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현재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
브런치 첫 글로 <카카오 택시>를 통해서 한국 경제의 현재를 조명해 봤었는데, 이번 주에는 비슷한 류의 교통 관련 앱인 <풀러스> 사태로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 <카카오 택시>나 <풀러스>나 모두 교통서비스라는 특정 산업이지만, 이 논란은 정부 주도의 발전을 거쳐서 선진국의 문턱에서 저성장 위기를 맞은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규제>와 <혁신>이라는 큰 틀의 충돌을 미래를 위해서 승화시키지 못하고, 과거의 사고방식으로만 처리하려는 모습은 비단 교통앱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 전체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번 <풀러스> 사태는 <최종회>를 향해 빠르게 전개되는 한편의 재미있는 '한류' 드라마다. 한국 경제 특유의 상투적이고, 진부한 클리쉐가 반복되고 있지만, 중간중간에 규제당국자들을 비롯한 이해당사자들의 태도가 재미를 더해주는 한국적인 드라마다. '정부 주도로' 4차 산업혁명을 외치고 있는 한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 경제의 쌩얼이다.
이러한 '드라마'들은 대개 도입된 지 오래된 행정규제(법률ㆍ대통령령ㆍ총리령ㆍ부령과 그 위임을 받는 고시(告示), 조례, 규칙 등)를 둘러싸고 이를 집행하는 공무원(중앙 및 지방), 이러한 행정규제와 집행기관의 틀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사업을 해왔던 대기업, 중소기업 등의 기성 사업자(incumbent), 그리고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들고 나오는 혁신 사업자(innovator)가 주요 배역을 맡고 있다. 그리고 언론, 정치인, 법원, 소비자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도입된 지 오래된, 즉, 도입 당시의 사회상에 맞춰 도입했다가 이제는 취지가 무색해진 법을 고칠 권한과 책임이 있는 국회의원, 그리고 이 모든 행정, 제도가 굴러가게 하는 자금(세금)을 제공하는 납세자이자, 이러한 결과에 따라 새로운 서비스, 경험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소비자는 이 판의 조연인 것도 특징이다.
이번 드라마의 <발단>부터 <전개>, <위기>, <절정>까지를 기사를 통해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좋지만, 사실 제목에서 내용들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
<발단>
1주년 맞은 ‘풀러스’, 출·퇴근시간 선택제 도입한다
https://buff.ly/2hUhPQQ
발단은 카풀(carpool) 앱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인 풀러스가 출퇴근 시간 선택제를 시범 도입하면서 시작된다. 현행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81조는 자가용 자동차의 유상운송을 금지하고 있지만, '출퇴근 때 승용자동차를 함께 타는 경우'에는 유상운송이 가능하다는 예외를 두고 있다.
기존에 풀러스는 출퇴근 시간을 아래와 같이 정하고 서비스를 합법적으로 제공하고 있었는데,
– 출근 : 평일 오전 5시부터 오전 11시까지
– 퇴근 : 평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주말 및 법정 공휴일 전날인 경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이를 유연근무제 근로자 및 휴일 근무자를 위해서 출퇴근 요일과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지정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편한다고 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다. 즉, '통상'의 출퇴근 시간이 아닌 시간에도 카풀서비스가 가능해지게 되면서 택시 등 운수업계와 충돌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그나마 지켜주던 오래된 법 조항에 대한 해석 문제에서 이해관계자 간의 충돌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나라에서 '통상'의 출퇴근 시간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다)
<전개>
풀러스 ‘출퇴근 시간선택제’ 도입…서울시 “고발하겠다” 맞불
https://buff.ly/2zsc6eI
'한낮 카풀' 놓고 서울시-스타트업계 충돌…위법성 논란(종합)
https://buff.ly/2m84U26
이번엔 카풀 앱… 또 불거진 승차공유 불법 논란
https://buff.ly/2yHVFf7
11월 6일부터 '출퇴근 시간선택제' 시범서비스를 실시하자, 서울시가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풀러스> 드라마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풀러스가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한국 갤럽과의 설문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근로자 중 3명 중 1명에 해당하는 32.5%는 통상적인 출퇴근 패턴 ‘주 5일, 하루 8시간’에서 벗어난 비정형 근무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다고 밝힌 지점이다. 교통혼잡이 없는 시간대에 카풀서비스를 하겠다는 명분이라는 것은 짐작이 가지만, 사실 이러한 조사와 정책은 서울시와 같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해야 할 일이다. 유연근무제에 맞추어 새로운 교통서비스가 필요한지, 어떤 서비스가 가능한지 조사하고, 정책적 대응을 내는 것은 일반적으로 민간기업이 아니라 정부나 지자체의 업무에 가까운 것이다. 어찌 되었든, 풀러스는 시범서비스를 강행했고, 서울시는 불법 유상운송 알선과 택시사업자 등의 권익보호라는 명분으로 풀러스를 고발한다.
