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IT 선지자들의 이론이 점차 현실화되다
공유경제, Uberfication, 온디맨드 이코노미, O2O, 핀테크, Gig Economy, App Economy 등등...
요즘 부상하는 경제/IT 키워드들을 보면 결국 20년 전 IT 선지자들이 외쳤던 "디지털 경제(Digital Economy)"의 청사진이 제2의 디지털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 혁명을 거치며 비로소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제1의 디지털 혁명 이후의 Time lag을 거쳐서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디지털화의 대상이 제품, 자본(금융자산)에서 서비스, 노동, 실물자산으로 보다 확장된 것이다. 동시에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을 넘어 개개인에 맞추어 경험을 개선시켜 줄 수 있는 시대로 바뀌기도 하였다.
제1의 디지털 혁명, 즉, 90년대 초반 개인용 컴퓨터(PC)와 인터넷이 사무실을 넘어 가정으로 보급될 때에는 '전자상거래(e-Commerce)'가 주목을 받았다. 상품이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서 주문하고 배송되는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 상품은 대체로 제품(goods)으로 국한되어었다. 한편, 투입 측면에서는 자본이 IT 혁명을 타고 전 세계로 이동되는 시대가 열렸다. 대부분 B2B 거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지만, HTS, 인터넷뱅킹 등은 소비자 체감한 소매금융서비스의 디지털화도 있었다.
제2의 디지털 혁명, 즉, 스마트폰과 무선인터넷이 보급된 현재에는 디지털화의 대상이 제품을 넘어 서비스와 노동, 실물자산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차이점이다. 예를 들어 공유경제 현상을 보면, 이제는 집, 자동차와 같은 대표적 가계 자산이 생산하는 서비스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수요자에 매칭 하여 공급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전자상거래는 제품의 온라인 주문을 통해서 집으로 배달받는 것과는 또 다른 흐름이다.
태스크 래빗, 메커니컬 터크와 같이 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를 직접 매칭 하는 플랫폼도 이전과는 다르다. 대표적인 경험재(experience goods)인 서비스는 사용하고 나서야 질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인데, SNS/빅데이터 등에 힘입은 평점/피드백 시스템으로 사전에 서비스의 질을 탐색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정보 비대칭성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 비대칭이 키워드인 금융에서 대두되는 핀테크는 최근 너무도 많은 이야기가 나와서 말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핀테크를 넘어 새로운 디지털 경제를 만들어 갈 것으로 기대되는 것으로는 "블록체인"이라는 혁명적인 기술이 있다. 이제는 디지털 상에서도 제3의 신뢰 기관이 없이도 신뢰할 수 있는 시대를 열고 있다. 핀테크 측면에선 금융 중개기관(financial intermediary)의 필요성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금융과 같이 신뢰가 필요한 비대면 거래의 변화를 보다 확장하여 블록체인에 기반한 보다 일반적인 변화를 상징하는 아이디어는 DAC(Decentralized Autonomous Corporation; 분권화된 자동 기업)이다. 조직을 CEO가 아닌 프로토콜에 의해서 분권적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이런 아이디어는 1원 1표의 주식회사 운영 원리, 1인 1표의 민주주의의 운영원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구현해 낼지 모른다. 비트코인의 스마트 계약을 보다 일반화하여 "Turing complete"한 컴퓨팅 플랫폼을 제공하려는 Ehtereum(에테리움, 이더리움 등으로 발음)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여 상상하기도 버겁다. IoT의 주요 통신 프로토콜로 이더리움을 채택한 사례가 있는 것에서 보듯이 머지않아 응용 사례들이 우후죽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흐름은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이야기한 'Atom(물리적 상품)'이 'Bit(디지털 상품)'로 변화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인다. Ditalization이 보다 심화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O2O가 이러한 과도기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용어라고 생각된다.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경제활동,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점점 더 온라인의 영역으로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전통적인 로컬 서비스마저 온라인화 되고 있는 것이 O2O의 중요한 단면일 테다.
점점 상용화되고 있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도 디지털화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밀그램(Milgram)이 제한 ‘현실-가상 연속체’에서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나 증강가상(Augmented Virtuality)이 O2O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점점 물리적 공간에서 디지털 공간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어느 시점에 있고, 미래는 어떻게 올 것이라고 정확히 알지는 못할 테지만, 어찌 되었든 이런저런 변화가 읽히는 것은 사실이다. SF작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은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은 뿐이다.(The future is already here — it's just not very evenly distributed)"라고 했다. 이미 우버 X퇴출, 핀테크 규제, 배달앱 수수료, 카카오 대리운전 진출 등의 논란을 겪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제2의 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기성 제도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화가 중요한 경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상황에서 "기계와의 경쟁"이 닥치고 있는 양상이다.
컴퓨터 공학자 앨런 케이(Alan Kay)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라고 말했다. 어떤 미래가 올지 정확히 예견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흐름을 수동적으로, 비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지 파악하고, 논의하여 우리의 것으로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테다. '옴니아'로 '아이폰'에 대적하려 했던 것이 불과 5년여 밖에 안되었다. 그 사이 노키아는 불타버렸고, 팬택도 사라졌다 새로운 주인에게 넘겨졌으며, LG전자의 부진도 결국 스마트폰의 흐름을 재빨리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이 앞으로는 실리콘 밸리뿐만 아니라 옆 나라 중국에서도 넘어올 태세다. 빠른 대응을 통해서 우리의 미래를 보다 긍정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다.
(추신: 2017년에 저장했던 글을 조금만 다듬어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