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멈췄다. 쉴 새 없이 하늘을 날아다녔던 비행기는 각국의 봉쇄 조치로 땅으로 내려와 멈추어 섰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로 향하던 여행객들의 분주한 발길도 멈추었다. 회사와 학교로 향하던 사람들의 일상적인 발걸음도 멈추면서 혼잡하던 버스와 지하철에도 빈자리가 많이 생겼다. 집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한산해진 거리와 도로의 모습은 코로나19를 상징하는 소재가 되었다.
팬데믹 시기 이동의 변화(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이 선언된 2020년 3월 전 세계 이동 데이터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동 수단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코로나19 이전 대비 최소 3분의 1에서 최대 10분의 1 이상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전 세계 국제선 항공 이용객수는 2020년 3월에 전년대비 47% 감소하며 반토막이 났고, 4월에는 92%까지 감소했다. 우리나라 출국자와 입국자수는 3월에 전년대비 각각 94%와 95% 감소하였다. 국내 철도 이용객수는 3월에 전년대비 66% 감소하였고, 수도권 전철 이용객수는 43% 감소하였다. 고속/시외버스와 시내버스 이용객수는 3월에 각각 65%, 35% 감소하였다. 통계청이 통신사의 빅데이터로 집계한 인구 이동은 2020년 3월(매주 토요일 평균)에 전년대비 29%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은 우리 생활의 일부다. 이동의 감소는 곧 도시와 경제의 활력이 위축되었음을 의미한다. 일상의 일부였던 출근길과 등굣길, 일상 탈출의 일부였던 국내외 여행길 모두 코로나19의 공포 앞에서 크게 위축된 것이다. 오랜 세월 익숙해져 있었던 이동은 신종 감염병 앞에서 무기력하게 멈추었다.
사람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해 주는 이동 수단이 바이러스도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은 외면하기 힘든 도전 과제가 되었다.
오래된 이동이 멈추자 새로운 이동 방식에 대한 숙제가 인류에게 던져졌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은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빠르게 연결하는 비행기, 고속철도 등 이동의 혁신을 빼놓고 설명하기 힘들다. 해외여행이 일상에 자리 잡고 있고, 1일 생활권 확대가 오래된 구호처럼 들리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사람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해 주는 이동 수단이 바이러스도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은 외면하기 힘든 도전 과제가 되었다. 밀집된 인구를 집중적으로 수송하는 대중교통시스템은 교통체증에 신음하는 도시의 구세주로 여겨졌지만, 전염병의 공포 속에서는 기피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공유경제'의 대표 주자로 조명받았던 승차공유 서비스는 도시 봉쇄,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등에 직격탄을 맞았다. 유동인구에 따라 웃고 울던 도심의 상권과 부동산은 온라인 공간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차원의 고민이 더해졌다.
이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선호는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지 한 분기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예상을 빠르게 조정하면서 이동 방식을 바꾸고 있다. 사태가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가 조금씩 사그라들면서 대안적 이동 방식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동 혁신을 이끌었던 모빌리티 기업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도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이동을 위해서 고민하고 있다. 인류의 ‘슬기로운 이동생활’은 어디를 향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