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온라인 공동체
*이 글은 예전 블로그에 썼던 글이기도 하지만 최근 소셜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재편집을 통해 올립니다.
2009년 연예인들의 자살을 비롯해, 일반인들의 집단자살이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자살이라는 것이 사회의 일시적 현상이 아닌 사회적 그리고 공동체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2009년 4월 23일 SBS 및 주요 방송사의 보도를 보니 강원도에서 집단자살에 대한 보도가 크게 다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타 미디어와는 달리 SBS는 우선 자살에 대해 보도할 시 그간 사용해 왔던 ‘동반 자살’이라는 용어 대신 ‘집단 자살’이라는 용어로 ‘동반 자살’이 가지는 언어적 뉘앙스(낭만적 느낌을 줄 수 있다는)를 변경하였는데, 이는 미디어가 가지는 영향력을 볼 때, 상당히 올바른 조치였다고 판단됩니다.
SBS는 당시 발생했던 집단자살의 공통점을 아래와 같이 전문가들과 파악했습니다.
공통점으로는 발생지역은 강원도라는 점, 연탄가스를 이용한 점,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자살을 공모했다는 점입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기 마련인데 보도 내용의 공통점을 보니 모 연예인의 자살, 미디어의 영향력, 그리고 온라인이 가지는 인터렉티브 한 형질들이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전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은 타인과의 웹을 통한 소통의 기회가 쉬워졌고, 자신의 메시지를 많은 이와 나누며 교감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현실이 됨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시 보도를 보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얼마나 큰지 새삼 알게 해 준 내용이었습니다. 블로그, 트위터 그리고 다양한 웹의 툴들을 통해 구성원들 간의 직접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문화가 있다는 점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 한 클라이언트를 진행하면서 인터넷의 여러 카페와 업무제휴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전문성 강화와 회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일환으로 추진된 제휴였습니다. 제휴가 성사된 두개의 카페는 다루는 주제도 같았고, 회원수도 거의 유사합니다. 결국 마케터 또는 커뮤니케이터의 입장에서 볼 때 두개의 카페는 동일 타깃층을 지닌 즉, 연령대, 하며 회원들이 이루려는 목적이 유사한 카페인 것입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의 제휴 활동을 진행하면서 각 카페의 회원들의 반응은 지극히 다르게 나타났답니다.
A라는 카페의 운영자분은 커뮤니티를 쌓아온 원칙과 소신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커뮤니티를 운영해 오면서 비방적인 글을 제한했고, 상업적 메시지로 카페가 어뷰징이 되는 것을 그의 원칙과 소신으로 분류하였습니다. 그에 대해 모든 카페의 구성원들도 커뮤니티 운영자의 원칙으로 비롯된 커뮤니티의 규칙을 지켜 내고 서로가 감시자가 되어 공동의 공간을 올바른 정보의 교류의 장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B라는 카페도 A와 비슷하게, 운영자의 역할이 크고 회원들도 양질의 정보를 받아 볼 수 있는 좋은 카페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A라는 카페처럼 감시 기능이 있고 올바른 정보의 교류의 장으로 만들려는 노력의 모습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원들의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 그리고 참여도의 차이는 상당히 컸습니다.
우선 A라는 카페의 구성원들은 좋은 정보에 대해서는 서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자신도 다른 카페 회원이 좋은 정보를 올리는 만큼 자신도 노력해서 좋은 정보를 올리는 데에 시간을 아끼지 않아 보였습니다.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해 주고 최소한의 약속을 지켜가는 모습을 보이는 그런 카페였습니다.
반면 B라는 카페는 상대방의 올려놓은 콘텐츠나 정보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인색했고, A의 카페와 비교할 때, 자발적인 콘텐츠의 교류보다는 정보를 검색하고 소비하는 회원이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나그네 같은 회원들이 좀 더 많아 보였습니다.
똑같은 회원수를 둔 두개의 카페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제 경험의 해답은 … 카페 속 구성원들의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는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것 모두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작 말씀드리고 싶었던 가치에 있어 이러한 문화가 왜곡되었을 때 더 큰 문제가 온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보도를 볼 때… 인터넷 공동체 속에서의 자정능력은 존재하나 일정 부분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살에 대한 키워드로 포털에서 검색 시 자살을 막기 위한 노력의 흔적도 보입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살이라는 막연하고 두려운 감정의 키워드를 개인이 가슴에 품고 있는 어떤 이가, 이를 용인하고 동조하는 왜곡된 문화 또는 메시지들이 범람하는 공간에 떨어지게 된다면, 앞으로도 왜곡된 문화가 가져올 자살에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때론 저는 PR을 통해 어쩌면 문화의 씨를 퍼드리는 직업을 가진 것에 대해 행복하고 자부심이 클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계속 저 가치들에 대해 깊게 고민하려고 합니다. 자살이라는 극한의 경우로 예를 들었지만, 왜곡된 메시지, 왜곡된 문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미디어와 메시지를 이용하는 커뮤니케이터들은 항상 숙지해야 하지 않나 물음표를 던져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