<위기>
서울시, 카풀 앱 '풀러스' 수사의뢰…"불법 유상운송 알선"
https://buff.ly/2zt92z9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카풀앱 고발에 깊은 유감..스타트업 위축”
https://buff.ly/2zs2G2W
‘출퇴근 시간 선택제’ 카풀 앱 고발한 정부·지자체…“규제 완화” 외치더니 혁신 어깃장만 놓나
https://buff.ly/2m56G49
[참고] "국토부·서울시, 카풀앱 풀러스 고발" 보도 관련
https://buff.ly/2yITaJu
평창동계올림픽때 ‘우버’ 허용되나..국내 기업들, 역차별 우려
https://buff.ly/2AlCsMD
"관련 법의 도입 취지를 봤을 때 카풀은
월∼금요일 이른 오전과 늦은 오후 출·퇴근 시간에 운영해야 한다"
"차가 막히지도 않는 낮시간과 주말까지 범위를 넓혀
운전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은 법의 카풀 도입 취지를 확대 해석한 것"
풀러스를 경찰에 수사 의뢰한 서울시 관계자의 발언이다. 서울시의 입장에서도 분명 일리가 있다. 여객자동차법에서 예외를 둔 것은 교통혼잡 시간대에 카풀을 장려하기 위함이었지, 자가용 출퇴근자나 소유자의 부업을 위한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 공무원의 주장을 따지고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말 그대로 권위에 기반한 일방적 해석이다.
'도입 취지'에 대한 일방적 해석,
이른 오전과 늦은 오후가 출퇴근 시간이라는 일방적 해석,
낮시간과 주말에는 차가 막히지 않는다는 일방적 해석이 그것이다.
먼저, 도입 취지의 해석은 법률적 자문을 거친 <풀러스>의 주장과 다툴 여지가 있는 것이지 공무원의 생각이 무조건 옳을 순 없다. 둘째, 이른 오전과 늦은 오후가 출퇴근 시간이라는 것은 유연근무제, 야근, 주말 근로가 엄연한 현실을 외면한 공무원의 일방적인 생각일 수 있다. 셋째, 대낮과 주말에도 차가 막히는 경우가 많다.
정확한 결론은 법원을 통해서 나오겠지만, 오래된 법의 도입 취지를 가지고 다투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는데 법과 공무원의 태도가 바뀌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편, 이번 논란에서는 관련된 정부 부처 및 지자체에 따라서 다양한 목소리도 관찰된다. 스타트업에 대해서 고발로 대응한 서울시의 자세는 '풀러스'뿐만 아니라 여타 경제주체들에게도 영향을 주는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 '새로운 것은 우리의 허락이 없으면 함부로 시도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경고다. '4차 산업혁명'으로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중앙정부와 거리가 먼 정책적 시그널이다.
모든 논란의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이 와중에 보도참고자료를 내면서 하는 말이, "우리가 고발한 것 아니다. 서울시가 고발한 것이다."라는 나름의 '팩폭'을 선사하는데, 그러한 행위의 취지가 무엇인지 안타깝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오늘날의 공명심(?)인 것은 아닌지 말이다.
또한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강원도의 외국인을 고려한 '우버' 한시적 허용은 민주공화국이라는 21세기 대한민국 '관'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상상은 민간이 더 하고 시도해야 하는 것들인데, '관'이 그들의 성공을 위해서 기존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시적 허용'과 같은 특수한 법해석을 내놓는 모습인 것이다. 여전히 관주도의 사회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절정>
풀러스, 정부 고발에도 ‘낮시간 카풀’ 강행
https://buff.ly/2yJe5My
카풀앱 풀러스 '출퇴근 시간선택제' "법적 판단 받아보겠다"
https://buff.ly/2zGBtKJ
이번 드라마는 서울시의 고발에도 "법적 판단을 받아보겠다"라는 풀러스의 정면돌파로 절정으로 치닿는다. 최근 불법파견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파리바게트의 행정소송과도 일부 겹치는 모습이다. '로펌'의 자문을 받았다는 <풀러스>의 정면돌파가 과연 어떤 결말을 불러올까? 이런 논란을 양산하는 행정규제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입법부와 행정부는 과연 어떤 대응에 나설까?
일말의 기대를 한다면, 우리가 이러한 반복되는 드라마에서 교훈을 얻고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소프트웨어, 데이터, 플랫폼, AI 등 디지털 기술이 앞으로 더 많은 영역에서 기존의 프로세스를 대체하거나 보완해 나갈 것이다. 생산성이 높아지는 한편에서 기성 사업자의 적응이 늦어지는 경우 도태되는 상황이 부지기수로 발생할 수 있다. 혁신에 의한 충격을 사회안전망을 통해서 흡수하지 못하고, 이 모든 사안에 대한 행정규제의 집행과 해석이 기존 사업자의 보호에만 머물게 된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