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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교경제학자 Jan 06. 2018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시장

유연안정성은 왜 필요한가?

기회를 포착하다, 기회를 잡다


일반적으로 성공은 기회를 잡을 때 나타난다. 그러나 관용어처럼 쓰이는 이 말을 한 번 더 살펴보면 성공은 "기회를 포착당할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기회는 range고, 기회를 잡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어떤 성공은 point이다.

기회는 방향과 깊이를 가진 범위, 성공은 그 중에 한 점



성공은 개인의 노력과 재능뿐만 아니라 시대나 시장의 요구와도 맞아떨어져야 한다.

개인의 노력과 재능은 어떤 기회를 향한 노출(exposure)의 범위(range)를 결정하는 것이고,

시대나 시장의 요구는 누군가가 노출한 어떤 것 중에서 하나를 취사선택하여 한 점으로 만든다.


예컨대, 운동선수로써 뛰어난 재능을 보유하거나 노력을 한 사람은 운동선수로써의 성공에 대한 노출을 시도한 것이고, 그 선수의 어떤 '스타일'이 당시 지도자(감독, 코치), 팬들의 요구 등에 부합한다면 그의 노출은 성공이라는 한 지점에 포착당할 수 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라고 할지라도 노출의 범위가 시대의 요구와 어긋나 있다면, 그는 '비운의 천재',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 될 수 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운칠기삼'에서의 운(luck)도 결국은 한 개인이 컨트롤할 수 없는 어떤 시대의 요구라는 것이 개인의 능력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선인들의 경험이 묻어난 격언이 아닐까?


결국 성공은 기회를 포착할 때가 아니라 기회를 포착당할 때 발생한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성공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노출이 있다 보면 밟힐 확률이 높아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조금 응용해 본다면, 소위 "탈쥐효과"같은 것에도 적용해 볼 수 있겠다. 예컨대, LG 트윈스에서 만년 유망주로 있던 박병호가 넥센으로 이적하면서 대한민국 거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가진 어떤 체격적 조건이나 야구 재능과 같은 physical 한 펀더멘털이 갑자기 폭발했다기보다는 그의 잠재력이 폭발할 수 있게 해 준 코칭스태프나 동료 선수와의 케미 등이 멘탈에 미친 영향이 더 큰 역할을 했을 수 있다. 나아가 그랬던 국가대표 거포가 미국에 가서는 마이너리그에서만 맴돌다 다시 리턴한 것도 '국내용'에 가깝게 노출되어 있던 것을 메이저리그의 요구에 맞게 바꾸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앞의 논의를 조금 더 확장해서 노동시장 전반에 적용해 본다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스포츠에서 수시로 나오는 '트레이드'에 따라서 기량이 만개하거나 폭망 하는 선수들이 나오는 예에서 보듯, 사람도 그가 선택한 업이나 직장이 반드시 그가 학교 졸업 후에 선택한 그것이 아닐 수 있다. 개인의 적성이나 꿈 못지않게 부모의 강요나 주변의 시선, 학벌이나 스펙 등에 따라서 직업이나 직장이 결정되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경직되고 이중구조화된 노동시장 상황에서는 커리어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다. 전환에 따른 리스크의 분산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A라는 회사에서 저성과자로 낙인찍힌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B라는 회사에서는 S급 인재가 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정보의 비대칭과 불신이 넘치다 보니 이직에 대한 시선이 부정적이다. 이런 가운데 이직은 개인에게 있어서는 위험이 높은 도전이자, 기업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인재 이탈일 수 있다. 이직이 윈윈보다는 모두가 잃는 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임의 룰이 그렇게 세팅된 영향이 크다.


공기업, 공무원 선호 현상에서 보듯이 평생직장, 혹은 철밥통의 신화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도 노동시장의 경직성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시험 한 번으로 평생의 level를 결정하는 대학입시시험부터 평생의 업을 좌우하는 공시까지 너무도 경직적인 인재 배분의 기제가 소위 좋은 일자리 섹터에서 자리 잡고 있다 보니, 노동시장에서의 '트레이드'는 더 발생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그나마 비공채 출신 공무원들이나 전문직 채용 등이 나타나고 있지만, 대세를 바꾸기에는 여전히 미약하다.


