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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윤식 Feb 25. 2016

풀 뜯어 먹는 사나이 - 미디어 권력 VS 다양성

하지만 점점 이 권력의 해체가 오기시작합니다. 

TV의 한 교양 프로그램(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에서 ‘풀을  뜯어먹는 이’의 이야기를 방송했습니다. 워낙에 심심하고 할 일 없으면 TV를 자주 보는 편이라, 풀만  뜯어먹는다는 이야기를 보여주니 신기하기도 하고 ‘저러고 어떻게 살지? 영양은?’ 하고 재미있게 시청했습니다.


풀만  뜯어먹는 그는 너무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길거리의 풀을 뜯어먹고 있는 것이지요….

우선 ‘풀  뜯어먹는 사나이’는 예능 프로그램에 다룰 만한 재미난 소재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찾기도 쉽진 않지요. 특히 예전과는 달리 어느 정도 풍요를 누리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말이지요.



풀을  뜯어먹는 사나이의 미소를 보면서 느낀 점은 약간 비약을 해서 ‘풀만  뜯어먹고살아도 행복할 수 있겠구나’라 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단순한가요? ㅎㅎ 물론 TV에서 의도한 바는 그런 것이 아녔겠지요..

저의 비약적인 생각이 이상한 이유는 약간 뒤집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풀만  뜯어먹는 삶’으로 약간 달리 보면,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풀  뜯어먹고 살 것 아니면 공부 열심히  하려무나’라는 소리를 듣고 자라온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의 지배력이 미치기 때문입니다.


너는 풀만  뜯어먹고 살 거야?라는 주변의 물음은 보통 허송세월을 보낸 시절이 있던 사람은 한 번쯤은 들어 봄직한 말입니다. 주변의 분들은 정말 걱정 어린 말투로 저런 물음을 하셨을 테죠. 대다수의 사람들은 저 소리를 듣게 되면 기분이 나쁘지만, 속으로는 ‘아휴 나도 언제까지 이러고만 있을 수  없지’라는 생각을 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풀만  뜯어먹는 삶’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변변치 않은]이라는 어느 정도의 가치가 함의된 내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실상 주변엔 풀  뜯어먹는 사람도 없고 또 ‘오죽했으면 풀만  뜯어먹고  사냐’라는 사회적 문화적 가치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는 생풀을  너무도 맛있게 와그작 와그작 씹어 먹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지극히 정상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행복한 식사를 하는 것인데 세상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 바라보고 취재까지 해가며 그를 흥미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과연 왜  그럴까?라는 물음에 … 그런 사람이 흔치 않아서, 또는 오죽했으면 저랬을까 하고 TV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며 그가 왜 그랬는지 이해를 해보려고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의 이유는 단순합니다. “먹어 보니 생풀이 맛있더라, 안 먹어 봤으면 말을 하지 마라!”


‘풀이 맛있는 다’라는 것은 그의 개인적인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안 먹어 봤으면 말을 하지 마라’는 사회의 통념에 반항하는 뉘앙스가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편집자가 의도적으로 넣었을 수도 있지요. 영어도 아니라서 잘 모르겠음)


만약에 풀  뜯어먹는 이 친구가 인터넷도 할 줄 알고 소셜 네트워크도 할 줄 알아 많은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이었더라면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먹어 보니 쌩풀이 맛있더군요. 지킬 것만 지키면 얼마나 좋은데요. 한번 드셔 보셔요”하고 풀을  뜯어먹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인지 알리는 전도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디어를 이야기하는 여러 개론서를 보게 되어도 미디어와 권력이라는 단어는 항상 같이  언급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한한 정보의 인터넷 바다가 생겨나고 이제는 인터렉션을 통한 정보와 정보가 모여 새로운 정보가 만들어지는 지금 이 시대에 기존 미디어나 권력이 말하는 프레이밍이 가능할는지 재미있게  지켜보면 될일 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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