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죽어가는 어떤 경제에 대한 칼럼을 읽고...
재미있는 칼럼을 하나 읽었다. 하준경 교수의 "식권은 많은데 밥이 없다면…"이라는 제목의 동아일보 칼럼이다. 노후대비를 위한 저축, 즉, 미래의 밥 청구권은 점점 더 많아지는데, 밥을 더 많이 짓게하는 방향, 즉, 생산으로 자원이 돌지 않고, 토지와 같은 자산에만 돈이 몰리면서 오히려 밥을 지어야 할 젊은이들에게 짐이 된다고 지적하는 글이다.
우선 논의를 진행하기 전에 이 칼럼에 대한 두가지 반론이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먼저, 생산을 꼭 국내에서만 해야하냐는 반론이다. 저축을 해외에 투자함으로써 미래 소득을 국내 생산인구가 아닌 해외로부터 기대해 볼 수 있다. 상품수지는 적자인데 소득수지는 흑자인 고령화 선진국 일본이 당장의 사례이다. 이론적으로 국경간 자본이동이 가능하면, 해외 '젊은이'에게 투자(대출)하여 만들어진 생산물에서 몫을 떼올 수 있다. 세대 간 주고 받기가 꼭 국내에서만 일어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인구구조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아니지만, 해외직접투자는 중국 공장, 베트남 공장, 폴란드 공장, 미국 공장, 멕시코 공장 등등 국내 주요 제조업 대기업들과 그 협력협체들이 해외에 진출하면서 점차 늘고 있는 추세이다. 해외증권투자는 경상수지 흑자의 영향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우리나라는 2014년에야 대외 자산이 대외 채무(외국인의 국내투자)보다 많은 대외 순투자국에 진입하였고, 투자수익률도 낮은 편으로 나타난다.
두번째, 제목처럼 식권(밥 청구권)은 많은데 밥은 없다면, 일종의 인플레가 발생해야 한다. 넘치는 식권값이 떨어지고, 귀해진 밥값이 상대적으로 올라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노동에 대한 대가, 즉, 임금이 높아져야하고, 자본에 대한 대가인 이자, 배당 등이 낮아져야 할테다.
그런데 현실은 생산성 증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체한 실질임금이 이슈가 되고 있는 형편이다. 우측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2008년 이후 노동생산성이 12%(100->112.2) 증가할 동안 임금은 4.3%(100->104.3) 밖에 오르지 않았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가설, 즉, 성장잠재력(공급측) 하락과 경기회복 부진(수요측)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주장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인구 성장 둔화 등으로 성장잠재력이 하락하는 가운데 소비성향 하락, 해외투자 증가, 정부 재정건전성 기조 유지 등으로 수요도 동시에 부진한 상황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치를 장기간 하회하는 물가상승률이 수요와 공급의 동시 부진에 따른 결과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이른바 "임금 없는 성장" 혹은 "생산성과 임금의 디커플링" 현상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도 관찰 된다. 가장 유명한 주장은 "제2의 기계시대"(에릭 브린욜프슨, 앤드류 맥아피 저)에서 <The Great Decoupling>로 소개된 것이다. (아래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참조)
노동생산성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데, 1인당 실질 GDP, 민간 고용, 중위가구 소득은 1980년대 이후 시차를 달리하며 벌어진다. 생산성, GDP 등으로 표현되는 경제적 풍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지만, 이에 대한 일반 노동자들의 혜택(임금, 고용전망) 등은 주춤한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격차"의 원인으로는 일반적으로 자동화(자본의 노동 대체), 세계화(상품/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노동자 협상력 약화(노조 와해) 등이 일반적으로 거론되는데, "제2의 기계 시대" 저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컴퓨터, 인터넷 등의 디지털 기술이 경제 전반에 확산됨에 따른 경제의 디지털화이다.
"식권"이 많아져 높아져야할 임금은 너무 낮아서 임금(소득) 주도 성장,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정책이 나오는 형편이고, 물가는 한때 디플레를 우려할 만큼 기조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해서 정책금리 인상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교과서적 직관과는 배치되는 현상이다. 기술이 미친 영향(BOX 참고)이 적지 않겠으나, 칼럼에서는 다른 포인트를 지적하고 있다.
칼럼의 재미있는 포인트는 노후대비 자금이 안전자산을 찾아서 애초에 '생산된 자본'이 아닌 '토지'에 몰리면서 자본의 대가가 싸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땅값이 높아져 생산비용이 높아진다고 보는 것이다. 노후대비를 위한 과잉저축이 자본 과잉에 따른 생산비용 하락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비용이 높아지도록 하는 메커니즘에 토지에 대한 투자가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토지에 대한 저축의 쏠림을 조금 확대해서 "지대추구 행위"로 확대해 본다면, 제법 일리있는 지적일 수 있다. 물론 실증 연구로 뒷받침 되어야겠지만... 땅처럼 공급이 제한된 곳에서 통행세처럼 삥을 뜯거나 착취해가는 사례가 우리 경제에 광범위하게 존재하지 않던가? 자신이 생산한 것에 비해서 구조적으로 높은 보상을 받는 직종들이 대표적이고, 생산물 시장의 독과점을 이용해서 소비자에게 삥을 뜨는 것도 적지 않아 보이고... 그런 어떤 특권들을 이른바 스타트업들이 파괴하려하면 규제나 기성공급자간의 카르텔로 막기 급급한 경우도 많고...
젊은이들의 생산비용이나 생산을 위한 기회비용이 높아진 것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낮추면서 결혼 및 출산 포기를 하는 현상을 이른바 '자발적 구조조정'이라고 지적한 것은 칼럼의 백미이다. 출산률이 낮은 것이 혼인률이 낮기 때문이며, 결혼을 안하거나 미루는 것이 주택마련 등 경제적 이유가 중요한 배경이 아니던가? 생애기대소득의 기조적 하락을 예측하고, 한정된 예산을 가족, 자식보다는 본인을 위한 소비에 바쁜 실상을 대변하는 YOLO 열풍과도 어딘가 맞닿아 있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 마냥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저축보다 그때 그때 버는 소득을 현재에 다 써버리는 역설적인 '달관'에 가깝다.
젊은이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낮은 사회에서는 기성세대들의 저축에서 기대하는 자본수익률도 낮을 수 밖에 없는 사회다. 특히, 생산성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생산비용을 높혀서 기업가정신을 좌절시키는 지대추구행위는 미래를 더 빨리 갉아먹는다.
'헬조선'과 같은 신조어는 이러한 경제 구조에서 동시에 노출된 세대들이 내뱉는 아우성이다. 사람 값에 비해서 땅 값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나라에 멸칭이다. 기술로 인해서 세상이 더욱 더 빠르게 변하고 있는 가운데, 고도 성장기에 대규모 자산을 축적한 세대가 생산성이 높은 곳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비용을 높이는 방면으로 투자가 계속된다면, 청년 세대의 "자발적 구조조정"이 항구적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 발딛고 있는 땅에서는 점점 더 암울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다수의 은퇴 자금을 미래 언제가는 모두 해외에 투자해야 하거나, 감당하기 쉽지 않는 해외이민자를 받아들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청년세대의 아우성을 나약함으로 빈정되지 말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