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ddy Kim Aug 24. 2017

330

만두 10개월 26일

만두가 세상에 온 지 이제 1주년이 가까워 온다. 와이프와는 그간 잘 버티긴 했지만 최근에 유독 스트레스로 다투는 일들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육아로 견디고 참았던 것들이 하나둘씩 터지기 시작한 것 같다.


이해는 할 만하다.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일과 일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한두 번 양보하다 보면 나만 왜 그래야 하는지 서운함에 스트레스도 생기고 짜증도 나는 게 당연하다. 일도 잘하면서 육아도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동시에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길 때마다 결국 과욕은 또다시 화를 부른다.


아내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나 역시 아이가 생기기 전 아내의 삶을 존중해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었다. 육아를 하더라도 서로 배려하고 먼저 챙겨주면 물론 스트레스야 받을 수 있겠지만 최대한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게 해 줄 거라고 믿었었다. 그런데 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오거나 민감한 이슈들이 오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 생기니까 갑작스러운 아내의 스케줄이 달갑지 않고 상의 없이 진행하는 일들이 섭섭해졌다. 그리고 그 섭섭함이 아내를 위해 먼저 했던 배려들과 섞이니 좋지 않은 감정들로 번졌다. 괜스레 가시가 돋아서는 혼자 욱하거나 못 참고 투덜거리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아내에게 몸보다는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들을 이야기하면서 조금만 신경 써달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사실 몸이 힘든 부분이야 아이를 갖기 전부터 체력적으로 자신이 있었고 내가 더 하면 될 일이라고 막연하게 나 자신을 믿고 있었지만 아내로부터 들리는 툭툭 거리는 소리들은 매 순간 마음을 다 잡는 내 템포를 무너뜨려버렸다. 저런 이야기를 안 하거나 속으로만 하거나 남에겐 좀 안 하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들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는 불평들이 특히나 불편하게 들렸다. 나는 안 그러려고 하는 부분들을 아내는 소리 내어할 때마다 그래서 감정은 더 많이 상해갔다.


머리로 이해는 한다. 아내도 답답할 것이다. 남편의 사업에는 응원도 해주고 큰 힘이 되라고도 하고 싶겠지만 3년 가까운 기다림으로 기다리다 지쳤고 미래가 막연해지니 자연스레 푸념하고 투덜거리고 짜증도 내게 되는 것이다. 속 마음과 상관없이 자꾸 입 밖으로 자기의 상태를 알려주고 싶어 지게 됐을 것이고 특히나 많이 티를 내며 상황을 극복하는 아내의 스타일 상 내게 하는 내색들은 자신이 스트레스를 푸는 과정일 것이다. 그래서 다 이해가 되지만 문제는 그 이해를 수용할 감정적 여유가 지금 내게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맞받아 치니 결국 덜그럭거리다 삐걱거리고 시끄럽다며 끝내 내 맘을 몰라주는 서운한 상태가 서로에게 온 것이다.


사실 그래서 오늘 정말 많이 우울했었다.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도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이고 위기이고 기로라고 되뇌고 있었다. 그런데 커피숍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혼 초기에 1년간 정말 치열하게 싸우면서 상대에게 내 마음과 같지 않게 행동할 때 나는 왜 그런지 따져 묻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으면 그냥 하고 상대에겐 내색을 하지 말자고 마음을 바꾸어 먹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마음가짐의 변화 이후부터 서로 부딪히는 일들이 눈에 띄게 줄더니 서로 정말 사이가 좋아졌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인지 지난 상황들을 곰곰이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이모님이 오시는 오전 11시 전까지는 아이를 보는 시간 외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집을 나서 일을 시작하는 11시 반부터 집에 돌아가기 전인 오후 6시까지는 일에 집중한다. 7시부터는 IT업계의 일상처럼 야근할 생각 버리고 오후 7시 전까지 돌아가 이모님으로부터 아이를 인계받고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아이가 잘 준비를 한다. 이렇게 이모님과 겹치는 시간을 제외하고 아이를 위해 내가 모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마음을 먹으면 사실 큰 문제가 없다. 하던 일을 끊고 집에 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스트레스받는 것이고 빨리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이모님 올 때까지 시간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저 스트레스였을 뿐인 것이다. 그래 마음을 고쳐 먹으면 되는 것이다.


잘하겠다는 생각,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으로부터는 좀 마음을 내려놓기도 해야 할 것 같다. 머리로는 잘 떠올리게 되는데 막상 순간순간이 오면 DNA가 반응해 쉽지 않지만 내려놓지 않고는 지금 상황은 넘기도 견디기도 힘들다. 육아라는 상황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맞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마음을 좀 다잡고 마주 앉아서 차근차근 정리하고 그간의 일 다시 되짚지 말고 그냥 내일부터는 다시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최근 1년간 사건 사고 많이 생기게 했던 술 좀 줄이고 살은 좀 빼고......



작가의 이전글 26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