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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dy Kim Jun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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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8개월 19일

코너에 몰리지 않도록 잘 조절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육아를 시작한 지 300일이 가까워오니 누적되는 피로가 있다. 그 피로가 갈수록 나를 쉬이 지치게 만들고 외부로부터의 작은 자극에도 보다 쉽게 욱하게 만들고 짜증도 쉽게 부리게 만들었다. 절반쯤은 육아를 혼자 하는 느낌이 들 때 그리고 절반쯤은 하고 있는 육아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때 특히 그 짜증이 심해졌다. 내게도 육아에 대한 만성 스트레스가 왔다.


육아하면서 함께 겪기 싫은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아빠라서 무책임하다는 소리 듣는 것 이라던가 아내와 육아 비중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일이라던가 육아 때문에 내 일상이 망가진 느낌을 받는 것 등이 거기에 해당됐다. 세 가지 모두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컨트롤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육아에 임하면 스트레스 자체가 없을지도 모를 거라고 계속 나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했지만 그렇게 잘 견뎌온 260여 일의 시간에는 결국 누적된 피로 역시 함께 올 수밖에 없는 부작용이었나 보다. 그래서 요즘 아내와 날이 서는 날들이 많다.


아마도 아내 역시 최선을 다해 육아를 하고 있을 테고 많은 것을 포기했을 테고 아이에게는 해주고 싶은 것들을 다 해주지 못해 속도 상할 텐데 그게 나에게도 있다는 게 문제고 그 두 사람의 문제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이 문제는 솔직히 해결책이 없다. 그렇다고 시간이 해결해 줄 것도 같지 않다. 아직 걸어 다니지 못하는 아이에게 남은 일은 움직이며 부모에게 줄 앞으로의 스트레스가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모든 걸 내려놓고, 아니 다 던져놓고 멀리 도망가고 싶어 졌다. 벌써 육아 갱년기가 온 것일까......


하고 있는 사업은 진척이 더디고 육아와 밀접히 연관된 돈 문제는 그래서 항상 스트레스를 가중되게 만든다. 가끔 스트레스를 넘기기 위해


'그래 웃어넘기자'


하며 아내에게 제안하면 콧방귀만 돌아와 맘만 더 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내가 더 잘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내가 더 노력하면 문제가 해결되니 앞가림이나 잘하라는 소리 듣기만 일쑤다. 이렇게는 전혀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데 그렇다고 아내가 아닌 사람으로부터 아무리 좋은 소리를 듣는다 한들 동기부여는 될 법이 없다. 모든 시작과 끝이 아내이지만 그 탓을 아내에게 할 수 없는 게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결혼하고 초반 이런 비슷한 루프에 빠져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힘들어하기도 많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나긴 한다. 비슷한 루틴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제는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아이가 함께하는 문제라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하니 국면은 전혀 새롭고 해법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냥 이런 스트레스받는 게 너무 싫다. 하지만 이미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딱히 부정하기도 힘들다. 이럴 땐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좀 나아지는데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나 돈이 부족한 여행은 준비부터가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유발할 뿐이다. 생각할수록 악순환의 반복이다. 그러니 술만 마시게 되고 당장 맞닥뜨려 풀 수 없으니 격해질 수 있는 상황은 피해서 모면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나는 근데 이게 싫고 근본적인 원인을 좀 찾고 싶다. 허심탄회하게 말도 섞어보고 싶고 되든 안되든 해결책을 위해 움직여보고 싶다. 근데 이게 또 아내의 솔루션 찾는 방법과는 방향이 매우 다르다.


결혼 초반 두 사람 만의 문제들은 내려놓고 포기하고 내가 감 뇌하면 됐었는데 지금 육아는 그게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포기하고 나서도 욱하기 일쑤고 내려놓고 나서도 아쉬움이 생기기 일쑤고 내가 감내를 이미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도 점점 더 든다. 정말 한참을 문제를 나열하니 해결책은 요즘 말로 1도 없어 보인다. 글만 보니 또 이건 이보다 심한 지옥이 없다 싶기도 하다. 이 순간 글 써 내려가면서 맘이 좀 풀리는 게 아니라 깊은 빡침이 또 더 느껴지기만 한다. 그래서 더 간절히 해결 방법을 찾고 싶다.


누군가의 탓을 하지 않고 지금의 힘겨움을 성장의 과정으로 달게 받아들이며 반쯤은 더 부담감을 내려두고 즐겁게 갈 수는 없는 걸까? 잠깐 과한 스트레스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시기가 지나면 그냥 처음 맘먹었던 대로 다시 잘 버텨질 테니 잠깐 시간에 맡겨두어야 하는 타이밍인 건가? 잘 모르겠다. 정말 잘 모르겠다.


그냥 이 힘겨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오늘은 그래서 엄살 좀 부려본다. 가끔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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