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적'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에 대해서
올 상반기 최고 화제작이었다는 <나의 아저씨> 총 16편을 지난 몇주 사이 완결했다.(주:이 글의 초안은 2018년 여름에 작성하였습니다.) <미생>의 향기와 여운이 진하게 배여있는 김원석 PD의 또 다른 명작이었다. 이 명작을 본방이 다 끝나서야 몰아보기 시작한 것은 어떻게 보면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다. 드라마를 다 보고서야 알게된 안타까운 <논쟁>들, 예컨대, "'나의 아저씨', 기득권 아재들의 피해자 코스프레"따위나 중년 아저씨와 20대 여성의 불편한 사랑 따위의 평으로부터 오염되지 않는 채 볼 수 있었기에 더욱 행운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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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내가 본 <나의 아저씨>는 <인천 여자 아동 학대 사건>을 떠올리게 해주는 드라마였다. 간략히 요약하면, 우리나라에 인간미 넘치는 비공식적 사회안전망이 아니라 건조하고 제도화된 사회안전망에 대한 고민과 투자를 더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아저씨(이선균)-나(아이유)의 관계에서 잘 보여주고 있었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지만 점점더 만연해 가고 있는 '사회적 위험'을 '우연한 인연'으로는 해결할 순 없기 때문이다.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 '나'(아이유)의 든든한 커뮤니티로 등장하는 <후계동>이나 후계조기죽구회, 동네 사랑방 '정희네', 이선균 삼형제 등은 비공식적 사회안전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태어나면서 맺게된 인연(가족), 같은 동네에서 자라고,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맺게된 인연(후계동) 등과 같이 '우연한 인연'을 대표한다. 드라마에서 아이유는 후계동 달동네에서 살았지만, 이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이선균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그녀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홀로 간호하며 빚쟁이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믹스 커피로 끼니를 떼우며 비정규직과 알바를 전전하는 아웃사이더이자 잠재적 범죄자로 계속 남았을 것이다.
이선균 삼형제와 같은 가족과 후계조기축구회 동창들이 모여사는 마을
드라마가 언제나 그렇듯이 이상과 현실의 갭은 크다. 연달아 히트를 쳤던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소구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가 한 동네 친구들, 한지붕 기숙사 친구들 등이 만드는 인간미 넘치는 일상생활이었던 것처럼 <나의 아저씨>도 비슷하게 우애 넘치는 삼형제와 우정이 넘치는 친구들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 주요 내용으로 나온다. 그러나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은 '노부모 부양이나 유산을 투고 다투는 형제'나 '층간 소음이나 재개발 등으로 다투는 이웃'이라는 것이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런 척박한 현실이 드라마에서 상정하는 인간다운 공동체에 대한 갈망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과거의 그 공동체를 그리워하고 있지만, 사실 이제는 쉽게 돌아가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대가족 제도, 마을 공동체 등은 농업 사회에서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 속에서 크게 해체되어 버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못살던 시절에 주로 영위했던 가족과 마을 커뮤니티가 보육, 부양, 상호부조, 범죄예방 등의 역할을 수행해 왔었지만, 급속한 경제 발전 속에서 더 이상 가족과 마을 커뮤니티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는데 있다.
이땅의 아저씨 속 아이유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아저씨가 아니라 사회보장제도다
급속한 발전 속에서 '우연한 인연'들의 기반은 해체되어 왔지만, 그 공백을 '비인간적' 사회보장제도가 매꾸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현실이다. 예를 들어, 축복받아야 할 기대수명의 연장이 급속한 고령화라는 재앙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고령'이 의미하듯이 생산을 통해서 소득을 벌기 보다는 노후를 위한 소비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이를 뒷받침할 연금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자식들이 부모님을 모시던 것이 사회적 상식이었으나 이제는 서구식으로 부모와 자식간의 경제적 유대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연한 인연에 기댄 사적 이전이 아니라 제도에 기반한 공적 이전으로 노후를 지원해야 하는 시기다.
과거에 대한 향수는 향수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유대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졌다는 현실이며, 이러한 것이 미래에도 더 심화된다는 것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주인공 나('아이유')처럼 모두가 운 좋게 '인간적인 안전망'을 가지길 기대하는 것은 도로 한복판에 아이를 놓아두고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매우 '비인간적인 처사'다.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기본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할 때다. 물론 수입과 지출, 이민자에 대한 고려 등을 통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