그러나 북구와 '유연안정성'을 지향하는 노동시장의 경우에는 '트레이드'가 윈윈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노동시장 유연성: 노동시장의 환경 변화와 수요 변화에 대응하여 신속하게 고용, 임금, 근로시간 또는 노동력 숙련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능력

노동시장의 안정성: 고용안정, 고용 상실 시 최소 한도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소득보조수단 또는 노동시장에서의 고용가능성 제고를 통해 근로자의 소득 흐름의 안정적 확보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시장의 특성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으면, 직업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반대의 경우에는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유연안정성"은 그 둘이 반드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정태적이 아니라 동태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유연안정성은 A라는 직장이 사라지거나 해고당하더라도 비슷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B라는 직장으로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기대가 성립할 때 유효한 개념이다. 올해 A라는 직장에 있다가 내년에 B라는 직장에 있는 결과 사이에는 "타의적 해고~자발적 이직"과 같은 스펙트럼이 높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배경이 무엇이든 노동자는 직장이 바뀌면서도 소득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동시에 기업은 사업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유연하게 대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자리가 사라지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우리는 일자리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우리는 노동자들을 보호할 것이다.


아래 뉴욕타임스의 기사에서 스웨덴 노동부 장관의 말은 유연안정성이 지향하는 바를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The jobs disappear, and then we train people for new jobs. We won't protect jobs. But we will protect workers."(일자리가 사라지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우리는 일자리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우리는 노동자들을 보호할 것이다."


유연안정성에 대해서 사회 구성원의 타협이 가능하다면, 노동시장 전반에 긍정적인 외부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던 "트레이드"가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게 비용을 전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쉽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A라는 직장에 맞지 않았던 갑은 자신에 맞는 B라는 직장으로 옮길 수 있게 될 확률이 높아짐에 따라서 개인의 생산성과 행복이 높아질 수 있는 가운데, 동시에 갑을 고용하던 A라는 기업도 A기업에 더 맞는 을을 다른 기업에서 영입할 수 있다. 혹은 A라는 기업 자체가 영위하던 산업이 완전히 사양화될 때, A라는 기업이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옮겨가기 위해서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기에도 이러한 체제는 더욱 저비용 고효율을 나타낼 수 있다. 그 결과 과거보다 노동시장과 산업 전반의 활력이 높아질 수 있다.


유연안정성이 달성 가능하다는 기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운데서 중재하는 정부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 산업에 대한 전망,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 방지 등등 많은 난관들을 극복해야 할 테지만, 어렵더라도 반드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 못하다면, 과거 일본처럼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지고, 사회 전반의 자원이 좀비기업에 물려서 나라 전체의 활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조선산업을 보면, 우리도 일본과 비슷한 길을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혁신의 빠른 도입과 확산이 예견되고 있는 시대에 여전히 60~70년대 개발도상기 시절의 교육시스템과 노동시장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하는 것도 바로 유연안정성 모델이어야 한다. 교육은 개인들이 자신들의 생계와 행복을 위해서 가장 적절한 분야에 노출될 수 있도록 하되, 그 노출의 범위와 방향이 평생에 걸쳐 조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지금과 같이 입시 위주가 아니라 평생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 노동시장은 지금처럼 평생 안정적이고 높은 소득이 보장되는 1차 노동시장과 불안과 발전 가능성이 낮은 2차 노동시장으로 이분화되고 경직적인 시장이 아니라 산업의 변화에 따라 노동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동시에 교육과 이직 지원을 통한 고용가능성의 제고가 가능한 유연안정성을 지향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모두의 행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지는 쪽보다는 앞서가는 쪽에 가깝도록 노출하는 것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모두가 될 수도 있는 '비운의 천재'가 더 행복한 삶을 살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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