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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교경제학자 Aug 06. 2021

테크 회사에서 일하는경제학자의 기쁨과 슬픔

여의도 10년을 지나 판교에서 이제 3년

판교는 한국의 실리콘 밸리라 불린다. 한국의 주요 테크 기업이 몰려있는 판교의 테크 기업에서 경제학자, 정확하게는 데이터 이코노미스트로 일한 지 만 2년이 지났다. 테크 기업에 웬 경제학자인가?


난 누군가 그리고 또 여긴 어딘가


생각보다 초반 적응에 애를 먹었다. 많은 것이 낯설었다. 멀리서 했던 막연한 기대와 현실의 괴리도 컸다. 회사도, 회사가 몸담고 있는 산업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었다. 나를 뽑은 부서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성숙할 대로 성숙한 대기업 싱크탱크에서의 생활 후 갓 도착한 판교의 그곳은 정말 낯선 곳이었다. 한국 아니 전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데이터 이코노미스트>라는 자리도 이곳에서 처음 만든 것이었다.


나는 지난 10여 년을 이코노미스트, 즉, 경제학자로 일했다. 처음엔 금융을 보았고, 2013년 비트코인을 연구하면서는 금융과 기술의 결합 격인 핀테크로 관심이 옮겨갔다가, 여의도 생활의 후반기는 경제와 기술의 결합한 방향으로 도메인을 확대하여 <디지털 경제(Digital Economy)>로 불릴 수 있는 연구에 매진했다. 디지털 카르텔, 디지털세, 인공지능 자동화와 일자리, 아마존 효과 등 디지털 경제의 다양한 각론들을 보고서로, 때로는 컨설팅 프로젝트로 고민할 수 있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비트코인부터 핀테크, 디지털 경제까지 기술이 세상을 빠르게 바꾸고 있는 모습을 연구하면서 가장 크게 와닿은 말이 하나 있었다. 소설가 윌리엄 깁슨이 말한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The future is already here. It's just unevenly distributed)"라는 표현이다. 정말 그랬다. 세상은 갑자기 바뀌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충분히 인지하기 전 어디선가에서 먼저 바뀌고 있었다.


2013년 가을에 출장 갔었던 샌프란시스코 콘퍼런스가 딱 그랬다. 당시 콘퍼런스의 주제가 "Creative Destruction in Business and Economic Thinking"이었다. 워딩은 달랐지만 현재 우리 시점으로 번역하면 "제4차 산업혁명"과 다를 바 없는 주제로 열린 콘퍼런스였다. 2016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주창하고, 2016년 3월 "알파고 쇼크" 이후에서야 우리나라에 불붙었던 그것이 IT 최첨단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테크 분야뿐만 아니라 주요 경제학자들의 논쟁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글로벌 시대라지만, 태평양 사이에는 3년의 시차가 존재하고 있었다. 


로버트 고든과 에릭 브린욜프슨, 기술 비관론자와 기술 낙관론자의 토론


당시 콘퍼런스에서 있었던 세션은 조금 더 상징적이었다. 그 세션은 기술 비관론자와 기술 낙관로자의 토론 대결이었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로버트 고든 교수가 비관로자로, MIT의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현재는 스탠퍼드)가 낙관론자로 나와서 이른바 현장에서 끝장 토론을 펼치는 형태였다. 2013년 TED에서의 유명한 토론이 현장에서 라이브로 진행된 것이었다. 2013년의 그 토론은 3년이 지나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콘퍼런스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연사도 그대로, 토론 형태와 주제도 그대로였다. 


우리가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로 갑론을박을 펼치며 시끄러울 이전에 그 '혁명'의 진원이라고 할만한 실리콘 밸리에선 용어와 관계없이 현상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위와 같은 현장에서의 임팩트 있는 경험과 연구를 하며 공부한 것들이 쌓이면서 나도 많이 바뀌었다.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 이전에는 못 보던 무엇인가를 조금 더 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두 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거칠게 말하자면, 기술과 자본, 제도에 대한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디지털 경제라는 특정 주제에 나를 오랫동안 노출시키고 있다 보니 처음에는 시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만나는 사람들도 조금씩 바뀌더니 나의 행동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작게는 일하는 방식에 생산성 툴이라고 불리는 디지털 도구들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에버노트를 이용하다 회사 보안팀에서 사용을 막아서, 원노트를 사용하였고, 그마저 막히고 나서는 다이널리스트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조금 더 크게는 미래의 커리어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여의도 생활도 성장보다는 정체에 무게추가 기울어지고 있던 시기였기도 했다.


디지털 경제의 한 복판에 가야겠다!


디지털 경제라는 것에 나의 관심을 노출시키는데 머물지 않고, 나의 생활 자체도 노출시키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이 변화의 관찰자가 아니라 그 현장에서 함께 만들어가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오랜 기간 정들었던 자리를 떠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생각을 실행에 옮겼고, 결국은 여의도를 떠나 판교로 가게 되었다. 


할 배리언

테크 기업의 이코노미스트라는 것이 사실 낯선 자리지만, 실리콘 밸리에서는 제법 많은 경제학 전공자들이 테크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멀리는 2000년 초부터 구글에서 근무하고 있는 할 베리언 버클리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대표적인 미시경제학 교과서의 저자로도 유명하고, 칼 샤피로 교수와 공저한 <The Economics of Information Technology>라는 디지털 경제의 바이블과 같은 책도 낸 선구자격인 경제학자다.


글렌 웨일

최근에 베리언 못지 않게 최근에 주목 받은 경제학자도 있다. 국내에 번역된 <래디컬 마켓>의 저자이자, 시카고 대학 교수에서 마이크로소프트로 옮긴 글렌 웨일이다. (글렌 웨일에 따로 한번 다룰만 하다. 특히, 그가 참여한 'Data as Labor'라는 페이퍼는 앞으로 더 많이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의 경제 자문으로 유명한 노동경제학자 앨런 크루거도 우버에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아마존, 에어비앤비, 넷플릭스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다양한 테크 기업에서 경제학자를 영입하고 있다는 사실이 국내 언론에서도 소개되기도 하였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흐름이 언젠가 국내에서도 불게 될 것이란 생각도 하게 되었다. 


우연찮게도 브런치에 처음으로 썼던 글이 <카카오 택시>에 대한 글이었는데, 결국 판교에 첫발을 그 회사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마침 사내 디지털경제연구소에서 데이터 이코노미스트라는 새로운 자리를 뽑는다는 것이 눈길을 끌었고, 타이밍도 맞아떨어진 우연도 겹쳤다.


"기억보다 기록"


낯선 땅 판교에서 낯선 직업으로 이리저리 부딪히며 배운 이야기들을 해보려고 한다. 몸담고 있는 기업이 테크 회사이다 보니 테크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서는 데이터 이코노미스트로서의 좌충우돌 기록을 남겨 보고자 한다. 판교의 소소한 일상부터 일하면서 배운 것들, 그리고 파이썬과 같은 다소 재미없는(?) 주제도 조금씩 정리해 보고자 한다. 지나고 보니 더더욱 느끼지만, 단순히 기억하는 것보다 기록으로 뭔가를 남기는 것이 말 그대로 남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디지털 기록은 때로는 누군가에게 잔잔한 파문과 영감을 주고,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주기도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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