생님의 글이 떠올랐다. 똑같은 월급 받고 똑같은 공무원 신분인 교사인데, 누구는 허리 숙이며 인사하러 다니고, 누구는 교무실에 앉아 자기가 90도 인사하는 것을 받아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잡상인로 오해 받고 교무실에 출입금지 당한 적도 있다는 둥, 교문 앞 경비 아저씨에게 쫓겨날 뻔한 적도 있다는 둥, 정말이지 웃픈 댓글들이 줄줄이 달 있었다.


나는, 이제 12년이면 대충은 다 안다고 생각했다. 어찌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누구라도 하기 싫을 것 같은 그런 일, 지금까지 교직 생활에서 내가 하게 되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그런 일을, 그렇게 웃으며 담담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정말 전혀 몰랐었다. 웃기게도, 이젠 내가 특성화고에 근무하게 되었으면서도, 그런 일들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남의 일이었으면, 했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내가 이 학교 소속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오전 회의가 끝나고 나는 나와 함께 일할 새 부장님을 만났다. 부장님은 나를 여러 교무실로 안내하여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그 곳에서 나는 부장님의 소개로 내 전임자와 마주쳤다. 그녀가 마침 학생들의 작년 수행평가지를 정리하여 버리고 있는 중이었기에,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시험지를 보여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아이들의 수준이 궁금했다. 그리고 어떤 내용을 가르쳐야 하는지도. 시험지의 수준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한창 살펴보던 중, 나는 답안지에 ~(물결) 표시를 한 답안을 발견하곤 그녀에게 었다.


"선생님, 답을 이렇게 쓴 것도 맞는 거에요?"

"아, 그거 n이에요. 선생님"


n? n이라고? 나는 다시 시험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은 파도 표시 같은 알 수 없는 문자를 n으로 해석 내시다니. 워낙 아이들의 평균 점수가 낮았기에 뭐라도 쓴 애들은 점수를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았다. 고등학생이 n을 이렇게 쓰나? 나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지난 10년간 영어 단어를 안 외우는 아이들은 많이 만났어도 알파벳을 못 쓰는 아이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행복한 학교에만 있었던 걸까? n을 쓸 줄 아는 아이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학교라면, 그 정도면 훌륭한 학교였던 걸까? 내가 할 말을 잊은 채 계속 시험지만 들여다보자 그녀가 웃었다.


"그거, 제가 칠판에 쓴 필기 그대로 외워서 쓴 거에요."

"선생님이 답을 써 주셨다고요?"

"여기 애들은 수행평가를 보기 전에, 수행평가지와 똑같은 학습지를 주고, 답을 채워 주고, '여기서 그대로 나오니까 답만 외워'라고 해 주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전체 학생이 기본 점수만 받는 반도 있을 거에요."


나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라도 썼으면 다행이었고, 40% 정도는 백지를 낸 아이들. 제대로 알고 답을 적은 아이들은 20%도 채 되지 않았다(물론 답만 달달 외운 아이들 포함이다.). 수행평가지를 미리 주고 답을 알려 주고 그대로 다시 복사해서 시험을 다고..... 나는 정말이지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막막함을 느꼈다. 수행평가를 보던 중 한 문제의 토씨 하나로 민원을 제기하던 작년 아이들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공부를 잘 하던 학교도 아니었는데.). 그녀가 학교를 완전히 떠나기 전 묻고 싶은 게 많은데 멈춰버린 머릿속에서 무얼 물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는 간신히 말을 꺼냈다.


"수업은 어떻게 하셨어요?"

"음... 매 시간 30분씩만 수업했어요. 여기 아이들은 30분 수업도 힘들어 해요. 적절히 당근 많이 줘 가면서 수업 하시면 될 거에요. 대신, 수업에 부담은 없어요. 공부를 많이 안 해도 되니까요."


진도, 시험 같은 교과 운영에 대한 여러 가지 팁을 주고 받은 후(주로 일방적으로 내가 받는 입장이었지만)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전임자는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교무실을 떠났다. 점심 식사 후 오후로 이어지는 일정 내내, 머릿속에 계속해서 알파벳을 그리려고 노력했던 시험지들이 맴돌았다. 발령 받던 날보다 눈앞이 더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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